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나훈아의 은퇴 선언이 조국에게 주는 메시지

김태훈 논설위원 2024. 3. 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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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놓겠다’ 선언한 나훈아… 은퇴할 때를 알기에 박수받아
‘대입 기회 균등’ 공약한 조국… 자기가 한 일 몰라서 이러는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지난 5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예방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세상에서 내가 나를 가장 잘 알 것 같지만 사실 그러기는 쉽지 않다. 오죽하면 철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언사가 ‘너 자신을 알라’이겠나. 그리스 델포이 신전에 새겨졌던 이 말을 세상에 널리 퍼뜨린 이는 철학자 소크라테스였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무지를 아는 게 진짜 앎이라고 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이야말로 그때나 지금이나 가장 어려운 앎의 경지다.

얼마 전 가수 나훈아가 은퇴를 시사하는 편지를 쓰며 ‘마이크를 내려놓는다는 것이 이렇게 용기가 필요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생각지 못했다’는 말로 자신의 무지를 고백했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그는 평생 잡았던 마이크를 언제 놓아야 할지 아는 사람이다. 그 앎이 박수받으며 떠나는 선택을 할 수 있게 했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가 정치인에게 주는 교훈이기도 했다. 애제자 알키비아데스가 정치 입문을 선언하자 ‘먼저, 너 자신을 알라’고 했다.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이들이 아테네 민주정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키비아데스가 돌아본 자기 모습은 아테네 최고 권력자 페리클레스의 조카라는 정치적 후광과 잘생긴 외모였다. 작은 불이익도 참지 못하는 치명적 결함은 보지 못했다. 훗날 펠로폰네소스 전쟁 중 그는 반대파에 의해 궁지에 몰리자 적국 스파르타로 망명했고 조국을 침략할 정보도 넘겼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여러 나라를 망명하다가 불행하게 생을 마감했다. 그가 자신의 이런 면을 미리 알았다면 정치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인 선언을 한 조국 전 법무장관이 며칠 전 유튜브에 나와 윤석열을 검찰총장으로 만든 게 가장 후회스럽다고 했다. 그는 정치 검찰을 끌어들인 것을 자신의 잘못이라고 했지만 그가 정말로 후회해야 할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 돌아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청와대 민정수석일 때 윤 총장의 인사 검증을 했다. 검증을 통과한 윤 총장에게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임명장을 주면서 “살아 있는 권력도 눈치 보지 말고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스스로 돌아봐도 떳떳한 사람이나 할 수 있는 말을 했다. 그러나 자기들은 정의로우니 수사해도 나올 게 없다는 믿음은 착각이었다. 윤 총장이 지시대로 눈치 안 보고 수사를 시작하자 온갖 비리 의혹이 줄줄이 터져 나왔다. 그 후 문 정권이 수사를 막기 위해 벌인 모든 소동은 뒤늦게 자신들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했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문 정권 연장 실패의 시발점은 조국의 자녀 입시 비리 사태였다. 2심까지 유죄 판결이 나왔다. 그런데도 조국 전 장관이 창당을 선언하며 내건 표어가 ‘대학입시 기회균등 선발’이다. 온갖 좋은 말을 다 하는 게 정치라지만 이렇게 말과 행동이 따로 놀 수 있나. 정치인을 향한 존경은 말이 아니라 행동에서 나온다. 2차대전이 발발하자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는 국민에게 피와 땀을 요구하는 의회 연설로 기립 박수를 받았다. 말로만 끝내지 않고 자신도 나치에 침략당한 프랑스를 도우려고 비행기에 올랐다가 도버해협에서 나치 전투기에 격추될 뻔했다. ‘그에 대한 찬사 가운데 많은 정치인이 받을 수 없었던 독특한 것은 말과 행동 사이의 오래된 대립을 없앴다는 찬사였다.’(‘윈스턴 처칠, 운명과 함께 걷다’·박지향 지음)

그리스 신화 속 청년 나르시스는 자기애의 뜨거운 열기에 데어 목숨을 잃었다. 매일같이 물속에 자기 모습을 비췄지만 자신에게 도취된 탓에 자기가 누구인지 성찰하지 못했다. 그런 나르시스를 추종했던 에코는 “슬프다, 헛되이 찬미받은 청년이여”라는 말을 남기고 그의 곁을 떠났다. 조 전 장관이 수많은 에코에 둘러싸여 정치의 길에 들어섰다. 그가 헛되이 찬미받지 않을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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