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이데올로기를 이기는 감각 혁명
뉴미디어의 발달이 정보와 지식의 흐름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분명하다. 더이상 우리는 중앙에서 내려주는 정보를 일방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개인들의 경험과 지식이 연결된 네트워크 안에서 적극적으로 정보를 찾고 구한다. 언론이 통제되던 시기에는 대중의 눈과 귀를 쉽게 가릴 수 있었겠지만 오늘날 그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미디어를 통해 얻는 것은 단순히 뉴스만이 아니다. 전문적인 지식들도 다양한 루트를 통해 공유된다. 대학의 강의실에서 얻은 정보가 녹색창을 통해 찾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때도 많다. 그래서 교육도 변해간다. 일방적으로 정보를 심어주기보다 생각하는 방식을 가르치는 것이 강조된다. 사유 방식의 고유함을 사유의 내용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기도 한다. 지식의 양을 자랑해봐야 컴퓨터는커녕 백과사전에도 못미치니 전통적 지적 권력 또한 해체되는 것이 당연하다.
이렇게 민주적이고 평등한 지식을 환영하지만 우려도 생긴다. 지식과 정보의 흐름이 빠르고 그에 대한 반응의 공간도 드러나 있다 보니 잘못된 정보도 사실처럼 보일 때가 있다. 디지털 시대의 정보는 양적 데이터가 주도하며 다수의 선택이 가장 앞서 등장하는데 다수가 알고 있는 것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아니 인터넷에서 다수라 여기는 것마저 오해인 경우도 많다. 스스로 찾아보는 검색시스템에서는 자신이 믿고 싶은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확증편향'이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강한 사회라면 새로운 지식에 열려 있고 그 지식에 따라 신념이 형성되지만 확증편향에 휘둘리는 존재는 자신의 신념에 부합하지 않는 지식을 부정하고 외면한다. 집단적 사고가 집단적 지성이 아니라 집단적 신념의 결과인 경우 우리는 이데올로기에 지배되는 사회를 만난다. 어렵지만 해결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감각(눈과 귀)을 자주 쇄신해 자명한 진리들을 확인하는 것이다. 지식의 내용이 신념에 오염될 수 있음을 경계하고 지식의 근거가 되는 감각들을 날카롭게 유지하는 것, 그렇게 타고난 앎의 능력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를 좀 달리 읽어보자. 에덴이라는 낙원에 살던 그들은 뱀의 꼬임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었다. 이후 그들은 자신들이 벌거벗고 있음을 깨닫게 됐고 몸을 가리기 시작했다. 창조주는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추방했을 뿐 아니라 낙원을 일반적인 농경지로 만들었다. 인간이 신의 은총을 잃고 노동을 해야 과실을 얻는 삶을 영위하게 된 이야기다. 종교나 신앙과 분리해서 해석하면 이 이야기는 사실에 대한 지식과 신념의 관계를 보여준다. 아담과 이브가 벌거벗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들을 보호해준 신념(창조주의 은총)하에선 보이지 않았다. 그 신념이 무너졌을 때 그들은 감각에 노출되며 벌거벗었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금지된 선악과와 의심은 인간의 원죄를 지시하기도 하지만 그것 때문에 그들을 감싸던 은총이 벗겨지고 감각에 충실한 현실인식이 생겨났다는 것이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신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지식가능성의 시작인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사회구조나 과학과 같은 지식체계는 여러 번의 혁명적 변화를 통해 발전했는데 그 혁명의 대부분은 익숙한 신념에 물든 감각을 새롭게 일깨우고 가려졌던 진실을 다시 보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물론 달리 보기는 시작일 뿐이다. 아담과 이브의 (벌거)벗음은 그 자체가 지식이라기보다 지식을 발견할 수 있는 조건에 가깝다. 앎의 가능성을 현실로, 지식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매체가 전달해주는 다양한 정보를 마주할 때 불편한 것들을 피하고 익숙한 것들에 안주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벗어나고 의심해야 할 것이다.
눈에 씌인 콩깍지가 벗겨지는 상황이 항상 유쾌하진 않겠지만 결국 진실이 이겨야 하지 않겠는가.
남수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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