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2B서 잘 컸다, 이젠 B2C로 가자” 승부수 띄운 식품기업들
중견 식품 기업들이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와 B2B(기업 간 거래) 경계를 허물면서 새로운 사업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 개인과 기업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소비자 입맛을 공략해 수익 구조를 안정화하려는 시도다.
6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냉동가공 식품 기업 사세는 올해 2분기부터 본격적으로 B2C 시장 공략에 나선다.
사세는 지난 1997년 9월 설립 이후 30여년간 냉동가공 식품을 생산·판매했다. 연 매출은 2022년 기준 2700억원에 달한다.
사세는 그동안 프랜차이즈와 대형마트 등 B2B 시장을 통해 제품을 공급했다. 냉동가공식품 중 닭 관련 부분육B2B 시장에서 점유율 60%를 차지하고 있다.
이 회사는 최근 배우 류승룡 씨를 모델로 B2C 시장을 겨냥한 새 광고를 촬영했다. 류승룡 씨는 영화 ‘극한직업’과 드라마 ‘무빙’에서 연달아 치킨집 사장을 맡았다.
사세 관계자는 “치킨 프랜차이즈 가격이 갈수록 오르면서 배달비를 합치면 3만원에 가까워진 상황이라, B2C 시장에 직접 진출하면 소비자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이전 B2B 제품과 다르게 소비자 취향에 맞춘 패키지와 글자체, 로고를 새로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면 분야 ‘히든챔피언’ 면사랑 역시 지난해 10월 B2C 시장 개척을 선언했다. 정세장 면사랑 대표는 당시 “소비자와의 접점을 늘려 B2C 매출 비중을 높이고, 미국·일본 등 해외 진출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면사랑은 1993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기업으로 시작했다. 자사 브랜드 ‘면사랑’을 도입한 시점은 1996년이다. 이때부터 B2B 시장에 제품을 공급했다. 단체 급식, 프랜차이즈, 자체브랜드(PB) 시장을 중심으로 가파른 성장을 이어와 지난 2018년 처음 매출액 1000억원을 넘겼다. 2023년 예상 매출액 1700억원 가운데 B2C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억원 정도다.
정 대표는 “마케팅이나 영업력에서 밀려 소비자와 접점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도 “이커머스 시장 같은 여러 기회가 있는 만큼 B2C 비중을 계속 늘릴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LF그룹 계열 F&B(식품·음료) 계열사 LF푸드 역시 새 한식 가정간편식(HMR) 브랜드 ‘한반’을 준비 중이다.
LF푸드는 2007년 LF 자회사로 설립한 이후 B2B 위주로 사업을 전개했다. 2017년 국내 최대 일본 식자재 유통업체 모노링크, 2019년 냉동 육가공업체 엘티엠푸드를 인수합병하면서 몸집을 키웠다.
그러나 2020년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덮치면서 실적이 뒷걸음질 쳤다. 2019년 1552억원이었던 LF푸드 매출액은 2020년 1048억원으로 32% 줄었다. 2021년에는 누적 순손실 30억원을 기록했다.
B2C 사업 강화는 LF푸드가 수익성 개선을 위해 꺼낸 승부수다. 27년 B2B 사업으로 쌓은 식품 트렌드 데이터에 식재료 소싱 역량을 B2C에 접목하려는 전략이다.
B2B에 집중하던 중견 식품 기업들이 B2C 강화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장기적으로 수익성을 제고하려면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성실하게 B2B에만 몰두해서는 식품업계에서 오래 살아남을 밑천을 쌓아두기 어렵다. 사세는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시작한 2020년 평균 영업이익률 1.2%를 기록했다. 면사랑은 1016억원 매출액을 기록했지만, 영업익은 1억원에 그쳤다. 이익률 0.1% 수준이다.
영업이익률은 매출액에 대한 영업이익 비율로, 실제 마진이 얼마나 좋은지 여부를 파악하는 지표다. 일년 내내 일해도 겨우 본전만 건졌다는 의미다.
한국식품산업연구원 관계자는 “글로벌 식품회사는 종합식품기업으로 변신해 품목 간 시너지를 추구하지만, 국내 식품회사 대부분은 업종 별로 지나치게 세분화돼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했다.
중견 식품 기업뿐 아니라 이름 난 식품 대기업도 최근 기존 제품을 활용해 수익성을 극대화하고, 완전히 새로운 사업 영역 도전에 나서는 사례가 늘었다. 대형 지주사 산하 식품 계열사들은 그동안 사업 범위가 중첩되지 않기 위해 B2C와 B2B 사업 영역을 뚜렷하게 구분했다.
그러나 B2B 브랜드가 내놓던 가정간편식이 B2C에 가깝게 대중화됐고, 식품 업계 전반에 걸쳐 여러 브랜드와 자유로운 협업이 활발해지면서 유통 채널에 따른 구분이 무의미해지는 분위기다.
CJ그룹 식자재 유통 및 단체급식 기업 CJ프레시웨이는 지난해 GS리테일, 서울우유와 손잡고 GS25 전국 매장에 컵 아이스크림 ‘딸기우유 파르페’를 내놨다. 이 제품은 출시 한 달 만에 첫 생산물량 30만개가 전부 팔렸다.
현대그린푸드는 병원이나 요양시설에서 주로 소비하던 케어푸드 브랜드 ‘그리팅’을 앞세워 B2C 시장을 개척했다. 개인 소비자에게 정확한 영양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네이버가 만든 생성형 AI ‘하이퍼클로바X’를 활용한 AI 영양상담 솔루션 그리팅X를 자체 개발했다.
아워홈 역시 40여년간 단체급식 및 식재유통공급 사업을 운영하며 현장에서 얻은 김치 제조 노하우를 바탕으로 올해 국내외 김치 시장 공략을 위해 프리미엄 브랜드를 새롭게 내놓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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