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사망자가 두 장소에…시간 쫓겨 봉합 서두른 5·18 조사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가 지난 1일 개별 사건 진상규명 보고서를 공개했지만, 그동안 진압군 쪽과 생존자 쪽 진술이 일치하지 않았던 광주 주남마을 미니버스(마이크로버스) 총격 사건 등의 진상은 여전히 논란 상태로 남아 있다. 피해자들은 조사위가 조사 종료 시한에 쫓겨 기록과 진술에 대한 면밀한 검증 없이 서둘러 사건을 봉합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광주 송암동과 광주교도소 암매장 의혹 역시 마찬가지다.
조사위는 지난 1일 개별 보고서 17건 가운데 13건을 공개한 뒤 4일 추가로 2건을 공개했다. 앞서 조사위는 조사 과제 17건 가운데 11건은 ‘진상규명’으로, 6건은 ‘진상규명 불능’으로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표 참조) 5·18 이후 학살 세력의 은폐 시도가 조직적으로 진행됐다고 하지만, 4년의 활동을 통해 조사위가 내놓은 성과로는 아쉬움이 남는다.


조사위는 1980년 5월23일 발생한 주남마을 마이크로버스 사건과 관련해, 당시 총격 현장에서 살아남은 양민석과 채수길을 마을 뒷산으로 끌고 가 총으로 사살한 군인 1명과 동행자 1명 등의 신원을 처음 밝혀냈다. 조사위는 “마이크로버스 피격으로 양민석, 채수길, 김재형, 김정, 김현규, 손옥례, 고영자, 김남석, 김윤수, 김춘례, 박현숙, 백대환, 황호걸 등 13명이 사망했고, 홍금숙만 생존했다”고 밝혔다. 조사위는 유일한 생존자인 홍금숙이 사건 발생 시각으로 진술해온 오후 2~3시를 오전 11시로 바로잡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사건의 조사 결과가 그동안 나온 기록 및 생존자·목격자 진술과 달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5·11연구위원회’ 문서를 보면, 홍금숙은 “5월23일 오전 9시30분쯤 지원동을 지나 화순 가는 산길로 접어들었을 때 갑자기 산 쪽에서 위협사격이 있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이 문서엔 탑승자가 ‘10명 이상의 남자와 여자 1명’이라고 적혀 있고, 또 다른 기록엔 “오후 2~3시 사이였고 18명(여성 4명)이 있었다”는 진술이 담기기도 했다. 이에 대해 허연식 조사위 과장은 “군인 증언과 군 자료 등을 통해 마이크로버스엔 17명이 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주검은 13구만 발견됐다. 사망한 채수길과 양민석이 애초 버스에 탔던 17명에 포함되는지에 대해선 정확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마이크로버스 총격 사건의 존재 가능성도 꾸준히 제기됐다. 당시 지원동에서 꽃집을 운영하던 김종화(77·한겨레 2021년 5월18일치 11면)씨는 5월23일 오전 8시30분~9시15분 마이크로버스 총격이 있었으며, 자신이 주검 10구(여성 2명)를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김씨는 총격 뒤 숨진 고영자(당시 26살)의 신분증을 확인해 일신방직에 고인의 죽음을 알렸다고 진술한 바 있다. 김씨가 지목했던 마이크로버스는 길에 넘어져 있었고, 홍금숙 등이 탔던 마이크로버스는 전복되지 않았다는 증언이 있었음을 고려하면, 마이크로버스 총격 사건은 2건 이상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조사위 조사 결과와 달리 고영자·김춘례 2명은 홍금숙과 같은 버스에 탄 희생자가 아닐 수 있다는 뜻이다. 조사위 쪽은 “총격 사건 목격자의 증언을 들었지만, 사실과 달랐다”고 밝혔다.
주남마을 인근 지원동 구급차(앰뷸런스) 운전자 사망 사건 조사 결과도 논란을 부른다. 조사위는 행방불명 의혹이 제기됐던 앰뷸런스 운전자가 장재철씨이며, 사망 시각도 5월23일 오후 3시라고 특정했다. 하지만 장씨는 앰뷸런스 운전자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5·18 당시 시민수습대책위원회 의료반 차량 운전자였던 장씨는 5월23일 지원동에서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연락을 받고 출동했다가 밤 9시쯤 총격을 받아 사망했고 이튿날 주검이 전남도청으로 옮겨졌다.

조사위 조사 결과는 광주 동구청이 작성한 상황일지와도 차이를 보인다. 일지를 보면, 계엄군의 진압작전이 마무리된 직후인 5월28일 ‘(지원동)동사무소 옆 앰브런스 차내 1명 사망자 방치’라고 기록돼 있다. 이에 대해 조사위 쪽은 “5월28일 발견된 앰뷸런스의 운전자는 23일 사망한 장재철씨다”라고 했다. 하지만 정수만 전 5·18유족회장은 “장씨의 어머니를 만나 당시 정황을 들었고, 장씨는 23일 사망해 주검이 이튿날 도청으로 옮겨졌다. 28일 앰뷸런스 안에 또 다른 사망자 1명이 방치돼 있었다는 증언도 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지원동 앞 구급차 운전자 사망 방치 사건에 대한 조사위 보고서에는 주남마을 마이크로버스 탑승 사망자인 손옥례의 이름도 등장해 혼란을 가중한다. 조사위는 “손옥례는 (다른 마이크로버스에 탄) 의료 봉사단(4명) 중 한명이라는 주장도 있다…. 손옥례는 김재형, 김정, 김현규처럼 다발성 총상을 입었으며, 지원동에서 함께 옮겨져 검시된 것으로 보아 이들과 함께 사망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적었다. 하나의 보고서에 주남마을 마이크로버스와 앰뷸런스 총격 희생자들을 이중으로 기록해놓은 것이다. 허연식 조사위 과장은 “또 다른 미니버스 사건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어서 기록했다”고 밝혔다.
조사위는 광주 남구 송암동 민간인 학살과 관련해 송암동 주민 김복동씨와 생존자 류시열(79)씨가 증언했던 송암동 분뇨통에 쌓여 있던 9구의 주검(한겨레 2019년 5월16일치 1면)에 대해서도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다. 허연식 과장은 “송암동에서 군인 간 오인 사격으로 사망한 계엄군 주검들이 분뇨통 부근에 놓여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5·18 전문가들은 “(조사위 의견은) 당시 희생자 주검이 풀로 덮여 있었다는 목격자 진술과 어긋난다”고 지적한다.

조사위는 광주교도소 인근 암매장 의혹과 관련해 12명의 희생자 명단을 확인했다. 5·18 직후인 1980년 5월31일 계엄사령부는 ‘광주사태 진상조사’ 발표에서 ‘교도소 사건’으로 민간인 28명이 사망했다고 밝힌 바 있다. 조사위 쪽은 “국방부가 발표했던 28명 중 (이번에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16명이 실제 있었는지, 있었다면 누구인지는 밝히지 못했다”고 했다. 조사위는 항쟁 초기 손수레에 실려 있던 주검 2구의 신원도 밝히지 못했다. 당시 시민들은 5월21일 광주역에서 주검 2구를 손수레에 싣고 금남로를 따라 전남도청 쪽으로 행진했다.
조사위는 올해 6월 말까지 정부와 국회 등에 종합보고서를 송부할 계획이다. 문제는 보고서 내용에서 오류가 발견되더라도 조사위 활동 시한이 지난해 말 종료돼 수정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정수만 전 5·18유족회장은 “암매장과 연결되는 사안 등을 유족이나 목격자들의 상호 확인 절차 없이 종합보고서가 나오면 안 된다. 종합보고서가 이런 식으로 마무리되면 그동안 진상규명을 위해 시민들이 기울여온 노력은 어떻게 되겠느냐”고 말했다.
정대하 김용희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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