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얼음 지키는 ‘코르크 마개’ 빙하, 녹는 속도 심상찮아”

박기용 기자 2024. 3. 5.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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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극지연구소 이원상 박사
“한반도 크기만한 스웨이츠 빙하, 매년 두께 200m씩 줄어”
“100년 뒤 발생할 일들 30~40년 안에 닥칠수도…지금은 행동할 때”
최근 전세계 남극 연구자들이 이목을 집중하고 있는 서남극 스웨이츠 빙하. 해마다 두께가 200m씩 줄고 2㎞ 이상 이동한다. 남극 전체에서 가장 빠르다. 한반도 면적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스웨이츠는 서남극 빙하가 연쇄적으로 녹아내리는 것을 막아주는 구실을 의미하는 ‘코르크 마개’ 등으로 불리는데, 전부 녹으면 해수면이 65㎝ 올라간다. 극지연구소 제공

기후변화를 얘기할 때 북극곰이나 빙하가 자주 등장하는 건 지구상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가 극지방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북극해에선 불과 몇년 뒤 한여름엔 아예 얼음을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남극 대륙에서도 빙하 녹는 속도가 40년 전보다 6배가량 빨라졌다. 한반도 61배 크기인 남극 대륙엔 거대한 얼음이 2천~3천m 높이로 쌓여 있다. 이 거대한 얼음은 전세계 기상 패턴과 바다 온도, 영양염 수준에 영향을 미친다. 모조리 녹으면 지구 해수면이 58m나 상승한다. 인천, 부산만이 아니라 전세계 문명이 물속으로 사라지게 될 수도 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설 극지연구소(KOPRI)는 이런 남극의 변화를 살펴보는 전세계 주요 연구소 중 하나다. 극지연구소 빙하지각연구본부 소속 이원상 박사는 2006년 입사 이래 15번이나 남극을 방문한 베테랑 연구자다. 이 박사는 가장 최근에도 지난해 12월25일부터 올해 2월16일까지 한달 반 일정으로 남극을 다녀왔다. 그는 이 기간에 국내 유일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를 타고 남극에서 바다 온도와 빙하 두께를 재고 남극의 생태계를 연구했다. 지난달 23일 인천 송도 극지연구소에서 이 박사를 만나 남극의 현재 상황 등에 대해 들어봤다.

지난달 23일 인천 송도 극지연구소에서 이원상 박사가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연구자들은 요즘 세종기지를 ‘남극의 하와이’라고 불러요.”

남극은 본초 자오선(경도 0도)을 기준으로 서남극과 동남극으로 나뉜다. 1988년 지은 세종과학기지가 서남극에, 2014년 완공한 장보고과학기지가 동남극에 있다. 이 박사는 따뜻한 물이 침투하기 쉬운 지형 탓에 서남극 얼음이 더 빨리 녹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박사를 비롯한 남극 연구진은 최근 지구온난화로 인한 남극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특히 서남극 스웨이츠 빙하의 상황이 심상치 않아 예의주시하고 있다. 서남극 빙하가 연쇄적으로 녹아내리는 것을 막아주는 구실을 하고 있어 ‘코르크 마개’로도 불려온 스웨이츠 빙하는 해마다 두께가 200m씩 줄고 2㎞ 이상 이동하고 있다. 남극 전체에서 가장 빠른 속도다. 한반도 면적보다 조금 작은 크기인 이 빙하가 전부 녹을 경우, 해수면 높이가 65㎝나 올라간다. 지구에 재앙을 초래하는 신호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탄광 속 카나리아’로 불리기도 하는 까닭이다.

이번 방문을 포함해 세번 연속 스웨이츠 빙하에 다녀온 이 박사의 눈에도 심상치 않은 신호들이 속속 포착됐다. “인공위성으로 보면 두께가 줄어드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죠. (녹아서) 이동 속도가 빨라지면 갈라지거든요. 헬기에서 보니 크레바스(갈라진 틈)가 확실히 많아졌더라고요. ‘진짜 위험하다’ 싶을 만큼 많이 깨지고 있어요.”

연구자들 사이에서 빙하 근처 바닷속에 ‘수중 커튼’을 만들자는 제안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수중 커튼은 따뜻한 바닷물이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빙하가 바다와 만나는 해저에 100m 높이의 천연섬유 부유벽을 세우자는 ‘지구공학적’ 대책이다. 이 박사는 “몇년 전 처음 (이런 주장이) 제기됐을 때만 해도 과학자들이 ‘과잉 진료’, ‘절대 하지 말라’며 서명운동도 했는데 요즘엔 ‘해볼 만하다’, ‘검토는 해보자’는 식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고 보는 것이다.

기후위기가 심각해질수록 이를 대중에게 알리려는 연구자들의 마음도 간절해지고 있다. 스웨이츠 빙하 인근 소규모 빙하에 특정 도시명을 붙이기로 한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2021년 영국 남극지명위원회는 주요 기후회의 개최 도시 이름을 남극 빙하에 붙이기로 했고, 이에 따라 서남극엔 리오(리우) 빙하와 베를린 빙하, 교토 빙하에 이어 ‘인천 빙하’도 생겼다. 이 박사는 “해당 도시와 국가가 남극 상황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헬기에서 내려다본 스웨이츠 빙하의 크레바스(갈라진 틈). 극지연구소 제공

연구자들 대다수는 ‘과학적으로 확실한 것만 얘기해야 한다’는 경향이 있지만 “극지 연구자들 사이의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다”는 게 이 박사의 얘기다. 그는 “사람들이 상황이 심각한데도 ‘그렇구나’라며 흘려듣지 않도록, 최근엔 연구자들이 거짓말이 아닌 선에서 최대한 얘기를 많이 하자는 편”이라고 말했다. “연구라는 게 어차피 한 사람이 하는 게 아니어서, 100명이 하면 100가지 결과가 나와요. 그럼 아이피시시(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같은 데선 중간값을 찾죠. 하지만 분명히 위험하고 높은 값도 있거든요.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얘기하지 않으면 안 바뀐다’는 공감대가 생긴 것 같아요.”

실제 아이피시시 보고서는 새로 채택될 때마다 전망치가 달라진다. 2100년 지구 평균 해수면 상승은 1.1m로 예상되고 있는데 (2019년) 이전 보고서에선 1m(2014년), 59㎝(2007년)였다. 전망치가 바뀐 건 “남극 빙상의 예상 기여도가 커졌기 때문”이다. 그만큼 해수면 상승 문제에 있어 남극 연구는 핵심이다. 2050년께 인천 앞바다 해수면이 지구 평균보다 10% 더 높이 상승하고 뉴욕, 시드니 등 5개 주요 해안 도시 가운데 가장 높다는 것도 최근 연구로 알게 된 사실이다.

이 박사는 “과거 100년, 1천년 뒤에나 일어날 거라고 여겼던 일들이 최근엔 30~40년 안에 눈에 띄는 변화로 일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기후변화와 관련해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야겠다”고 다짐하는 까닭이다. 그는 “유엔 모토 중에 가장 좋아하는 게 ‘액트 나우’(Act Now: ‘당장 행동하라’는 뜻)”라며 “지금은 생각할 시간이 아니라 움직여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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