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교수마저 "그만두겠다" 이탈 조짐…더 심각한 진료대란 닥칠 수도
정부가 의대 증원에 반발해 병원을 떠난 후 돌아오지 않은 전공의 7854명에 대해 면허정지 등 행정처분을 이어 나갈 것임을 5일 밝힌 가운데, 상급종합병원 교수(전문의)들 사이에서도 사직 물결의 조짐이 보인다. 전공의가 대거 떠나고 전임의 상당수가 재계약을 포기한 상황에서 중증·응급질환 진료의 공백을 메워온 이들마저 떠나면 상상하기 힘든 심각한 진료 대란이 닥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아산병원, 강릉아산병원, 울산대 의대 교수들의 연합단체인 울산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지난 3일 성명서를 내고 "전공의들을 겁박하는 정부의 사법처리가 현실화한다면 스승으로서 제자를 지키기 위한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그 '행동'에 대해서는 사직, 겸직 해제(학교 강의만 하고 병원 진료는 포기) 등 여러 방식을 놓고 고민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아산병원은 국내 빅5 병원 중 한 곳이자 뉴스위크가 선정한 '2024 세계 최고 병원' 22위로, 국내 병원 가운데 가장 높은 순위에 올랐다. 이런 점에서 이곳 교수들의 이런 행보가 타 병원 교수들에 던지는 '메시지'의 힘은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같은 날 경희의대 교수회도 성명을 내고 "의대 학생 및 수련병원 전공의들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가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의대 증원에 반발해 사표를 내겠다는 대학병원 교수들의 공개 발언도 이어지고 있다. 그들 중 첫 사직 의사를 밝힌 윤우성 경북대병원 혈관외과 교수는 4일 자신의 SNS에 '교수직을 그만두며'란 제목의 글을 올리며 "외과 교수직을 그만두겠다"고 밝혔다.
윤우성 교수는 "이미 오래전 번아웃 됐고, 매일매일 그만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도와주는 건 없고 힘만 더 빠지게 한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현 의료현실에 책임져야 할 정부, 기성세대 의사들인 우리가 욕먹어야 할 것을 의사 생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전공의가 다 짊어지고 있는 답답한 상황에 떳떳하게 서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윤 교수는 "이런 상태에서 다시 병원으로 돌아오라고, 후대 의대생에게 외과 전공의를 하라고 자신있게 말을 못하겠다"며 "(전공의들에게)보호막이 돼주지 못하고 뒤에 숨어서 '반대한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어떻게든 잘 해결되길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만 하는 모습이 너무 부끄럽다"고 속내를 밝혔다.
같은 날 충북대병원 심장내과 배대환 교수도 SNS를 통해 사직 의사를 밝혔다. '사직의 변'이란 제목의 글에서 그는 "더 이상 필수 의료를 하지 않겠다는 인턴, 전공의 선생님들이 나간다는데 사직하는 것을 막겠다고 면허정지 처분을 하는 보건복지부의 행태나 교육자의 양심이라곤 눈곱만치도 없는 총장들의 생각 없는 의대 정원 숫자 써내는 행태에 분노를 금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를 제공하려면 더 많은 '동료들'과 머리를 맞대고 치료를 행해야 한다"면서도 "최근 여러 뉴스에 나온 증권가 임원, 교사로 활동하는 분들이 의대에 들어온다고 '동료'가 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같이 병원에서 부딪히며 일해온 인턴, 전공의, 전임의 선생님들이 동료"라고 못 박았다. 이는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책 발표 이후 다양한 직업군에서 의대 입학에 도전하려 한다는 최근 뉴스들에 대한 반발로 해석된다.
배 교수는 "그들과 같이 일할 수 없다면 제가 중증 고난도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병원에 더 남아 있을 이유는 없어 사직하고자 한다"며 "동료들과 함께 진료를 이어 나갈 수 없다면 동료들과 함께 다른 길을 찾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전국 40개 대학을 대상으로 진행한 의대 정원 수요조사가 4일 종료된 가운데 강원대 의대 교수 10여 명은 5일 강원대 춘천캠퍼스 의대 앞에서 삭발 투혼으로 정부와 총장에 항의했다. 강원대는 교육부에 140명(현재 49명)으로 의대 정원을 요청한 상태다.
이승준 강원의대·강원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강원의대 전체 교수들이 2시간가량 회의를 열고 토론해 '증원신청을 하지 말자'는 의견이 77%에 달해 반대한다는 의견으로 뜻이 모였다"며 "4일 학장님이 총장님한테 이 의견을 전달했는데도 갑자기 140명으로 증원 신청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들 화가 난 상황"이라고 밝혔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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