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해풍법 표류는 직무유기

기자 2024. 3. 5.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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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길은 먼데 곳곳에 암초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이야기다. 면적이 좁고 산지가 많은 데다 수용성 측면에서도 넘어야 할 산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상풍력은 다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지리적 이점이 톡톡히 역할을 한다.

덕분에 해상풍력에 큰 장이 섰다. 아직은 설비용량이 125MW에 불과하지만 허가받은 사업이 27GW에 이른다. 재생에너지에 신중한 정부도 해상풍력의 잠재력을 높이 사 2030년까지 14.3GW를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덴마크의 외르스테드(Ørsted)를 비롯한 글로벌 강자들이 한국에 눈독 들일 만하다.

문제는 해상풍력과 관련한 개발절차가 복잡하고 이해관계자들의 동의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우선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하는 어업인들은 해상풍력을 생존의 위협으로 느낀다. 정부도 부처마다 입장이 엇갈린다. 10개 부처 29개 법령을 충족시키는 인허가 절차를 밟다 보면 9년의 사업기간도 짧은 편이다.

마구잡이 난개발의 문제점도 적잖이 드러나 이 역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입지선점을 위한 풍황계측기 알박기로 해역을 사유화하는 등 사업자의 일탈행위는 도를 넘었다. 심지어 주민 동의를 돈으로 사려다 어촌사회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일까지 발생했다.

다행히 해상풍력 개발과정의 문제점을 개선할 목적으로 해상풍력특별법이 발의되었다. 사업기간이 평균 34개월인 덴마크의 원스톱 숍(one-stop shop) 제도를 도입해 개발속도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이해관계자와 협의하여 사업입지를 결정한 뒤 사업자를 공모하는 계획입지 내용도 포함되었다. 대형 개발사업을 갈등의 수렁에 빠뜨리곤 하던 수용성 확보를 위해서다. 계획입지란 국가, 지방자치단체 또는 공공기관 등이 공공의 목적을 위해 조성한 사업지구 안에서 토지 분양 시설을 설치하는 것으로 토지형질변경 등 대지조성과 관련한 인허가 절차를 별도로 거치지 않고 입지가 가능한 것을 뜻한다.

해풍법이 발의된 지 햇수로 꼬박 3년째다. 그동안 수정법안도 2개나 발의되었고,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업위)의 법안소위가 검토한 횟수만도 12차례에 이른다.

성과라면 해풍법 제정의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점이다. 해상풍력을 반대하던 어업인들도 계획입지에는 긍정적이다. 복잡한 인허가 절차로 골머리를 앓던 사업자들도 환영한다. 시민단체들의 반대 목소리도 예전보다 잦아들었다. 정부는 원칙적으로 찬성하고 있으며, 정치권도 여야를 막론하고 해풍법 제정에 동의한다.

남은 절차는 국회의 표결뿐이다. 그런데 해풍법은 여전히 표류상태다. 21대 국회에서 제정되지 못하고 폐기될지도 모를 판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우선은 해풍법의 큰 그림을 보지 않고 기존 사업자 우대조건 같은 부분에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당사자에겐 중요하겠으나 다툼의 소지를 모두 정리하려면 하세월이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때를 놓치면 애써 이룬 성과도 부질없이 사라질지 모른다. 오죽했으면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시장 철수까지 고려하겠는가. 지금은 크게 보고 크게 움직여야 할 때다. 소소한 이익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과도한 정치화도 문제다. 해풍법이 고준위방폐성폐기물특별법과 패키지로 묶인 게 아닌지 걱정된다. 방폐장도 촌각을 다투지만, 서두른다고 능사가 아니다. 사안의 특성에 따라 차근차근 추진하는 게 순리다. 방폐장법이 급하다고 생뚱맞게 해풍법을 볼모 삼을 수는 없다. 해풍법 제정을 위한 여건이 지금보다 완벽한 적은 없었다. 화룡점정의 마지막 한 수면 충분하다. 국회가 정신차려 해풍법만큼은 박수받고 떠나기를 기대한다.

정은호 푸른아시아 전문위원

정은호 푸른아시아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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