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폭주 vs 주문 0건… 건설사 회사채 ‘극과 극’

신수지 기자 2024. 3. 6. 03: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자금난 건설사들 최근 잇단 발행… 대형사 흥행, 중견사는 외면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Midjourney

시공능력평가 30위의 중견 건설사 HL D&I 한라는 지난달 21일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회사채 700억원 발행을 위한 수요 예측을 진행했다. 회사채는 기업들이 자금 조달을 위해 일정 이자를 붙여 발행하는 채권으로, ‘수요 예측’은 은행·증권사·연기금 등을 대상으로 회사채 발행 전 매입 의사가 있는지 미리 알아보는 것이다. 당시 최대 연 8.5%의 고금리를 제시했지만, 단 한 건의 주문도 없었다. 결국 이 기업의 700억원 회사채는 발행 주간사인 KB증권 등이 떠안게 됐다.

부동산 경기 침체와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사태 여파로 자금난에 빠진 건설사들이 최근 잇따라 회사채 발행에 나서고 있다. 대형 건설사는 발행 목표보다 더 많은 수요가 몰리는 반면, 중견 건설사는 10%에 가까운 고금리를 제시해도 시장에서 외면받고 있다. 결국 자금난에 몰린 중견사들은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이나 사채시장에서 값비싼 이자를 물고 자금을 조달하고, 이 이자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사옥을 담보 잡히거나, 사업까지 매각하며 현금 확보에 나서고 있다.

그래픽=김하경

◇건설 회사채 시장 ‘극과 극’

시공능력평가 28위의 중견사 한신공영은 지난달 28일 500억원 규모 회사채를 발행했다. 이번에 내놓은 회사채 금리는 연 9.5%에 이른다. 한신공영이 이처럼 고금리를 부담하게 된 것은 지난해 발행한 회사채가 당초 목표치에 한참 모자랐기 때문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결국 특정 개인이나 기관 투자자를 대상으로 고금리를 보장하면서 회사채를 발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SGC이테크건설도 지난달 연 8.5%에 800억원을 조달했고, 이수건설은 지난 1월 15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최대 연 8% 금리에 발행했다.

반면, 그룹사가 탄탄한 대형 건설사는 비교적 저금리로 회사채 발행에 성공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지난 1월 회사채 수요 예측에서 목표액 1600억원의 4배가 넘는 6850억원의 매수 주문을 받았다. 이에 현대건설은 예정보다 많은 30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금리는 만기에 따라 연 4.1~4.4%로 중견사의 절반 수준이다. 같은 달 회사채 수요 예측에 나선 SK에코플랜트는 당초 1300억원을 목표했으나 7000억원이 몰려 채권 발행 규모를 예정보다 두 배(2650억원)로 늘렸다. 롯데건설의 회사채 2000억원 발행을 위한 수요 예측에도 총 3440억원이 몰렸다.

◇사옥 담보·사업 매각 ‘현금 확보 총력’

회사채 시장에서 외면받은 중견사들은 자산을 담보로 잡히거나, 사업을 매각해 현금 확보에 나서고 있다. KCC건설의 경우 지난 1월 625억원어치 회사채를 발행하기 위해 서울 잠원동 본사 사옥을 담보로 잡혀야 했다. 조달 금리를 조금이나마 낮추기 위해 사옥을 담보로 내놓은 것이다. 그 덕분에 다른 중견사들보다 낮은 4.2~7.3%에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었다. 신세계건설은 지난달 자사 레저사업을 1800억원에 조선호텔앤드리조트에 매각하기로 의결했다. 신세계건설은 대구 지역 주택사업 분양률이 20%를 밑돌아 현금 흐름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다.

건설사들이 최근 회사채 발행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정상적인 자금 조달 경로인 ‘PF 시장’과 분양 시장이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보통 건설사들은 금융회사로부터 PF 대출로 자금을 조달한 후, 분양을 해서 받은 자금으로 이를 상환한다. 하지만 PF 대출이 막히고, 분양마저 저조하면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결국 기한 내에 공사를 완공해야 하는 건설사들은 회사채 발행을 통해 사업비를 충당하고, PF 대출을 상환할 수밖에 없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주로 중견사들의 사업장이 몰려 있는 지방은 미분양이 심각해 자금 조달을 못하고, 사업이 지연되는 악순환에 갇히게 된다”며 “금융 당국이 강도 높은 부동산 PF 구조조정 추진 방침까지 밝히면서 시장에선 돈줄이 더 마르고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