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길, 쓸쓸히 가긴 싫어” 日노인들은 요즘 ‘무덤친구’ 사귄다 [방구석 도쿄통신]
한국은 일본을 너무 모르고, 일본은 한국을 너무 잘 안다.
일본 내면 풍경, 살림, 2014
국내 언론 매체들은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의 이야기를 주로 정치나 경제, 굵직한 사회 이슈에 한해 전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일본에서 교환 유학을 하고, 일본 음식을 좋아하고, 일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는 기자가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지금 일본에서 진짜 ‘핫’한 이야기를 전달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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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한 고령자용 주택에 사는 아사카와 사치코(77)씨는 최근 고베시 식당에서 열린 독특한 오찬 모임을 찾았습니다. 참석자는 30여 명으로, 모두 머리가 희끗희끗한 70세 안팎의 노인들이었습니다. 대부분 서로 처음 만나는 사이였죠. “살아온 날보다 살 날이 더 적다”는 이들은 한국어로 ‘무덤 친구’, 일본어로 이른바 ‘하카토모(墓友·묘우)’를 사귀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일본에서 황혼기에 접어든 노인들이 함께 합장묘에 누울 이들과 생전부터 다양한 교류를 맺으며 이른바 ‘하카토모’ 관계를 맺고 있다고 최근 NHK 등이 보도했습니다. 통상 합장묘는 남편이나 부인 등 가족 사이인 이들이 한 무덤에 묻히는 경우가 많은데, 일본에선 생전 독거노인으로 살았던 이들이 전혀 모르는 사람과 묻히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최근 ‘하카모토 오찬 모임’을 주최한 건 일본 효고현 고령자생활협동조합(생협)이었습니다. 이 생협은 효고현 고베시 히가시나다구 스미요시묘지와 니시구 고베평화묘지에 각각 합장묘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두 묘지엔 지난해 12월 기준 각각 80·20명 가량의 고인이 봉안돼 있는데요. 이 합동묘들에 살아생전부터 봉안을 예약한 이른바 ‘생전 계약자’는 현재 256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생협은 ‘같은 무덤에 누일 사람들끼리 살아생전 만날 기회가 있다면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약 10년 전 이러한 오찬회를 기획하게 됐습니다. 연 2~3회 개최하고 있고, 참여 여부는 임의에 맡기고 있습니다.
합장묘에 들어가기로 결정한 이들은 대체로 “(사후) 무덤을 돌봐줄 사람이 없다” “가족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다” “그래도 쓸쓸하게 죽고 싶지는 않다”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아사카와씨는 “(무덤에) 들어간 이후 관리해 줄 사람을 생각하지 않아도 돼 편하다”는 생각에 2022년 합장묘에 계약했고, 이후 매 오찬회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있습니다. 그는 “같은 무덤에 누울 사람들인데 얼굴 정도는 아는 것이 좋지 않을까란 생각에 오고 있다”며 “(모임은) 그저 밥만 먹고 끝난다. ‘하카토모’는 담백한 사이다. 서로에게 깊이 관여하지 않아도 돼 마음이 편하다”고 했습니다. 아사카와씨에게 합장묘를 소개해 준 친구는 이미 세상을 떠나 이곳에 납골되어 있다고 합니다.
가쓰라 다쓰지(77)씨는 2018년 효고현고령자생협 합장묘와 ‘생전 계약’했는데요. 그는 “(사후) 관리할 필요가 없고 집에서도 가까워 결정했다”고 합니다. 최근 오찬 안내 엽서를 받고 모임에 참석한 가쓰라씨는 “보통 모르는 사람들과 식사하면 긴장해 음식을 맛있게 못 먹는 편인데, 합장묘가 이어준 인연이랄까 새로운 연결고리란 생각에 전혀 저항감이 없었다”며 “나이가 들면 혼자가 되기 쉽지만 그럴수록 함께 모여 식사하는 게 중요하단 걸 알았다”고 했습니다.
효고현고령자생협이 오찬 모임마다 빼놓지 않고 있는 것은 참가자들의 ‘근황 보고’입니다. 생협 관계자는 “죽음을 준비하는 노인들일수록 자신의 이야기를 남들에게 알릴 기회가 적어지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할 기회를 최대한 살아생전 제공하려 한다”고 했습니다. 불참가 의사를 알려온 이들도 한마디씩의 근황을 알려옵니다. 엽서로 ‘요즘 탁구에 빠져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라든가, ‘병에 걸려 치료받고 있습니다’란 등의 답이 오고 있다고 합니다.
합장묘 생전 계약자들의 오찬회를 기획한 생협 담당자 후지야마 다카시씨는 “10년 전 모임을 시작했을 때 (참석 여부를 묻는 엽서) 회신율은 60% 정도에 그쳤지만, 지금은 90%가량이 답을 보내오고 있다”고 했습니다. 후지야마씨는 참석률을 더 높이기 위해 ‘홍보’에도 주력하고 있습니다. 생협이 연 4회 간행하는 잡지에 오찬회 행사 소식을 담은 정보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다만 그는 “결코 (참석을) 강제하진 않는다. 무덤에 들어가는 것만을 목적으로 생각하는 분들은 그 의사를 반드시 존중한다”고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하카모토란 독특한 관계가 노인들의 삶에 안정감을 줄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일본 시니어생활문화연구소 고타니 미도리 대표는 “혈연을 넘어 무덤에 함께 들어간다는 유대감이 노인들의 삶을 느슨하게나마 지탱해준다”고 했습니다.
일본 공영방송 NHK는 “묘우는 ‘혈연’이라는 수직적 관계가 아닌 ‘횡적 연결’, 일본 사회의 새로운 인간관계라고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일본 겐토샤(幻冬舎)가 운영하는 인터넷 매체 골드온라인은 “평소 가족이나 친구들에겐 하기 어려웠던 (사후에 대한) 대화를 털어놓을 수 있는 관계”라고 했습니다.
고베시뿐 아니라 도치기현 나스마치에서도 한 고령자 주택이 입주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합장묘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생전 모르는 사람들과 같이 누울 합장묘를 알아보는 활동 따위를 일본에선 ‘슈카쓰(終活·종활)’라고 부릅니다. 장례나 무덤, 상속 등 사후 자신과 관련해 일어날 일들을 살아있을 때 직접 준비하는 활동을 말하죠. 2007년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이 20%를 넘어 일찍이 ‘초고령 사회’를 맞이한 일본에선 이미 널리 퍼진 현상입니다.
‘슈카쓰’는 자신의 묫자리를 직접 알아보는 활동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일부 상조 업체들은 생전 계약자들을 상대로 ‘슈카쓰 투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슈카쓰 투어라고 해서 ‘사후 세계’를 체험하는 다소 종교적인 활동은 아니고요. 자신의 장례나 상속 관련 문제로 남은 가족이 분쟁하지 않도록 조치하기 위한 방법을 배우는 투어입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이들끼리 최신형 묘지와 납골당을 견학하거나, 업체 측이 준비한 밀가루 등으로 직접 바다에서 산골(散骨)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법률 전문가와 함께 유언장을 작성하는 시간도 있습니다.
관에 들어가 ‘시신’이 되는 경험을 미리 해보는 이른바 ‘입관 체험’을 제공하는 업체도 있습니다. 장의사 협조 아래 관에 들어가 어둡고 고요한 세계를 경험한 뒤, 뚜껑이 다시 열리고 나면 “다시 태어난 것 같다”며 남은 삶에 대한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참가자들도 있다고 합니다. 1인당 투어 참가비는 통상 2만엔(약 18만원) 안팎입니다.
3월 6일 스물여덟 번째 방구석 도쿄통신은 고령화 시대 속 각자의 죽음을 준비하는 일본 노인들, 특히 이들이 맺고 있는 ‘하카토모’라는 특별한 인간관계에 대해 전해드렸습니다. 다음 주에도 일본에서 가장 핫한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26~27편 링크는 아래에서 확인하세요.
“난 일회용 인간이었다”...’완전 재택’한다는 유령회사에 당한 일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4/02/21/C4PUDQCIUBH63DSOSLAP2A5WB4/
“사흘간 집밖에 못나왔다”… 좌절빠졌던 日청년, 자선행사 나선 이유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4/02/28/2JIVIK2RGJB6TJSA57MMILG26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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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주도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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