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1인분이에요?" 소비자 봉 만드는 규제 밖 상술 [추적+]

김하나 기자 2024. 3. 5.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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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고물가 국면 길어지면서
슈링크플레이션 확산해
몸살 앓던 각국 규제 시동
하지만 법적 사각지대 존재
규제 대상인 가공식품만큼
식당·길거리음식도 문제 많아
슈링크플레이션 해결책 없나

# 어느날 극장에서 팝콘을 먹었는데, 양이 예전 같지 않다. 알갱이도 작은 걸 보니 질도 의심스럽다. 같은 돈을 내고 '질 떨어진 팝콘'을 먹은 게 분명한데, 되돌아오는 업체의 말은 "기존과 똑같습니다"뿐이다.

# 어디 이뿐이랴. 동네 고깃집 1인분도, 동네 식당 공깃밥도 달라졌지만 딱히 할 말이 없다.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니다. 미국ㆍ싱가포르 등 해외 각국도 법망 밖 음식의 슈링크플레이션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1인분 중량을 슬쩍 줄인 고깃집이 부쩍 늘어났다.[사진=뉴시스]

팬데믹 기간에 영화관을 찾지 않았던 김하늘(가명ㆍ26)씨. 최근 선호하는 작품들이 잇따라 개봉하면서 3주 연속 A영화관을 찾았다. 그때마다 팝콘을 구매한 하늘씨는 '팝콘 낱알 크기가 예전보다 작아졌다'고 느꼈다. "모처럼 영화를 보면서 먹으려고 팝콘을 샀는데, 팝콘의 낱알이 부스러기 수준으로 작았다. 납품받는 옥수수 알갱이가 작아졌을지도 모른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하늘씨만이 아니다. 수험생 최도경(가명 ㆍ26)씨는 "언제부턴가 캐러멜 팝콘에 캐러멜이 골고루 배어 있지 않더라"면서 "영화 관람 시 팝콘을 사야 할지 고민스럽다"고 말했다.

사실 A영화관의 팝콘 가격은 10년 전과 비교해도 많이 오르지 않았다. 기본 맛인 '고소팝콘'의 2014년 미디엄 사이즈 가격은 4500원, 라지 사이즈 가격은 5000원이었다. 현재 미디엄 사이즈는 5000원, 라지 사이즈는 55 00원이다. '달콤팝콘'이라 불리는 캐러멜 팝콘은 10년 새 1500원 인상됐지만, 나머지 팝콘들은 500~1000원 오르는 데 그쳤다.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곡물값 상승을 감안하면 인상폭이 크지 않은 셈이다.

문제는 팝콘의 양과 질이 모두 떨어졌다고 느끼는 소비자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A영화관은 홈페이지에 팝콘별 1회 제공량과 제공 단위를 안내하고 있다. 그러나 팝콘은 결제 후에 직원이 원형 용기에 퍼서 담아주는 구조여서 소비자로선 정확한 중량을 알기 어렵다.

A영화관 측은 "팝콘의 양과 질이 달라진 건 없다"고 반박했다. "납품받는 팝콘 옥수수를 교체하지 않았다. 용량ㆍ수급 과정에도 변화가 없다. 직원이 팝콘을 퍼주는 과정에서 약간의 편차는 있을 수 있다."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은 지난해 11월, 정부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슈링크플레이션은 기업이 제품값은 유지하는 대신 제품의 크기나 중량을 줄이거나 품질을 낮춰 가격 인상의 효과를 거두려는 전략을 뜻한다.

이를 규제하기 위해 정부가 최근 만든 게 '사업자의 부당한 소비자거래행위 지정 고시 개정안(소비자기본법 제12조 2항에 근거)'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4월 초에 고시 개정안을 발령하고, 6~7월께 시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개정안이 예정대로 시행되면 기업은 용량 등 중요사항을 변경할 때 한국소비자원에 통지해야 한다. 포장지, 자사 홈페이지, 판매장소에도 변경사항을 게시하는 등 조치를 취해야 한다. 처벌 조항도 있다. 1차 위반 시 500만원, 2차 위반 시 1000만원 과태료를 부과한다. 슈링크플레이션이 사실상 가격을 끌어올리는 꼼수란 점에서 이 개정안은 분명 의미 있는 진전이다.

문제는 고시 개정안의 대상이 즉석밥ㆍ컵라면ㆍ음료수를 비롯한 가공식품만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고시 개정안이 시행되더라도 A영화관 팝콘 같은 '알쏭달쏭' 슈링크플레이션은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 규격화한 용기ㆍ포장지를 사용하지 않는 시중 음식점에서 '슈링크플레이션' 논란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짚어볼 만한 이슈다. 사례를 살펴보자.

서울 마포구에 있는 유명 아귀찜 전문점은 메뉴 사이즈를 대ㆍ중ㆍ소로만 표기하고, 정확한 중량을 표기하지 않았다. 작은 글씨로 몇인분인지 적어놓았을 뿐이다. 소비자로선 음식량이 줄었다고 느끼거나, 실제로 양이 줄었더라도 마땅히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고깃집도 마찬가지다. 가격을 올리지 않는 대신 1인분의 중량을 줄이는 가게가 수두룩하다. 1인분 중량이 180g, 150g인 곳도 넘쳐난다. '고기 1인분=200g'이 시장의 통념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중량이 10~25% 줄어든 셈이다.

[※참고: 과거 식품판매 정량기준 고시에 따라 고기 1인분의 중량은 200g으로 정해져 있었다. 1993년 정부가 고시를 폐지하면서 고기 1인분당 중량의 규정은 사라졌다.] 식당에서 판매하는 공깃밥도 다르지 않다. 공깃밥 양을 줄이는 식당들이 늘면서 "공깃밥이 아니라 공기밥이다"란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한국만의 문제인 것도 아니다. 2022년 7월 20일 뉴욕포스트는 미국 식당 리뷰 사이트 옐프(Yelp)의 자료를 인용해 "식당에서 발생하는 슈링크플레이션에 불만을 토로하는 소비자가 증가하고 있다"면서 "특히 핫도그ㆍ햄버거ㆍ피자 등 인기 있고 전통적으로 저렴한 품목을 판매하는 레스토랑에서 불만이 가장 많이 발생한다"고 보도했다.

그 내용을 원문과 함께 보자. "옐프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6월 뉴욕시의 많은 레스토랑이 추가 메뉴 가격 인상을 피하기 위해 비싼 재료의 사용을 줄이고, 음식 크기를 줄였다(The Post reported last month that many New York City restaurants were ditching pricier ingredients and shrin king portion sizes to avoid additional menu price hikes)." 지난 2월엔 싱가포르 현지 매체인 인디펜던트 싱가포르가 오리 요리의 양이 해당 가격에 적절한지 지적하는 소비자의 사례를 보도하기도 했다.

문제는 세계 어디에서도 이를 규제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외식업체 등의 음식은 용량 표기 의무가 없고, 규제할 근거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영화관 팝콘의 양과 질이 이전 같지 않다고 말하는 소비자가 적지 않다.[사진=뉴시스]

그렇다면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 하나로 소비자는 '양도 질도 떨어진 음식'을 비싼값에 사야 하는 걸까. 식당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슈링크플레이션을 해소할 방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자정 노력과 공론화 작업을 의제議題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은희 인하대(소비자학) 교수는 "상인들이 1인분의 중량 기준을 세우는 등 자정 노력을 펼치면 좋겠지만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면서 "결국 소비자도 관심을 갖고 '꼼수'들을 공론화해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호겸 서울벤처대학원대(구독경제전략연구센터) 교수는 이런 대안을 제시했다. "정부 차원에서 이런 꼼수를 막을 규제나 가이드라인이 생기면 소비자들에겐 좋겠지만, 자영업계 반발을 고려하면 비현실적인 얘기다. 업계가 자율적으로 정량 표시 기준을 강화할 수 있게끔 유도해야 하는데, 상인들의 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로 쉽지 않다. 다만 정량 표시 기준 강화를 마케팅의 수단으로 삼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지역 상인협회에서 '우리 골목에선 중량이 바뀔 때 고객에게 알리겠다'는 식의 자율협약을 맺고 정직함을 어필하는 거다. 인플레이션으로 우리 서민들의 지갑이 점점 얇아지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마케팅은 단골을 모집하기에 효과적인 전략일 수 있다."

김하나 더스쿠프 기자
nayaa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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