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대회에 영화제에… 놀러가는 사찰로 바꾼 주인공

김한수 기자 2024. 3. 6.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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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이 각황전 옆의 홍매화 가지를 가리키고 있다. 화엄사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다양한 문화 이벤트를 마련해 방문객이 찾아오는 사찰로 각광받고 있다. /김한수 기자

“화엄사 홍매화는 항상 저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향기와 아름다운 꽃을 보여주고 있는데, 생각해보니 우리는 고마움을 전해본 적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간단한 음악제와 사진 콘테스트를 기획했는데, 마침 코로나 때여서 그런지 국민들이 너무 좋아해주셨어요. 그게 시작이었죠.”

각황전 옆 홍매화 가지마다 고운 꽃망울이 맺히던 지난주, 전남 구례 화엄사에서 만난 주지 덕문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화엄사는 오는 9일 홍매화 앞에서 올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을 기념하는 문화행사를 갖는다. 지난 2월 25일부터 3월 23일까지는 ‘제4회 홍매화·들매화 사진 콘테스트’가 열리고 있다. 화엄사의 올해 시즌이 본격 시작하는 것이다.

화엄사 홍매화 사진 콘테스트 참가자들. 인파가 너무 몰려 올해부터는 촬영시간을 제한하기로 했다. /화엄사 제공

화엄사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떴다’. 실내 모임이 제한되고 마스크 착용이 의무이던 2021년 3월 매화 핸드폰 사진 콘테스트를 개최하자 전국에서 방문객이 새벽부터 몰려들었다. 6월엔 요가 대회, 8월엔 산사 마당에 2인용 모기장 수십 개를 설치하고 그 안에 들어가 영화를 관람하는 ‘모기장 영화제’, 10월 화엄제 때는 산내 암자를 잇는 순례길 걷기 등 톡톡 튀는 이벤트를 잇따라 개최했다.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홍보기획위원회가 다양한 아이디어를 계속 제공했고 덕문 스님이 수용한 결과다. 천년 고찰에서 코로나 걱정 없이 야외에서 즐길 수 있는 이벤트가 이어지자 봄~가을 화엄사 앞은 항상 자동차로 만원이었다. 그 외에도 비건 버거를 개발해 시판하고, 커피 포대 등을 재활용해 ‘화엄사 굿즈’도 제작해 수익금은 지역민과 나눌 계획이다.

화엄사 모기장 영화제. 한여름밤 사찰 마당에 설치된 모기장 안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이벤트다. /화엄사 제공

마침 ‘스타 스님’도 나왔다. ‘꽃스님’으로 MZ세대 사이에 인기 높은 범정 스님. 지난해 9월 범정 스님이 진행한 야간 사찰 탐방 프로그램 ‘화야몽(華夜夢)’에는 40명 모집에 900명이 몰려 추첨으로 참가자를 뽑을 정도로 성황이었다. 범정 스님뿐 아니라 MZ세대 스님들이 진행한 ‘화야몽’ 프로그램에도 참가자들이 몰렸다.

'꽃스님'으로 알려진 화엄사 범정 스님이 진행한 '화야몽' 행사. /화엄사 제공

사실 화엄사는 국보 67호 각황전을 비롯해 국보 5건, 보물 9건, 천연기념물 3건을 보유한 ‘문화재와 자연 경관 맛집’이다. 그렇지만 7년 전 덕문 스님이 주지로 부임했을 때에는 방문객이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고 한다. 관광 트렌드가 변해 해외나 시설이 좋은 곳으로 옮겨갔다. 빼어난 자연과 산사의 고즈넉함으로만 방문객을 기다리기엔 세태가 변했던 것. 덕문 스님은 주지로 부임하며 ‘온 국민이 찾아오고 싶은 절’ ‘지역과 함께 가는 절’을 다짐했다.

덕문 스님은 “1985년 화엄사로 출가했을 때 절은 가난했다”고 말했다. 쌀을 씻다가 흘리면 수채구멍에서 건져와야 했고, 온수가 없어 가마솥에 데운 세숫물을 두 바가지 떠가는 스님이 미울 정도였다. 사찰 살림은 겨울에 빚을 냈다가 봄 수학여행·행락철이 돼서야 갚는 일이 반복됐고, 역대 주지 스님들은 “비 오는 날은 우울하다”고 할 정도였다. 그는 “주지로 부임해서 보니 절살림은 많이 나아졌는데, 인구 2만5000명의 구례 경제는 더 어려워져 있었다”며 “구례 주민들이 낸 세금 일부가 화엄사 문화재 보수 비용으로 쓰이는데, 지역민과 함께 가지 못하는 종교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말했다. 수시로 지역 청년회와 상가번영회, 노인회를 찾아 이야기를 청취했고, 말사(末寺) 주지 인사고과엔 ‘사하촌(寺下村)과의 원만한 관계’를 따졌다.

괘불을 걸고 야간에 개최된 화엄제. /화엄사 제공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방문객을 유치한 결과, 지난해 화엄사와 광주BBS불교방송, 동국대 WISE캠퍼스 석길암 교수팀 등이 신문·방송 등 뉴스에 노출된 효과를 경제적으로 산출해보니 82억2000여만원에 이른 것으로 분석됐다. 방문객이 증가한다고 해서 ‘불전함’ 수입이 느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불편할 수도 있다. 덕문 스님은 “절에 사는 입장에서는 불편하지만 적어도 오전 10시~낮 12시 사이에 오신 분들은 구례에서 점심식사라도 하실 것 아니냐”고 했다. “행사가 있는 주말 저녁 인근 식당에 ‘재료가 떨어졌다’는 말을 들을 때 기분 좋습니다. 화엄사가 구례 경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 정도 불편함은 기분 좋은 일이죠.” 종교와 관계 없이 방문객들 마음에 행복의 씨앗이 하나라도 던져진다면 그 또한 기쁜 일이라 했다. 그는 “최근 통계를 보면 ‘종교가 없다’는 사람이 50%가 넘는다”며 “화엄사는 그분들에게도 필요한 사찰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화엄사(구례)=김한수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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