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맹비난 글 올린 익명 추기경은 누구…교계 '술렁'

신창용 2024. 3. 5.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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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가톨릭교회 추기경단에는 '데모스(Demos·민중)'라는 가명으로 작성된 비밀 쪽지가 나돌기 시작했다.

가톨릭 보수파의 거두로 꼽혔던 펠 추기경이 사용한 가명을 그대로 차용한 데서 엿보이듯 해당 글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적나라한 비판이 가득 실렸다.

이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뒤를 이을 차기 교황이 갖춰야 할 7가지 덕목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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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모스' 가명 사용한 펠 추기경 이후 2년만에 '데모스 2세 등장'
프란치스코 병원행 하루 뒤에 익명 글로 후임 교황 덕목 제안
프란치스코 교황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바티칸=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2022년 3월 가톨릭교회 추기경단에는 '데모스(Demos·민중)'라는 가명으로 작성된 비밀 쪽지가 나돌기 시작했다.

메모에는 현 교황인 프란치스코에 대한 신랄한 공격과 함께 차기 교황이 지녀야 할 덕목에 대한 내용이 자세하게 담겨 있었다.

나중에야 이 메모의 작성자가 지금은 고인이 된 조지 펠 추기경(1941-2023)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로부터 2년이 흐른 올해, '데모스 2세'라는 가명을 쓴 익명의 추기경이 등장해 가톨릭 교계가 술렁이고 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보수 가톨릭 웹사이트 '데일리 컴퍼스'에는 '데모스 2세'라는 가명으로 '바티칸의 내일'이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

이 매체는 한 추기경이 다른 추기경들과 주교들의 제안을 취합한 후 작성했다며 보복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해당 추기경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았다.

가톨릭 보수파의 거두로 꼽혔던 펠 추기경이 사용한 가명을 그대로 차용한 데서 엿보이듯 해당 글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적나라한 비판이 가득 실렸다.

익명을 원한 이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강점으로 약자에 대한 연민,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도움 등을 인정했지만 단점도 똑같이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독재적이고 때로는 보복적으로 보이는 통치 스타일, 법 문제에 대한 부주의, 정중한 의견 차이에 대한 편협함이 교황의 단점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가장 심각한 것은 신앙과 도덕 문제에서 신자들에게 혼란을 야기하는 모호성"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1월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장례 미사에 참석한 추기경들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가톨릭 2천년 역사상 최초의 아메리카 대륙(아르헨티나) 출신 교황인 프란치스코는 가톨릭계에선 이례적인 개혁파다.

동성애, 피임, 이혼 후 재혼자에 대한 성체성사 허용, 성직자의 독신 의무, 불법 이민 문제 등에 전향적이었고 가톨릭의 식민 지배 가담과 사제의 성추행을 적극적으로 사과했다.

최근에는 동성 커플에 대한 가톨릭 사제의 축복을 허용해 보수파의 거센 반발을 샀다.

익명의 추기경은 교황의 개혁 정책이 혼란을 가져왔다고 지적한 뒤 "혼란은 분열과 갈등을 낳는다"며 "그 결과 오늘날 교회는 최근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더 분열돼 있다"고 비판했다.

이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뒤를 이을 차기 교황이 갖춰야 할 7가지 덕목을 제안했다.

이 제안들은 추기경들이 차기 콘클라베(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들의 모임)에서 올곧은 정통주의자이면서 권위주의적이지 않은 통치 스타일의 후보를 다음 교황으로 뽑아야 한다는 내용으로 요약된다.

한마디로 말해 프란치스코 교황과 정반대의 인물을 차기 교황으로 선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글이 게시되기 하루 전인 지난달 28일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감기로 몸이 좋지 않아 병원을 방문한 날이다.

교황의 건강상 문제로 콘클라베가 급하게 소집될 가능성에 대비해 일부 추기경들이 후임자 논의에 착수한 것으로도 추정된다.

'데모스 2세'는 이 글에서 "이 기고가 다음 교황청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필요한 대화를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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