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원의 늙기의 기술] 저속노화, X의 新트렌드로… 2030의 재밌고 멋진 유행이 되고 있다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의사 2024. 3. 6.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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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성규

조회수 41만2000, 재게시 723회, ‘마음에 들어요’ 709회. 지난달 22일 ‘X(옛 트위터)’에 필자가 올린 게시물의 추이(3월 1일 정오 기준)다. 대보름을 이틀 앞두고 대보름의 의미 등을 간단히 소개한 글에 잡곡밥과 나물 몇 가지로 구성한 대보름 음식 사진을 첨부해 게시했다. 대보름에는 오곡밥, 여러 나물, 견과류 등을 절기 음식으로 먹는다. 이러한 식사는 필자가 그간 강조해 온 건강한 식단에 부합하며, 가히 한국형 지중해식이라고 할 만하다.

진료와 연구를 해야 할 시간에 소셜미디어에 시간을 쓴다니 의아할 수 있다. 짧은 글을 쓰는 것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혹시 내용이 잘못되지 않았나, 글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를 고민하느라 생기는 정신적 소모가 꽤 크고, 때로는 이용자들의 반응을 확인하는 일도 겸하느라 시간을 꽤 쓰게 된다. 그럼에도 소셜미디어를 이용한 개인적인 실험을 시작하게 된 것은, 우선 전문가로서 가지고 있는 오랜 부채 의식 때문이다. 과학자나 의사 등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태도가 있다. 무기력이다. 과학적 임상 연구 결과와 신약 개발에 대한 발표를 보면 생활 습관 개선이라는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전제한다. 상아탑 속 전문가로서의 답답함도 있다. 유수의 국제 학술지에 논문을 낸들 수년간의 조회수는 몇 천 건이 채 되지 않는다. 인터넷에는 건강 정보가 넘쳐나지만, 그 중에는 상업적으로 왜곡된 가짜 정보들이 부지기수다. 이 기울어진 운동장에 조금이라도 좋은 영향을 미쳐보고 싶었다.

어떻게 사람들의 행동을 보다 건강하게 바꿀 수 있을까? 나의 벤치마킹 대상은 싱가포르의 블루존 2.0 개념(정책적으로 설계된 장수 마을)이었다. 음주 등에 징벌적 과세를 부과하는 등 강제성을 띤 시스템을 갖추어 국민이 건강하게 나이 들 수 있도록 했다. 싱가포르의 정책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으나 이것을 한국에 그대로 도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정책 의사 결정 체계도 다르며, 인구와 면적의 차이도 크다. 싱가포르의 인구는 600만여 명, 면적은 728㎢인데 이는 남한 인구의 약 11.7%, 면적의 약 0.73%에 불과한 수치다. 강제적이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 필요했다.

건강한 생활 습관이 재미있고, 멋진 유행이 될 수 없을지를 고민했다. 내용은 블루존식 생활 습관을 따르되, 방식에서는 리처드 세일러의 ‘넛지’ 개념을 참고하였다. 넛지는 ‘팔꿈치로 쿡쿡 찌른다’라는 뜻의 영어 단어에서 유래한 용어로, 사람들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부드럽게 유도하되 선택을 강제하지 않는 일종의 자유주의적 개입을 뜻한다. 예컨대, 설날 연휴에는 수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연휴 기간에라도 부족한 수면을 보충하라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리는 식이다.

그래픽=김성규

필자가 소셜미디어상에서 주된 목표로 삼는 연령층은 20~30대이다. 이것은 청년층의 건강 악화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건강보험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2030 만성 질환 환자는 중장년층보다 빠르게 늘고 있다. 2030 고혈압 환자는 2022년에 22만3779명에 달했는데 이는 2012년의 15만4160명보다 45% 증가한 수치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2030 고혈압 환자 증가율이 전 연령에서 가장 높다는 것이다. 또 30세 이하에서 만 명당 당뇨 환자가 남녀 모두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2010년대부터는 급증하는 추세이다. 이는 평균 한국인의 일일 당분 공급량이 1961년 5.17g에서 2017년 133.48g으로 증가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결국 젊어서부터의 건강 관리가 미래의 질병 목록뿐 아니라 노쇠 등 삶의 질을 상당 부분 결정한다는 측면에서, 조금이라도 일찍부터 건강 궤적을 개선하고자 하는 생각이다.

그래픽=김성규

2030의 관심을 끌기 위해 글의 양을 기존보다 대폭 줄이고 표현을 쉬운 것으로 바꾸었다. 때로는 사진 한 장만을 올리기도 한다. 이런 짧고 간단한 게시물은 유독 반응이 폭발적인데 지난달 24일 올린 게시물은 올린 지 약 24시간 만에 조회수 140만을 기록했다.

건강한 생활 습관을 실천하고 있거나 관심을 보이는 이용자 위주로 ‘친구 추가’인 ‘팔로우’를 하고 있다. 팔로우하면 해당 이용자가 작성한 게시물을 볼 수 있다. 해당 이용자가 건강에 이로운 생활 습관을 실천하면 ‘마음에 들어요’를 클릭하는 것으로 반응한다. 일종의 심리적 보상이다. 해당 이용자는 이를 통해 몸에 좋은 습관을 형성하고 유지할 동기를 얻는다. 그 이용자를 팔로우하는 다른 이용자도 게시물을 보고 자극을 받는 일거양득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넛지의 선순환이다.

성과는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X에서 필자가 제시한 식단은 ‘저속노화 밥’이라고 지칭된다. 지난 대보름에는 오곡밥, 나물, 부럼 등을 절기식으로 하는 대보름이 ‘저속노화 명절’이라며, 절기식을 차려 먹은 것을 인증하는 글이 대거 올라왔다. 원래 관심이 없었는데 저속노화 밥을 해 먹어봤다는 사람, 자신은 이미 꾸준히 해왔다는 사람, 스트레스를 받아 건강에 해로운 식사를 하려 했는데 필자 때문에 그러지 않기로 했다는 사람 등등. 모두 기쁜 일이지만, 그중 가장 보람을 느끼는 때는 식단을 잘 지켜서 건강이 개선되었다는 게시물을 볼 때다.

저출생 현상을 두고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돌볼 시간과 정신적 여유가 부족한 2030에게 왜 결혼하고 아이를 낳지 않느냐고 힐난하는 것은 답이 아니다. 오히려, 젊은 세대가 건강하고 행복해지면 이 문제 역시 자연스레 해결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다행히도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게 먹고 움직이는 생활 습관은 수면의 질을 개선하고 몸의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도 낮추는 효과가 있고, 이러한 효과는 인지 기능과 기분, 삶의 질을 전면적으로 개선하는 선순환 효과가 있다. 이는 서로에게 조금씩 더 자비로운 사람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렇게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돌보는 노력은 개인과 사회가 모두 건강하고 행복해질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고, 그 때 우리 사회의 스트레스를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인 출산율은 자연스레 회복되기 시작할 것이다. 소셜미디어를 이용한 나의 작은 실험이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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