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오션 "불법 제재해야" vs HD현대중 "억지 주장"... 7.8조 함정 수주 '10년 악연' 점입가경

윤현종 2024. 3. 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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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오션, HD현대중 고발 이어 기자설명회 
"KDDX 기밀 탈취 때 임원 개입 정황 뚜렷"
HD현대중 "수사 기록 짜깁기로 사실 왜곡"
소송전 언제까지... "K방산 신뢰 하락 우려"
구승모 한화오션 컴플라이언스실 변호사가 5일 오전 서울 중구 한화빌딩에서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개념설계 보고서 유출과 관련해 HD현대중공업 임원의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고발 관련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뉴스1

총 사업비 8조 원에 육박하는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건조를 두고 국내 양대 구축함 제조업체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의 해묵은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한화오션은 5일 서울 중구 한화빌딩에서 HD현대중공업의 군사기밀 불법탈취 관련 임원 개입 여부 고발장 접수에 대한 기자설명회를 열었고, HD현대중공업은 한화오션이 사안을 호도하고 있다며 곧바로 맞대응에 나섰다. 양사 간 소송전이 격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선 모처럼 훈풍이 부는 K방산 시장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화오션 "결재 라인상 임원 개입할 수밖에"

한화오션은 이날 설명회에서 직접 입수한 판결문과 공개기록 등을 토대로, HD현대중공업이 KDDX 기밀을 탈취할 때 임원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7일 방사청이 HD현대중공업의 함정 수주 입찰 자격을 박탈하지 않은 핵심 근거 중 하나인 "청렴서약 위반의 전제가 되는 대표나 임원의 개입이 객관적 사실로 확인되지 않아 제재 처분할 수 없다"는 판단과 관련해 현대중공업 임원에 대한 경찰의 엄중한 수사도 촉구했다.

5일 오전 서울 중구 한화빌딩에서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기밀 유출 관련 HD현대중공업 고발장 제출에 대한 한화오션의 입장 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한화오션은 정보공개청구 소송으로 확보한 군사안보지원사령부 특별사법경찰의 피의자 신문조서도 공개했다. 조서에는 'KDDX 관련 군사비밀을 취득하고 보고한 내용을 피의자의 부서장, 중역이 결재했다. 맞느냐'는 질문에, HD현대중공업 직원으로 추정되는 피의자가 '예'라고 답한 내용이 기재돼 있다. 구승모 한화오션 사내 변호사는 "결재 라인만 보더라도 당연히 (HD현대중공업의) 임원이 (군사기밀 탈취에)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보인다"고 주장했다.

양사의 갈등은 KDDX 수주의 8부 능선으로 여겨지는 기본설계 사업자 선정 전인 2014년,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이 한화오션의 KDDX 개념설계(3급 군사기밀) 등을 몰래 취득한 사실로 촉발됐다. 지난해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이 최종 유죄 판결을 받으며 일단락되는 듯했으나, 올 들어 재점화했다. 유죄 판결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방위사업청이 HD현대중공업의 함정 수주 입찰 자격을 박탈하지 않자 한화오션이 강하게 반발한 것이다. 한화오션은 기밀 탈취 당시 HD현대중공업의 특수선사업부 소속 한 임원을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차기 구축함 두고 엎치락뒤치락... 10년 묵은 악연

업계와 전문가들은 한화오션의 반발이 오는 6월로 예정된, KDDX 사업의 사실상 마지막 단계인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계약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서라고 보고 있다. KDDX 사업에는 국내 최초의 '스텔스 구축함' 6척 건조를 목표로 개발비 1조8,000억 원, 척당 건조비 1조 원 등 총 7조8,000억 원이 투입된다. 2011년 착수한 이 사업은 '개념설계 → 기본설계 →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 후속함 건조' 순으로 진행되는데, 한화오션은 2012년 개념설계를, HD현대중공업은 2020년 기본설계를 수주했다. 이 경우 방위사업규정 86조에 따라 기본설계 사업자(HD현대중공업)가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를 맡는 것이 통상적인 수순이다.

5일 오전 서울 중구 한화빌딩에서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기밀 유출 관련 HD현대중공업 고발장 제출에 대한 한화오션의 입장 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윤현종 기자

HD현대중공업의 이 같은 지위(우선협상대상자)는 2014년 직원들이 한화오션의 개념설계도를 빼돌린 것과 관계없이 유지돼왔다. 기본설계 사업자 선정 당시 기밀 유출에 반발한 한화오션(당시 대우조선해양)이 2020년 8월 ‘우선협상대상자 지위확인 가처분’ 신청을 했지만, 같은 해 9월 서울지방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HD현대중이 KDDX 기본설계 수주 과정에서 한화오션의 개념설계도를 활용하지 않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방사청이 HD현대중공업에 사실상 제재 면제를 결정했으니 한화오션으로선 상세설계 단독 입찰 기회를 잃게 된 것이다.

방위산업 분야의 한 전문가는 "방사청은 현재까지 나온 수사기관과 법원의 최종 판단에 따라 HD현대중공업의 함정사업 입찰 자격을 유지한 것"이라며 "무기체계 사업을 두고 대기업들이 소송전에 이어 고발 기자설명회까지 연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며, 올해 예정된 KDDX 사업의 상세설계 및 선도함 수주에서 한화오션이 유리한 입장을 견지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HD현대중 "빼돌린 기밀, 활용 가치도 없었다"

HD현대중공업은 한화오션의 설명회 개최 직후 신속하게 입장문을 내고 'KDDX 개념설계 보고서를 탈취해 입찰 참가 등에 활용했다'는 한화오션의 주장을 반박했다. HD현대중공업은 "KDDX 사업은 2013년 이후 중단됐다 2018년 개념 연구를 수행하며 재개됐다. 해당 사업 개념 역시 2013년과 달리 2018년 다시 정립됐기 때문에, 2013년의 개념설계 자료는 활용할 가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HD현대중공업은 이날 한화오션이 근거로 제시한 자료에 대해 정보공개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도 주장했다. 한화오션의 문제 제기에 대해 "사법부의 판결과 방사청의 두 차례에 걸친 심도 있는 심의를 통해 종결된 사안"이라며 "수사 기록과 판결문을 일방적으로 짜깁기해 사실관계를 크게 왜곡하고 있어 깊은 유감을 표한다"는 비판도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차기 함정 건조를 두고 한국 업체 간 경쟁이 과열되는 양상은 K방산 수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장원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을 비롯한 방산 선진국은 무기체계의 안정적 생산을 위해 제도를 개편하며 단일 프로젝트에 복수 사업자를 선정하는 등 끊임없이 혁신하고 있다"면서 "국산 함정의 해외 수출이 확대되는 현시점에서 국내 업체끼리 제로섬 게임을 하는 현상은 수출 상대국에 한국 방산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윤현종 기자 bell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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