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감으로 버텼지만 앞으론 더 걱정" 한계 보이는 비상의료 체계
5일, 정부가 전공의 7000여 명에 대해 3개월 면허정지 사전통보서를 보내기로 발표하면서 이들이 병원에 돌아오더라도 3개월 동안 진료 업무에서 손을 떼게 됐다. 게다가 이탈 전공의가 8983명(5일 기준)으로 확인된 가운데, 정부가 7000여 명을 제외한 나머지 인력에 대해 병원 현장에서 '부재중'임을 눈으로 확인하면 추가로 면허정지 사전통보서를 보낼 예정이어서 3개월간 전국적인 전공의 공백 사태가 현실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3개월 이내에 대한민국 의료는 완전히 멈출 것"이라는 현직 흉부외과 교수의 진단이 나왔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로 재직 중인 A씨는 5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전공의는 한 해 2개월 넘게 휴직하면 출석이 인정되지 않아 1년을 날리는 셈"이라며 "정부가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의 퇴로까지 차단하면서 3개월 동안 전공의가 업무에 복귀하지 못하면 아무리 비상진료 체계로 운영하더라도 대한민국 의료는 멈추고 붕괴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우리 몸이 질병에 걸린 후 대처하는 과정을 의료 시스템에 빗댔다. A 교수는 "몸도 질병에 걸리면 급성기 2주, 아급성기 2개월을 지나 만성화 단계에 접어드는데 감기는 급성기에 대부분 저절로 낫지만 코로나19는 아급성기를 지나면 사망률이 크게 오르지 않느냐"며 "우리나라 의료체계도 진료과에 따라 짧게는 2주(급성기), 길게는 2개월(아급성기)이면 눈에 보이는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진료과의 전공의 의존도에 따라 무너지는 속도가 다를 것이란 전망이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기피 과 중에서도 기피 과로 꼽히는 흉부외과의 경우 이미 20여 년 전부터 전공의 씨가 마른 상태다. 이에 흉부외과계는 전공의의 빈자리를 대체해 PA(진료지원) 간호사를 불법이지만 투입해왔다. 한마디로 '전공의 없는 시스템'에 익숙한 것이다. 반면 전공의의 존재감이 컸던 내과 중환자실 등에선 전공의가 갑자기 사라지자 '급성기'에 접어들었다는 것. 그는 "필수과 중 전공의 기피가 아주 심각하지 않던 내과의 경우 교수(전문의)가 중환자실 업무까지 갑자기 맡게 됐는데 익숙하지 않은 일"이라며 "이런 상태로 가다가는 3개월은커녕 길어도 두 달 안에 진료시스템이 망가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번 전공의 이탈사태는 4년 전 전공의 파업 때를 연상케 하면서도 '더 독해졌다'는 게 특징이다. 2020년엔 의대 증원(연 400명)과 공공의대 설립을 반대한 전공의들이 파업하면서 1차 파업을 기준으로 22일 만에 정부가 백기를 들며 끝났다. 하지만 이번에 전공의들이 파업이 아닌 사직을 선택해 '돌아오지 않을 각오'를 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게다가 그들이 병원을 떠난 지 14일째인 지난 4일, 윤석열 정부는 법과 원칙대로 진행하겠다는 기존의 발표대로 행정·사법절차를 개시하기로 했다. 결국 15일째인 5일엔 7000여 명에 대해 면허정지 사전 통보를 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병원 교수(전문의)들의 이탈 조짐까지 보이면서 상급종합병원의 중증·응급 진료가 멈추는 시간은 더 앞당겨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병원에 남아있는 전문의·간호사 등 의료진의 피로감이 한계에 봉착할 수 있어서다. 이미 일선 병원에선 전공의 사직 이후 교수들과 전문의·전임의(펠로우)가 응급실 등 필수의료를 중심으로 비상 당직 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전북대병원 한 의사는 "체력적인 한계를 넘어선 지 오래다. 당직 근무를 선 뒤 쉬지도 못하고 진료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라며 "밤을 꼬박 새워 머리도 아프고 눈이 감긴다. 환자의 진료일지도 흐릿흐릿하게 보일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간호사 B씨는 "환자의 곁을 지키고 있는 교수님들의 피로가 가중되고 있다.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사명감으로 환자의 곁을 지키고 계신다. 지난 2주는 어떻게든 버텼지만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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