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미뤄 입원환자 없다고…간호사에 반강제로 "연차 써라"

박정렬 기자 2024. 3. 5.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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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김명년 기자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회원들이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대정원 및 공공병원 확대 촉구, 전공의 집단행동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2024.02.27. kmn@newsis.com /사진=김명년

전공의 집단 이탈로 의사와 함께 병원을 지키는 '또 다른 축'인 간호사들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간호사의 역할 확대, 병원 경영 악화 등 의사의 집단행동이 간호사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아서다. 수술실이나 응급실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은 전공의의 자리를 채우느라 극도의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반면 입원실에서 일하는 간호사는 환자수가 줄면서 강제 연차를 사용하란 강요를 받고 있다. 동요하는 간호사를 위해 적합한 보상 체계를 마련하는 등 정책적 뒷받침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의사 일 간호사가 떠맡아
전공의가 병원을 떠나 생긴 '의료공백'을 막기 위해 각 의료기관은 수술·입원 환자 관리 등에 PA(진료지원) 간호사를 적극 투입하고 있다. PA간호사는 그동안 의사만 할 수 있는 시술 동의서 받기, 창상 소독(드레싱), 수술 기록지 작성, 도뇨관·비위관 삽입 등의 업무를 암암리에 수행해왔다. 지금까지 불법적으로 진료에 투입됐지만 지난달 27일 정부가 '진료지원(PA) 인력 시범사업'을 통해 간호사의 의료기관 내 행위를 법적으로 보호하고 나서면서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

다만,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업무 기준'이 아직 명확하지 않아 PA간호사는 물론 일반 간호사마저 대리 처방 등 의사 업무를 떠맡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서울지역 대학병원 간호사 A씨는 "정부가 간호법은 거부해놓고 의사가 없다며 간호사를 활용하겠다고 하는 것을 보고 '우리가 호구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제대로 양해도 구하지 않고 비용 보상도 하지 않을 거면서 병원이 당연하게 일을 시키는 데 화가 난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는 정부 발표 직후인 지난달 29일 "시범사업만으로 완벽하게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며 "전공의들이 떠나간 그 자리를 간호사에게 책임 지우려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무책임의 극치"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들이 이동하고 있다./사진=(서울=뉴스1) 장수영 기자
환자 없다고 강제 연차
의사가 집단 이탈하자 각 병원은 수술 일정을 늦추거나, 병동·응급실 수용 인원을 조절하는 등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수술 건수·병상 가동률이 50% 이상 감소한 곳도 있다. 환자가 줄면서 특히 병동 간호사의 역할이 축소됐다. 환자 수 대비 간호사 수가 많은 병원은 인건비 절감을 위해 남는 인력에 장기 휴가나 연차 사용을 반강제적으로 요구하기도 한다.
5일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전공의 집단 이탈 이후 협회가 마련한 '현장 간호사 애로사항 신고센터'에는 휴가나 근무 조정 등의 민원이 10건 이상 접수됐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간호사 등에게 원치 않는 연차·휴가 사용을 강제하는 사례가 벌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수도권에서 일하는 간호사 B씨는 "병원의 수익 감소가 불 보듯 뻔한 상황에 임금이 줄지 않을지 걱정하는 동료 간호사도 적지 않다"며 "원치 않게 실직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역시 병원에서는 의사가 '갑'인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인원 늘며 취업난까지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지난 1일 자신의 직업을 간호사로 밝힌 이가 "왜 갑자기 불취업이 된거죠?"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불취업은 취업의 어려움을 가리키는 은어다. 작성자는 "6개월 전만 해도 이 정도로 심하진 않았는데 서울 로컬(병원)을 다 찔러봐도 연락이 오는 비율이 확 줄었다"며 "면접하러 오는 사람이 많은지 연락이 와도 공고에 제시한 최소 연봉보다 낮게 부른다"고 토로했다.
연도별 면허 간호사 수/그래픽=이지혜


간호대학은 의과대학과 달리 지속해서 입학 정원을 늘려왔다.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10~2020년 면허 간호사 수 연평균 증가율은 4.91%로 의사(2.46%)나 한의사(3.19%)를 크게 웃돈다. 취업난으로 규모가 작은 병원이나 지방에서 원치 않게 일을 찾거나 몸값을 낮춰 입사하는 경우도 점점 늘고 있다. '빅5 병원' 중 한 곳의 간호사 C씨는 "예전에는 신규 간호사가 퇴사하는 일이 잦았는데 요즘은 거의 없다"고 귀띔했다. 간호사 D씨는 "의사단체는 이렇게나 증원에 예민한데 간호사는 단체행동은 커녕 정부·의사 눈치만 보고 있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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