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맛과 섬] [180] 강릉 산채정식
강릉은 바닷가에 있는 도시다. 여기에 커피와 서핑이 접목되어 젊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그곳에 며칠 동안 폭설이 쏟아졌다. 그 눈길을 헤집고 찾아간 곳이 소금강 장천마을 산나물 백반을 내놓는 집이다.
산골에서 살았던지라 나물이라면 이것저것 많이 먹었지만, 안주인이 내놓은 상차림을 보고 기가 죽었다. 저 나물을 다 먹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까지 했다. 취나물, 명이나물, 나물취, 뽕잎, 다래 순, 가지, 참두릅, 까마귀 버섯, 깻잎, 개두릅, 갯방풍, 무나물, 더덕, 고사리, 고구마 줄기, 새송이버섯 등 열댓 가지다. 여기에 능이버섯을 넣은 무국과 오곡밥을 내놓았다. 반주는 옥수수 막걸리다. 늘 주문진이나 사천진에서 생선구이나 탕이나 회나 조림을 찾았기에 강릉에 산나물이 많이 난다는 것을 깜박했다. 산채정식에 올라 온 바다 음식은 고등어구이와 서거리젓과 낙지젓이 전부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밥 한 그릇 비우는 데 부족함이 없다.
장천이라는 이름을 듣고서 바로 떠올린 생각이 장도였다. 송도만큼이나 흔한 섬 이름이다. 전라도 말로는 진섬이다. 엉뚱한 한자로 둔갑하기도 하지만, 섬 길이가 길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서해나 서남해에 있는 장도는 해안선을 따라 다양한 갯벌이 형성된다. 그 갯벌에 바지락을 시작으로 백합, 동죽, 개조개, 살조개, 키조개 등 다양한 조개가 서식한다. 오대산에서 바다로 내려오는 소금강 한 자락인 장천에 다양한 산나물이 자리를 잡은 것과 비슷하다.
더구나 눈에는 질소가 많아 이들이 자라는 데 도움을 준다. 눈은 천천히 녹으면서 산나물이 잘 자라도록 수분을 공급한다. 게다가 지표면을 덮어 겨우살이를 하는 식물이 얼지 않고 싹을 틔울 수 있게 도와준다. 지형상 봄을 앞두고 눈이 많은 강릉에 좋은 산나물이 많은 이유이다. 심심산골이지만 바다까지 지척이다. 강릉의 맛은 바다와 산을 함께 살펴야 한다. 갯벌 좋은 곳에 젓갈 정식이 있다면, 깊은 계곡에 산채 정식이라면 지나칠까. 오는 봄에 맞을 산채 밥상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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