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거장 세상을 잇고, 추억을 품다] 3. 고성군 현내면 대진시외터미널

지산 2024. 3. 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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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북단 마을 발 되어준 버스…“오늘도 달립니다”
남편 이어 시외터미널 대표 맡아
울퉁불퉁 비포장길 서울까지 10시간
지리적 한계 허물고 삶의 공간 확장
인근 학교 없어 강릉 버스 통학 ‘만원’
학생들 전복사고 등 주민 애환 서려
“이용객 급감…군장병 위해 운영 지속”

오고가는 사람들로 늘 북적이던 버스터미널, 고성군 현내면 소재지이자 최북단 어항인 대진항이 있는 대진의 시외버스터미널에는 그곳을 이용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사연이 스며있다. 남한 최북단 종착지인 대진터미널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본다. 종착지는 출발지이기도 하다.

대진~서울 10시간

지리적 경계 속에 갇혀 있던 사람들에게 그 한계를 허물고 삶을 확장하는 역할을 해 준 것이 바로 대중교통이다. 일제강점기였던 1935년 북한 고성역에서 남한 간성역 구간이 개통된 후 고성 주민들은 간성역에서 기차를 타고 금강산에 다녀오곤 했다. 하지만 한국전쟁으로 동해북부선 철로가 폭격 등으로 파괴된 후 버스가 등장하기 전까지 주민들의 발은 사실상 묶이고 말았다.

2024년 2월 기준 현내면에는 220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인구수가 적고 농업인·어업인들이 여기 저기 마을에 흩어져 살고 있어 상시 거주하며 운행하는 택시가 없다. 따라서 서울 등지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대진터미널에 도착한 경우 대진항구나 화진포해수욕장 등에 가기 위해서는 도보로 이동 해야한다.

남한 최북단 현내면 대진시외버스터미널을 운영하고 있는 윤준원(81) 대표는 반평생을 터미널과 함께 지내왔다. 서울 청담동에 살았던 윤 대표는 서울에서 유학중이던 남편을 만나 결혼 후 남편의 고향이었던 현내면 대진리에 정착하게 됐다.

윤 대표는 “공부를 잘했던 남편은 서울에서 공부를 하고, 민주화운동을 했다”며 “그와 결혼해서 이곳에 정착한 것이 1960년대 말,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전업주부로 살았다. 1970년대 초 대진시내 통천약국 옆에 시외버스 정거장이 있어 완행버스가 운행됐다”고 말했다. 윤 대표에 따르면 현내면의 인구가 4000여명, 군장병들이 5000여명 상주하면서 정거장은 자연스럽게 시외버스터미널로 발전하게 됐다. 그 시절 대진 시내에는 버스 터미널 두 곳이 생겨나 한 곳은 현재 청호약국(그 당시 통천약국) 자리에, 다른 하나는 현내면행정복지센터 언덕 위에 있었다. 하지만 두 곳 다 주차장이 넉넉하지 못했다. 윤 대표의 남편이 버스터미널을 운영하게 되면서 1980년대 초 현재 장소로 옮겨 왔다. 의료사고로 인한 남편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인해 전업주부였던 윤 대표는 버스터미널 운영자가 됐다.

윤 대표는 그렇게 버스터미널을 넘겨받은 후로 지금까지 대진시외버스터미널을 지키며 살고 있다. “방학을 맞으면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 청담동에 가곤 했다. 비포장 도로를 달리던 완행버스는 대진에서 서울까지 10시간 정도 걸렸다. 설명절을 청담동에서 보내고 내려오곤 했는데 45인승 완행버스에는 복도에까지 승객들로 가득차 항상 만원이었다. 진부령에 눈은 왜 그리도 많이 오는지… 승객들 모두 내려 함박눈을 맞으며 눈길에 힘겨워하는 버스를 밀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3시간이면 도착하니 세상이 참 많이도 변했다.” 윤 대표는 기억을 더듬으며 그 시절을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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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 군인들

1946년에 태어나 현내면 산학리에 거주하고 있는 ‘산증인’ 송흥복 고성군의원이 애환 서린 이야기를 들려줬다.

“1970년대 초 현내면과 거진읍 등 고성 북부권에는 중·고교가 없어 학생들은 간성읍에 있는 고성중·고까지 버스를 타고 등하교했다. 대진에서 강릉까지 운행하는 경향여객 완행버스는 늘 학생들로 가득찼다. 비가 몹시도 내렸던 어느 날, 학생들로 만원이 된 이 완행버스가 거진읍 자산천 가교를 지나다가 전복돼 하천으로 떨어져 수많은 학생들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 사고 이후 거진읍에 중·고교가 생기게 됐다.”

군복무를 마치고 고성~속초 7번 국도를 운행하는 버스 운전기사로 3년간 근무했다는 송흥복 의원은 “승객들로 가득찬 버스가 울퉁불퉁 비포장 도로 위를 달릴 때 좌우로 흔들리는 경우가 흔했다”고 그 당시를 회고했다.

현내면의 유동인구가 1만 명에 육박하던 시절엔 이곳에서 서울, 인제, 춘천 그리고 남쪽으로 속초, 강릉, 포항, 대구, 경주, 부산까지 이어지는 시외버스가 운행됐다. 운송업체인 금강고속, 금아여행, 강원여객 등이 이곳과 다른 도시를 연결하는 시외버스를 운행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 대도시로 인구가 급속히 빠져나가면서 현재는 금강고속만이 단독으로 대진~동서울을 연결하는 시외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고성군의 대진, 거진, 간성을 거쳐 인제군 원통, 인제를 지나 홍천을 들렀다 동서울로 향하는 직행 버스와 고속버스만이 운행을 하고 있다.

고성군 현내면 철통리 금강산로 196. 1980년대 이곳에 처음 세워졌던 터미널 건물은 2014년 폭설 피해를 입은 뒤 철거되고 2019년 새 건물이 준공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인구가 급감하고, 2015년 국도가 외곽에 새롭게 뚫리면서 터미널 이용객은 더욱 적어졌다. 현재 일주일 평균 이용객은 50명 미만, 주 고객은 최전방 GOP 근무병 등 군장병들이다.

윤준원 대표는 터미널을 이용하는 주 고객인 장병들을 친손주 대하듯 따뜻하게 대해줘 7년전 율곡부대 사단장으로부터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고성 구천동 GOP 근무를 마치고 전역한 박서우(23) 병장과 이승혁(23) 병장은 “카드단말기가 없고, 편의점이 없는 터미널이지만 그래도 우리 장병들이 휴가를 가기 위해서는 꼭 있어야 하는 곳이다. 이곳을 지키고 계신 대표에게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터미널 이용객수가 너무 적어 운영하는 데 경제적인 어려움이 많지만 내 손자들같은 장병들이 이곳을 이용하는 한 운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며 남은 인생도 터미널과 함께 할 것이라고 했다. 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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