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사직 보름째, 교수도 사직·삭발식…반발 악화일로
정부가 전국 40개 대학을 대상으로 시행한 의대 정원 수요조사 마감 다음 날인 오늘(5일) 의과대학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거나 삭발식을 여는 등 반발하고 있습니다.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가 보름째 계속되는 가운데, 현장에 남은 의료진이 업무 과중으로 인한 피로를 호소하거나 환자 불편이 이어지는 등 의료공백이 점차 커지는 모습입니다.
이틀째 수련병원 현장점검을 이어가고 있는 정부는 전공의 7천여 명에 대한 미 복귀 증거를 확보했다며, 이들에 대한 행정·사법 처리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전국 40개 의대가 3천401명 증원을 신청한 가운데 의과대학 교수들은 대학 본부의 증원 방침에 반발하고 있습니다.
오늘 오전 강원대 의대 앞에서 이 대학 교수 10여 명을 중심으로 진행된 삭발식에서 류세민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장과 유윤종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부학·원장은 대학 측의 증원 규모 결정을 비판하며 머리를 밀었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승준 강원대 의대 호흡기내과 교수는 "지난주 진행한 교수 회의에서 77%가 의대 증원 신청을 거부한다는 의견을 표명했지만 이를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고 항의했습니다.
일부 교수들은 SNS를 통해 사직 의사를 밝히거나 실제 사직서를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충북대병원 심장내과 A교수는 오늘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해 병원에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이 교수는 전날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글에서 정부의 의사 면허 정지 방침과 충북대 의대 정원 확대 규모 등을 언급하며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다시 들어올 길이 요원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습니다.
이어 "그들과 같이 일할 수 없다면 병원에 남을 이유가 없어 사직하고자 한다"고 밝혔습니다.
경북대병원에서도 한 외과교수가 전날 소셜미디어(SNS)에 "우는 아이한테 뺨 때리는 격으로 정부는 협박만 하고 있다"며 사직의 뜻을 밝혔습니다.
충남대 의대·충남대병원·세종충남대병원 교수 370명으로 구성된 충남대병원 비대위는 전날 학무회의 결정을 앞두고 대학본부에 의대 학생 정원 동결을 요청하는 의견서를 내기도 했습니다.
의대 증원 신청 규모가 공개되고 전공의들에 대한 행정·사법 처리가 가시화되자 전국 의대와 대학병원은 교수들의 집단행동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입니다.
정부가 전국 수련병원을 대상으로 이틀째 현장점검을 이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대다수 전공의가 의료현장을 이탈한 상황입니다.
전날 기준 제주지역 6개 수련병원 전공의 150명 중 142명(94.7%)이 근무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특히 제주대병원의 경우 전체 전공의 108명 중 단 6명(5.6%)만 근무 중입니다.
경기 남부 지역에서도 주요 수련병원 7곳 소속 전공의 중 약 79%가 근무하지 않고 있습니다.
강원 지역은 9개 수련병원 전공의 390명 중 360명(92.3%)이 사직서를 낸 가운데 복귀 인원은 여전히 미미한 수준입니다.
인천에서도 11개 수련병원 전공의 535명 중 87%인 468명이 근무지를 이탈한 것으로 파악됐으며 현장 복귀는 미미한 수준입니다.
인천시 관계자는 "정부가 복귀 시한을 정했음에도 업무 복귀가 미미한 수준"이라며 "인천시가 업무개시명령 권한은 있지만, 처벌 권한은 없어 복지부에 명단 제출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대전 5개 주요 수련병원에 사직서를 낸 전공의 414명 중 346명에게 업무개시명령이 내려졌지만, 지난달 26일 대전성모병원에 복귀한 1명을 제외하고 현재까지 복귀자는 없습니다.
천안지역 대형병원(단국대·순천향대병원)도 지난달 말 순천향대 병원 복귀자 1명을 제외하고는 추가 복귀자는 없는 상태입니다.
충북대병원, 전북대병원, 울산대병원 등에서도 전공의 대부분이 업무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경남도에서도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 중 아직 현장으로 복귀한 경우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남대병원은 전공의 156명이 현장을 이탈한 가운데, 신규 전임의(펠로우) 21명이 임용을 포기하면서 의료 공백이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인턴과 전임의들의 임용 포기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부산대병원은 1년 단위로 계약해 근무하는 전임의 27명 가운데 22명이 임용을 포기했습니다.
이달부터 근무하기로 한 부산대병원 신규 인턴 50여 명과 동아대 병원 신규 인턴 30명가량도 임용 포기 각서를 쓰고 출근하지 않고 있습니다.
전날부터 대전 5개 주요 대학·종합병원에서 근무할 예정이었던 인턴 147명 전원, 충남 천안 지역 대형병원인 순천향대·단국대학병원 인턴 예정자 68명 중 64명이 임용을 포기했습니다.
고양 지역에서는 신규인턴 70여 명이 임용 포기각서를 제출했습니다.
전북대병원에서는 신규 인턴 52명 중 대다수가 병원에 출근하지 않고 있고, 전공의 과정을 마친 전임의 25명 중에서도 임용을 포기한 사례가 소수 나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영남대병원 인턴 예정자들도 대거 임용 포기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예수병원은 이달부터 출근이 예정돼있던 인턴 19명 중 18명이 출근하지 않고 있습니다.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가 보름째 이어지면서 진료·수술 지연 등 현장에 남아있는 의료진의 피로는 가중되고 환자 피해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전립선암 4기로 치료를 받다 2주 전 퇴원한 김 모(56)씨는 전날 혈뇨로 119구급차를 타고 이 병원을 찾았다가 구급차에서 3∼4시간을 대기해야 했습니다.
김 씨의 아내 이 모(55)씨는 "병원에서 진료를 못 본다고 구급차에 계속 대기하라고 했다"며 "구급차는 응급환자를 데리고 다녀야 하는데 구급차와 구급대원들 발을 묶어 놓는다는 사실에 기가 막혔다"고 말했습니다.
영남대병원 응급실은 외과 의료진 부재로 추적관찰 환자 외 환자 수용이 어려운 상태고, 경북대병원 응급실은 매주 수, 목요일 외과 진료가 불가능하며 나머지 수련병원 응급실도 진료가 제한되고 있습니다.
전체 전공의 중 94%가 이탈한 제주대병원은 이번 주 중 간호·간병 서비스 통합병동을 2개에서 1개로 통폐합하고, 내과 중환자실 운영 병상수를 20개에서 8개로 축소하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충북대병원은 의사 수 부족으로 야간 응급실 안과 진료가 불가능하고, 응급실과 도내 유일의 신생아 집중치료실에선 이탈한 전공의 자리를 전문의들의 잦은 당직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수원 성빈센트병원은 자체적으로 '긴급 대응팀'을 운영하며 출근한 전문의, 전임의, 전공의, 전담 간호사 등의 근무 시간과 수술 일정을 조정하는 등 조처하고 있습니다.
전남대병원은 전임의가 추가 이탈한 어제부터 수술 건수가 평시의 30% 수준으로 급감했고, 병상 가동률도 40%대로 떨어졌습니다.
전남대병원의 한 의료진은 "교수들이 전공의와 전임의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지만, 밤샘 당직 이후 다음 날에도 진료를 이어가면서 피로가 극에 달했다"며 "전공의 이탈 후 교수들이 주 80~100시간을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제주도에는 전공의 파업에 따른 피해 신고가 3건 접수됐습니다.
이 중 2건은 진료 지연, 1건은 수술 지연으로 인력이 부족한 탓에 진료와 수술 날짜가 연기된 사례로 확인됐습니다.
보건복지부는 4일 오후 8시 기준 주요 100개 수련병원을 점검한 결과, 신규 인턴을 제외한 레지던트 1∼4년 차 9천970명 중 8천983명(90.1%)이 근무지를 이탈했다고 밝혔습니다.
정부는 서면 보고를 받은 50개 병원에 대해서도 추가로 현장을 점검, 업무개시명령 위반이 확인되는 즉시 면허 정지 절차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복지부는 오늘부터 바로 행정처분 사전통지서를 발송합니다.
오늘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이들 전공의 7천여 명에 대한 미복귀 증거를 확보했고, 추후 의료법에 따른 행정처분을 이행하기로 했습니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오늘까지 현장 점검하는 총 100개 병원을 제외한 남은 수련병원은 지방자치단체에서 또 현장 점검을 한다"며 "정부는 최악의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비상진료체계를 구성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유영규 기자 sbsnewmed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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