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개발자 ‘품귀’…미국선 일반 개발자 자르고, 웃돈 주며 모셔간다

김상범 기자 2024. 3. 5.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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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산업군에 침투하는 AI, 치솟는 몸값에도 구인 경쟁 가열
‘챗봇’ ‘알고리즘’ ‘딥러닝’ 등 AI 연관 키워드 포함 채용 공고 급증
유능한 AI 개발자 하늘의 별 따기…열악한 국내 처우 탓 미국행도

“많이 부족하죠. 대기업, 중견기업 가릴 것 없이 모두 인공지능(AI) 엔지니어를 필요로 하니까요. 요즘에는 모든 개발자 직군을 통틀어 가장 뽑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기업 인사 관련 플랫폼 서비스를 개발하는 스타트업 대표 A씨의 말이다. 이 회사 서비스의 핵심은 사람의 실제 발화(자연어)를 기반으로 한 AI 알고리즘이다. 따라서 자연어처리 AI 솔루션 개발자를 구하는 채용 공고를 상시적으로 열어두고 있다. 하지만 설립한 지 5년도 안 된 소규모 업체가 괜찮은 수준의 AI 개발자를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한다. A 대표는 “채용한다고 해도 계속 회사에 머물게 만들기도 어렵다”고 털어놨다.

2022년 11월 챗GPT 등장으로 AI가 전 산업군으로 침투하면서 기업들이 앞다퉈 인재를 찾아나서고 있다. 경향신문이 채용플랫폼 ‘사람인’과 개발자 플랫폼 ‘점핏’에 의뢰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챗봇’ ‘알고리즘’ ‘딥러닝’ 등 AI 연관 키워드가 포함된 채용 공고는 직전 2022년에 비해 각각 23.7%, 23.0%, 5.2%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두뇌의 뉴런 구조를 본떠 데이터를 처리하는 기술을 뜻하는 ‘신경망’ 키워드 공고는 무려 117.9% 늘었다. 도형·패턴이 포함된 영상을 처리하거나, 도로 위 차량·사람을 인식하는 데 필요한 인공신경망 지식을 갖춘 인력을 구하는 공고들이 사람인 채용 게시판에 다수 올라와 있다.

하지만 경험을 갖춘 AI 개발자는 쉽게 찾기 힘들다. 특히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생성형 AI 모델 개발에 발을 들여본 개발자는 더욱 적어 몸값은 치솟고 있다. 일반 개발자의 연봉이 5~6년차 기준 1억원가량이라면, AI 개발자 몸값은 적어도 최소 두 배 이상부터 시작한다는 게 업계 이야기다.

AI 알고리즘을 활용한 뷰티테크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 대표 B씨는 “일반 개발자는 인력 풀(pool)이라도 넓지만 AI 인력은 풀이 너무 좁아 뽑기가 굉장히 어려웠다”며 “기본적으로 석사 이상은 돼야 하고, 쓸 만한 사람들은 이미 어디엔가 취직해 있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그러다 보니 최근에는 구직자와 구인자의 눈높이가 다른 ‘미스매치’ 현상도 빚어지곤 한다. 컴퓨터공학 등에서 석박사를 마친 고급 AI 인재들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연봉·처우 면에서 만족할 만한 일자리가 많지 않아 미국행을 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표적인 정보기술(IT) 기업 네이버·카카오의 채용문이 올해 들어 좁아진 것도 한 요인이다. 앞서 두 회사는 챗GPT가 등장하기도 이전인 2020년부터 마치 ‘블랙홀’처럼 머신러닝·빅데이터 관련 인력 수백명을 경쟁적으로 수혈했다. 업스테이지·몰로코 같은 중견 AI 스타트업들도 집중적으로 AI 개발자들을 끌어모았다.

그러나 지난해 상반기 IT 업계가 침체기를 맞으면서 AI 인력 채용도 다소 위축됐다. 서울 한 대학에서 AI 관련 전공을 연구하는 교수는 “최근 네이버 채용이 동결되자 대신 (AI 반도체 종류인)신경망처리장치(NPU)를 개발하는 회사로 취직한 학생들이 더러 있다”고 말했다.

한 IT 업계 관계자는 “한국에는 순수 AI 모델 개발을 하는 기업이 많지 않다. 이미 나와있는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X나 미국 오픈AI 등의 거대 모델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오히려 순수한 연구·개발(R&D)을 생각하는 인재들은 갈 곳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 관련 일자리가 중장기적으로 증가 일로에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IT 업계의 채용이 잠시 주춤했다고는 하지만, 그 빈자리는 AI 기술을 도입하기 시작한 다른 산업군에서 적극 채우고 있다. 예컨대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 부문은 최근 90여개 직무에 걸쳐 AI 인재를 집중적으로 채용한 바 있다.

통신업계도 AI 조직의 덩치를 키우고 있다. 김영섭 KT 대표는 지난달 27일 “IT와 AI 등에서 확실히 입지를 다져나가야 한다. 내부에서 인재를 육성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보고 1000명 정도의 전문인력을 채용하기로 했다”고 밝혔으며, LG유플러스도 올 상반기를 목표로 생성형 AI ‘익시젠’을 개발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지난해 AI 서비스 사업부를 신설하며 인력을 대거 끌어모았는데 그 과정에서 네이버클라우드로부터 ‘AI 핵심 인력을 빼가는 행위를 중단하라’는 취지의 내용증명까지 받았다.

AI 인력의 몸값이 치솟다보니 빅테크 기업들이 즐비한 미국에서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사람을 자르는’ 사태가 일반화되기까지 한다. 미국 고용정보 사이트 ‘레이오프’에 따르면 지난 1일(현지시간) 기준 정리해고를 단행한 미국 기술기업은 총 186곳으로, 지난 1월부터 총 4만9386명이 해고됐다.

미 경제매체 CNBC는 “이 같은 인력 이탈 뒤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AI가 선두에 있다”며 “기업은 신기술을 뒷받침하는 AI 모델을 구동하는 칩과 서버에 투자하기 위해 현금을 확보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다니엘 금 컬럼비아 비즈니스스쿨 교수는 “AI와 관련 없는 개발자들을 내보내고, AI 전문성을 갖춘 새로운 인재를 채용하며 우선순위를 재설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빅테크 수장들도 앞서 “AI에 대한 장기적이고 야심찬 비전에 투자하기 위해 직원을 해고하고 비용을 통제해야 한다(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우선순위(AI)의 역량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어려운 선택(감원)을 해야 하는 게 현실(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이라는 등 공격적인 ‘AI 구조조정’을 선언한 바 있다.

김상범 기자 ksb123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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