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53] 허풍쟁이 팔스타프를 버린 헨리5세
물론 자네인 줄 알았어. 그렇다고 내 손으로 왕의 아들을 죽일 수는 없지 않은가. 왕자한테 칼을 겨누다니 말이 되나? 자네도 내가 헤라클레스만큼 용감하다는 걸 잘 알 거야. 하지만 본능을 생각해 봐. 사자도 왕세자를 건드리지는 않아. 본능이란 위대한 거야. 그때 나는 본능에 따라 비겁했던 거지. 나나 자네나 인생에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네. 나는 용맹한 사자고 자네는 진정한 왕자가 아닌가. 그건 그렇고, 그 돈을 여기 가져왔다니 반갑군.
-윌리엄 셰익스피어 ‘헨리 4세’ 중에서
예전 어른들은 직업인을 넘어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다. 뛰어난 실력뿐 아니라 우러르고 존경할 만한 덕목을 갖추어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뜻이었다. 아이들은 위인전에서 본 과학자와 의사, 충신이나 장군, 재능을 발굴하는 교사와 역사의 새 장을 여는 정치가를 꿈꾸며 자랐다. 이제는 행복한 사람이 되라 한다. 애써 훌륭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고 가르친다.
훌륭하다는 말은 정치권에서 가장 먼저 사라졌다. 선거철이 되면 편 가르고 줄 서느라 바쁘다. 색깔을 바꾸고 당을 옮기고 장관들은 직을 버린다. 이념이 다른 정치인들이 모여 국고 보조금 6억6000만원을 챙기고는 흩어졌다. 국가보안법 위반자를 포함, 국회의원 3분의 1이 전과자인 것도 모자라 야권은 노골적 친북, 반미주의자들을 안전권에 배치한다고 했다.
헨리 5세가 왕자 시절에 어울리던 팔스타프는 허풍쟁이 난봉꾼이다. 빌린 돈 갚지 않고, 뇌물 받고 병역 면제해 주고, 전쟁터에서는 죽은 척한다. 적의 시체에 칼을 찔러넣고 포상금도 요구한다. 노상강도 짓을 왕자에게 들킨 팔스타프는 변명을 늘어놓고, 이를 들은 왕자는 유쾌하게 속아준다. 그러나 뛰어난 통치자였던 헨리 5세는 즉위 후 냉정히 그를 버린다.
팔스타프는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가상 인물이다. 2019년에 나온 영화 ‘더 킹: 헨리 5세’에서 외로워진 왕이 그를 중용하고 전쟁에서 공을 세우게 하지만 그 또한 허구다. 본성과 사상은 변하지 않고, 정치인의 선택이 자신의 출세와 동료를 얻으려는 수단이 될 때 정치는 타락한다. 지켜야 할 것은 버리고 버려야 할 것은 포용과 화합이란 명분으로 끌어안으면 더 큰 분열과 혼란이 닥친다. 나라와 국민을 위한 결단인가, 훌륭한 정치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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