정수기 점검 갑자기 취소, 왕복 2시간 ‘공짜노동’ 보상은 누가

민주노총, 이동노동자 1210명 조사결과 공개

한 배달노동자가 일하는 모습.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제품 점검을 위해 고객 자택을 방문했다가 고객이 갑자기 일정을 취소하는 바람에 되돌아가야 했습니다. 길거리에서만 2시간을 버렸습니다. 평균 점검 수수료가 7500원인데, 왕복 기름값이 더 많이 나간 셈입니다.”

코웨이 정수기 등 제품을 대여한 고객을 방문해 제품을 관리하는 방문점검원 김순옥씨는 5일 국회에서 열린 ‘일하려고 기다린 시간은 누가 보상해주나?―이동노동 및 대기시간 보상방안 마련 국회 토론회’에서 “(일하는 방식이) 건당 수수료 체계라 일정 취소 등 이유로 고객을 몇번씩 찾아가도 실제 점검까지 이어지지 않으면 돈을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업무 특성상 서비스 제공을 위해 계속 이동해야 하는 이른바 ‘서비스 이동노동자’들은 다음 업무를 위한 대기·이동에 쓰이는 시간이 많은데도, 이런 노동시간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은 가전제품 설치·수리기사, 대여제품 방문점검원, 학습지 교사, 택배 기사 등 12개 업종 조합원 121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이날 공개했다. 결과를 보면, 이동노동자들은 서비스 제공을 위해 하루 평균 45.4곳을 방문하고, 이동·대기시간으로 각각 88.2분, 43.2분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하기 위해 하루 2시간 넘는 시간을 길에서 보낸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시간을 보상받는 이는 전체의 5.6%, 3.0%에 그쳤다. 이동거리·대기시간을 시간급으로 계산하면, 한달에 10만6200원(7만4800원+3만1400원)의 ‘공짜노동’을 하고 있단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서비스 이동노동자에게 경제적 타격이 큰 ‘노쇼’(예약 부도)를 경험한 이도 77.6%에 이르렀다. 월평균 노쇼 경험은 9.4회로, 이를 시간급으로 환산하면 8만2800원에 이른다. 건당 임금을 받는 터에 이동·대기시간을 들이고도 수입을 챙기지 못하는 손해가 가장 큰 셈이다. 이 밖에 소득에 포함되지 않는 업무 관련 시간으로, 사전 준비 업무에 하루 61.1분, 일이 끝난 뒤 잔업에 30.3분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비스 이동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약 268만원이었다. 유류·교통비 등 업무를 위해 쓸 수밖에 없는 비용 약 51만원을 빼면 월평균 순이익은 약 217만원이다. 이날 발제를 맡은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이동노동자 가치 인정과 공정한 임금의 최저기준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논의와 검토가 필요하다”며 “단기적 해결 방안으론 정부가 최소한 월평균 노쇼 비용을 지원해주는 방안 등을 검토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해정 기자 se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