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곁의 기후위기

최상원 기자 2024. 3. 5. 15:5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국내 최대 벚꽃 축제인 경남 창원시 진해군항제의 지난해 모습. 창원시 제공

[전국 프리즘] 최상원ㅣ전국부 선임기자

새색시가 꽁꽁 얼어붙은 저수지 위에서 살포시 웃으며 서 있다. 등에는 포대기에 싸인 어린아이가 업혀 있다. 새색시는 1965년 1월1일 결혼해서, 남편 고향인 경남 고성군 산골로 시집온 어머니이다. 어머니 등에 업힌 어린아이는 나의 사촌 형으로, 올해 초 환갑을 맞았다.

지난 설날 온 가족이 모여 앨범 속 빛바랜 흑백사진을 보며 한참을 웃었다. 갓 시집온 어머니는 어린 조카가 예뻐서 온 동네를 업고 다녔다고 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사진 속 저수지에서 동네 꼬맹이들과 여름에는 개헤엄을 치고 겨울에는 썰매를 탔다고 했다.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전설 같은 이야기이다. 동네 청년회의 막내조차 환갑을 넘긴 판에, 저수지에서 발가벗고 물장구칠 아이들이 어디에 있겠는가. 또 한겨울이라 한들 저수지에 살얼음조차 얼지 않는데 어찌 썰매를 타겠는가.

기후변화는 굶주린 북극곰에게만 닥친 위기가 아니었다. 기후위기는 어느새 내 곁에 바짝 다가와 있었다. 어제와 오늘, 작년과 올해의 차이를 느끼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몇십년 세월이 쌓이고 쌓이니까 변해도 너무 변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국내 최대 벚꽃축제인 진해군항제가 올해는 3월22일부터 4월1일까지 열린다. 1963년 시작해서 올해로 62회째인데, 3월22일 개막식은 군항제 역사상 가장 이른 날짜다. 1963년 제1회 진해군항제는 4월5일부터 16일까지 열렸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개막일이 조금씩 앞당겨지기 시작해 지난해엔 3월24일에 열렸다. 올해도 지난해보다 이틀 앞당겼다.

벚꽃 피는 시기가 시나브로 빨라지면서, 결국 61년 만에 개막식 날짜를 14일이나 조정해야 했던 것이다. 올해 폐막일인 4월1일엔 벚꽃이 거의 질 것으로 예상하는데, 1960년대 초창기 군항제에는 이때 벚꽃이 아예 피지도 않았다. 진해군항제만 앞당겨진 것은 아니다. 겨울에도 얼음이 얼지 않고, 봄꽃이 때아니게 일찍 피는 등 기후변화 영향으로 전국의 많은 계절축제가 개최 시기를 바꾸고 있다. 심지어 기후변화 때문에 축제를 취소하는 사례도 있다.

“꿀벌이 사라졌다”는 언론 보도는 몇년 전부터 봄마다 나오는 단골 기사가 됐다. 올봄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온갖 대책을 내놓지만 백약이 무효한 상황이다. 봄마다 반복되는 꿀벌 실종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양봉 농가들은 기후변화를 첫번째 원인으로 꼽는다. 꿀벌 실종 사태는 기후위기에 따른 자연재해인 셈이다.

2022년부터 경남 진해만에는 예전엔 구경도 할 수 없었던 정어리 떼가 몰려든다. 창원시는 2022년 10월 한달 동안 해안에서 죽은 정어리 226t을 수거했다. 1억1300만마리에 이르는 양으로 추산된다. 이 역시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는데, 기후변화를 떼어놓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박종관 창원대 교수(환경공학과)는 “기후변화에 따른 생태적 변화는 사회적·경제적 변화로 이어질 것이다. 탄소중립을 통해 기후변화 가속화를 막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물론 국가 정책이 중요하지만, 개인 차원에서도 경각심을 갖고 에너지 사용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 대부분이 화석연료 기반의 발전을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박종권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대표의 경고는 더 섬뜩하다. “기후변화는 그저 단순한 현상이 아니다. 재난의 시작이다. 식량 위기, 인류 생존 위기를 알리는 신호다.”

나는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심정으로, 올해 조그맣게라도 꿀벌을 키워볼까 싶다. 벌꿀이 탐나서가 아니다. 한마리의 꿀벌이라도 늘리기 위해서다. 그 벌이 도심의 생태계 복원에 미력이나마 힘을 보탤 테고, 그만큼 단 0.0001초라도 기후변화 속도를 늦출 테니까. 마침 소규모 도시양봉이 유행이라고 한다. 그리고 또 생각해본다. 기후위기가 이미 코앞까지 닥쳐온 상황에서 내가 해야만 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또 무엇이 있을까?

csw@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