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해법' 발표 1년…한국, 무엇을 얻고 잃었나
외교부 "한일 신뢰 회복·협력 계기" 평가
재원 부족 등 한계… 과거사 갈등 제자리
[더팩트ㅣ조채원 기자] 윤석열 정부가 일제 강제동원 해법인 '제3자 변제안'을 내놓은 지 6일로 1년이 된다. 정부는 해법 발표 후 한일 정상이 7차례 만나는 등 관계가 급속도로 회복됐고, 한일·한미일 간 다방면의 협력 강화 기반이 마련됐다는 점을 성과로 꼽는다. 그러나 과거사에 사죄·반성 없는 일본의 태도는 정부 해법에 대한 국내 여론을 악화하는 요소다. 피해자들에게 판결금을 지급할 행정안전부 산하 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의 재원 부족 우려도 나온다.
◆ 외교부 "강제동원 해법, 한일 신뢰 회복·협력 계기"
제3자 변제안은 일본 가해 기업 대신 재단이 대법원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판결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는 방안을 말한다. 외교부에 따르면 기존 세 건의 확정 판결 피해자 15명 중 생존 피해자 한 명을 포함, 총 11명이 판결금을 수령했다.
정부는 한일 간 신뢰 회복, 과반의 피해자들이 정부 해법을 수용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성과를 부각했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5일 정례브리핑에서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강제징용 대법원 확정 판결 관련 해법은 엄중한 국제정세와 글로벌 복합 위기 속에서 한일 양국 간 신뢰를 회복하고 협력을 이끌어낸 계기"라고 평가했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과 그 이후 우리 정부의 해석, 2018년 대법원 판결 내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룬 합리적인 방안"이라면서다.
임 대변인은 "최근 대법원 추가 확정 판결에서도 피해자와 유가족 중 다수가 해법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강제징용 관련 해법 발표와 이후 양국 관계의 개선이 한일 관계의 전환점이 될 수 있도록 관련 후속조치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일본 측 재단 기금 참여가 없고 정부 해법을 받아들이지 않는 피해자들도 있다'는 지적엔 "앞으로도 재단과 함께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정부 해법에 대해 설명드리고 이해를 구하는 진정성 있는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며 "정부 해법이 진전을 이루게 될 경우 일본도 이에 호응해 올 것으로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 '통 큰 양보' 했지만…과거사 갈등 '제자리'
그러나 피해국인 한국이 먼저 '통 큰 양보'를 했음에도 일본이 호응하지 않는 상황은 국민 정서를 자극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3월 제3자 변제안을 발표했을 당시 "재원은 민간의 자발적 기여를 통해 마련하겠다"며 일본 측 참여 가능성을 열어놨다. 현재까지 일본 기업의 참여는 이뤄지지 않는 데다 과거사 문제는 해결 실마리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정치인들은 여전히 부당한 독도 영유권 주장을 되풀이할 뿐 아니라 과거 침략 전쟁을 미화하고 전쟁 범죄자를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봉납한다. 일제강점기 조선인 징병의 강제성을 약화하는 서술이 담긴 역사 교과서 채택, 군마현 조선인 강제노동 희생자 추모비를 철거 등 역사적 과오를 지우려는 시도도 끊이지 않는다. 과거사를 둘러싸고 국민 자존감과 한일협력의 실익 사이에서 국론이 쪼개지는 이유다.
제3자 변제안이 실질적 해법이 될지도 미지수다. 법적 다툼과 재단 재원 문제 때문이다. 정부는 제3자 변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피해자에 대한 판결금을 공탁하려 했지만 법원이 불수리 결정을 내려 제동이 걸렸다. 추가 확정 판결이 나오면서 정부 해법 적용 대상이 늘어났고 앞으로도 늘어날 전망이지만 재원 확충 방안은 불투명하다. 지난해 10월 기준 재단에 기부된 총액은 대일 청구권 자금 수혜 기업 중 하나인 포스코가 출연한 40억 원을 포함, 41억1400만원이다. 정부 해법을 수용한 이들에게 이미 지급된 약 25억 원, 법원에 공탁할 약 10억원을 제해 재단 기금은 5억 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 전문가들 "앞으로도 '성의있는 호응' 어렵겠지만…"
전문가들은 제3자 변제안으로 한일 관계 개선의 물꼬를 튼 것은 성과로 꼽을 수 있지만 정부 해법이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이 필요하다는 데 입을 모았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이날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이전 정부와 비교해 양국 간 신뢰관계가 상당 부분 회복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대통령이 피해자의 반발이나 국민 자존감 상실을 고려하지 않고 톱다운 식으로 추진한 것은 문제"라고 짚었다. 한일관계 개선이라는 방침을 앞세우되 국민들을 충분히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했다는 얘기다. 양 교수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 시각은 변화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일본 측 참여를 기대하긴 어렵다"고 전망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통화에서 "한일관계를 개선을 위해선 '제3자 변제안'은 불가피하다"며 "국제관계에서 한국의 역할을 확대했다는 점에선 국익에 부합한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하고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한미일 협력을 통해 다방면에서의 대응이 가능해졌다"는 측면에서다. 진 센터장은 "일본의 반성과 사죄와 같은, 우리 국민 눈높이에 맞는 호응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대통령이 지금이라도 나서 피해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여러 조치를 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chaelo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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