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와 하수 차이[김홍유의 산업의 窓]
요즘 나라가 떠들썩하다. 얼마 남지 않은 선거와 관련하여 어수선하고, 의대 정원 증원과 관련하여서도 어수선한 분위기다. 우리는 늘 그래왔듯이 이 또한 지나갈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과거의 교훈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다름 아닌 “하수는 집착하고 고수는 버린다는 것이다.”
이처럼 선택은 고난도의 포기다. 세상에 참혹하지 않은 전쟁은 없다. 어느 전쟁이 더 참혹한가를 따질 뿐이다. 전쟁사를 차분히 살펴보면 강한 적을 만나면 승리하는 사람도 있지만 패배하는 사람이 더 많다. 우리는 승리한 전쟁보다 패배한 전쟁에서 진정한 승리의 원인을 찾는다. 사람이나 사회, 국가 모두 과거의 성공모델에 집착하여 이전 방식을 고집할 때 결국 자신을 망치고 국가 시스템은 붕괴한다. 전쟁터는 본질이 난무하는 공간이다. 여기에는 ‘도덕’, ‘자존심’, ‘이념’보다는 ‘승리’가 먼저이기 때문이다. 승리해야 민족이 있고, 승리해야 국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손자병법에 실패하는 장수의 다섯 가지 유형이 있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장수는 죽이기 쉽고, 살려고 애쓰는 장수는 사로잡기 쉽고, 화를 잘 내는 장수는 수모를 주면 쉽게 죽이고, 청렴한 장수는 치욕을 주면 쉽게 죽일 수 있으며, 백성을 사랑하는 장수는 백성을 괴롭히면 쉽게 죽일 수 있다고 하였다. 모두 집착에서 발생한 문제다. 사고의 유연성이 없다면 불확실성이 가득한 전쟁에서 탁월한 전략을 찾을 수 없다.
남원에 가면 교룡산성(蛟龍山城, 해발 518m 교룡산의 천연적인 지형지세를 이용하여 돌로 쌓은 산성)이 있다.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일본군은 5만6000명의 대군을 이끌고 남원을 공격했다. 이때 성을 지키고 있던 조선군과 명나라의 병력은 4000명이었다. 남원성의 관군과 백성은 모두 교룡산성에서 일대 결전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명나라 장수 양원은 평지인 남원성에서 싸우기를 고집하였고, 결국 교룡산성을 버리고 평지로 내려왔다. 남원성의 양원은 자기가 가장 잘 싸우는 방식으로 싸워서 패했다. 과거의 성공모델이 지금의 성공을 보장하리라 예측했지만 실패했다. 이처럼 전쟁은 내가 가장 잘하는 방법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적보다 더 잘하는 방법으로 싸워야 한다. 이 전쟁의 결과는 참혹했다. 사흘 밤을 항전한 끝에 빗속을 뚫고 일본군이 남문을 부수고 쳐들어와 남원성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조명 연합군 4000명과 남원성 주민 7000명이 모두 살해당했다. 이후에 류성룡은 징비록에 그날의 억울하고 분함을 기록으로 남겼을 정도이다.
하수는 집착한다. 돈에 집착하고 물건에 집착하고 사람에 집착하고 급기야 권력에 집착한다.
결국 문제는 국가 시스템이다. 국민과 기업의 자유를 억압하는 낡은 제도의 집착에서 벗어나야 하고, 과거의 역할과 희생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하고, 국가의 신성장산업의 육성하기 위한 기초시스템을 구축함과 동시에 저출생 위기 해결에 국력을 모으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 차세대 먹거리 산업인 항공 및 우주 정책도 차근차근 진행해 가야 한다. K-방산의 근간과 지속 성장동력으로 다가올 항공 산업 분야로 6세대 전투기, 차세대 수송기, 미래비행체(AAV), 차세대 고기동 헬기 등 추진해야 할 일이 많다. 사회 분열의 원천인 여러 격차를 해소하고 개인이 노동의 대가로 원하는 삶을 사는 환경을 만드는 일도 국가가 아니면 할 수 없다. 국가 시스템이 후진적이면 아무리 나라가 부강해도 그 부강함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국민의 삶도 행복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과거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산업화를 이루었듯이 더 절박한 마음으로 국가 시스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고수는 버린다. 돈도 버리고 물건도 버리고 가진 지식마저 버리고 목숨 같은 이념마저 버린다. 버려야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채움은 선택이고 선택은 기회비용이다. 기회비용이 크면 클수록 선택의 달콤함도 크다. 선택은 고난도의 포기이기 때문이다.
김홍유 경희대 교수(방위산업협회 정책위원, 전 한국취업진로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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