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 하락, 집값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아기곰의 부동산산책]
지난 몇 년간 합계출산율이 줄어들자 이러다가 한민족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극단적인 비관론마저 판치고 있다. 우리나라 인구가 얼마나 줄고 있으며, 그 원인이 무엇인지 2부에 걸쳐서 살펴보자.
통계청에 따르면 주민등록 인구 기준으로 2024년 1월 말 우리나라의 인구는 5131만3912명으로 가장 인구가 많았던 2019년 11월에 비해 1.0%가량 인구가 줄었다. 4년 2개월 동안 53만7000여 명의 인구가 줄어든 것이다.
그러면 2019년 11월 이후 인구가 왜 줄었을까? 두 가지 가설이 있을 수 있다. 첫째는 2019년 말은 코로나19가 퍼지기 시작한 시기이므로 이로 인해 코로나에 취약한 노인층이 줄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출생아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2019년 11월부터 2024년 1월까지 연령대별 인구수를 비교해보면 100세 이상 노령층만 1만1485명이 줄었을 뿐 다른 연령층의 인구는 늘어났다. 우리나라 인구 구조가 고령화되는 추세를 감안하더라도 90세 이상의 연령층에서만 통계에 영향을 줄 만한 사망률 증가가 있었다.
이에 비해 출생아 수는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다음 표는 통계가 시작된 1970년부터 2022년까지 출생아 수 추이인데, 뚜렷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출생아 수가 가장 많았던 해는 2차 베이비 붐이 일었던 1971년이다. 이때의 출생아 수는 102만4773명이었는데, 2022년에는 4분의 1도 되지 않는 24만9186명까지 줄어든 것이다.
결국 2020년부터 시작된 인구 감소 현상은 코로나 사태도 영향이 없지는 않지만 출생아 수의 급격한 감소가 그 직접적인 원인이라 하겠다.
그러면 출생아 수는 왜 이리 줄었을까? 다시 말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아이를 적게 낳는 것일까?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과 같이 높은 집값에 질린 젊은 계층이 결혼을 포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출산율이 떨어진 것일까?
1972년부터 떨어진 출산율
그것은 아니다. 다음 표를 보더라도 우리나라 출생아 수가 줄어든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1972년부터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집값이 너무 올라서 출산율이 떨어졌다는 주장은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그 주장이 맞다면 이미 1972년부터 우리나라 집값 수준이 너무 높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집값이 가장 많이 오른 시기는 88 올림픽 전후이다. 1986년 12월에서 1990년 12월까지 4년간 전국 아파트 매매가는 무려 109%나 올랐다. 특히 1990년에만 32%나 올랐는데, 이는 KB국민은행 통계가 시작된 1986년부터 지금까지 가장 높은 집값 상승률이다. 그러면 높은 집값에 좌절한 젊은 세대는 결혼도 하지 않고 출산도 하지 않아야 하는데 표에서 볼 수 있듯이 (1990년에 임신하여) 1991년 출산한 신생아 수는 갑자기 늘어났다.
결국 높은 집값 때문에 출산율이 낮아졌다는 것은 근거가 희박한 주장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출산율이 떨어진 근본적이 원인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큰 세 가지 원인을 살펴보자.
첫째 원인은 산업 구조의 변화이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이전에는 전형적인 농업국가였다. 하지만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성공 등에 힘입어 1970년대 이후 제조업 등 산업화 국가로 변신하기 시작하여 지금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산업국가가 됐다.
이는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1970년 농업에 종사하는 가구는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45%나 되었지만 50년이 흐른 2020년에는 전체 가구수의 5%만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반세기 동안 전혀 다른 나라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산업 구조의 변화와 출산율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자식=노동력 → 자식=비용
전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는 인도이다. 2위은 중국이고, 3위는 미국, 4위는 인도네시아, 5위는 파키스탄이다. 전 세계에서 인구가 많은 다섯 개 국가 중에서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을 제외하고 나머지 4개국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벼농사 지역에서 발원한 국가라는 것이다.
인구가 2000만 명이 넘는 나라 중 인구밀도가 높은 1~9위 국가(방글라데시, 대만, 한국, 인도, 필리핀, 스리랑카, 일본, 베트남, 파키스탄) 모두 과거 쌀농사를 주력으로 했던 나라들이다.
벼농사는 상당히 많은 손길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유목이나 수렵, 심지어는 밀 농사보다도 노동집약적인 산업이 바로 벼농사라는 뜻이다. 이런 이유로 쌀농사가 발달된 나라에는 인구가 많은 것이다. 한반도만 하더라도 면적이 남한보다 넓은 북한의 인구는 남한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논은 주로 남부나 중부 지방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농사를 짓는 사람의 입장에서 출산은 노동력의 증가를 뜻하기 때문에 출산은 ‘부의 증가’를 의미했다. 농본 사회에서의 출산의 의미는 지금과는 전혀 다르다 하겠다.
하지만 제조업, 더 나가 정보산업 시대에서의 단순 노동력은 큰 의미가 없다. 과거에는 사람의 힘으로 했던 일들이 빠르게 기계나 컴퓨터로 대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같은 사람은 수백, 수천 명의 부가가치를 창출해 내고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농본 사회에서는 특별한 교육이나 훈련이 없어도 10대만 되면 노동에 바로 투입할 수 있었지만 노동력의 양보다는 질을 우선시하는 현대사회는 교육 수준에 따라 소득이 차별화되고는 한다. 이에 따라 출산 자체보다는 출산 후 교육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고임금의 직업에 종사하려면 20대 이상까지 공부를 해야 하므로 이 기간 동안에는 소득 활동보다는 소비만 하게 된다. 다시 말해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식이 많을수록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더 많이 들어가는 구조가 된 것이다.
이러니 자식을 여럿 낳아 교육을 적게 시켜 키우는 것보다 한두 명 정도만 낳아서 집중적으로 교육을 시키는 것이 가성비가 높은 자식 농사가 된 것이다.
물론 손익을 계산하면서 자식을 낳고 키우는 부모는 없다. 하지만 주위에서 자식을 많이 낳은 부모들이 고생하는 것을 보면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다음 칼럼에서는 나머지 두 가지 원인과 출산율을 올리는 대책에 대해 살펴보자.
아기곰 (‘재테크 불변의 법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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