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게 먹은 바이오 기업으로 체할 위기 놓인 CJ·오리온·OCI
오리온, 레고켐 인수에 주가 폭락…OCI는 한미약품 인수 불투명
(시사저널=이승용 시사저널e. 기자)
CJ와 오리온, OCI그룹은 자금을 조달하기 힘들어진 천랩,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이하 레고켐바이오), 한미약품그룹이 매물로 나오자 재빨리 인수합병(M&A) 등으로 집어삼켰다. 하지만 실적 악화와 주주들의 거센 반발 등이 지속되면서 인수합병에 따른 '체기'가 가라앉지 않는 모양새다.
'돈 먹는 하마' 된 바이오 기업들
CJ제일제당이 2021년 10월 인수한 마이크로바이옴 전문기업 CJ바이오사이언스(옛 천랩)는 CJ제일제당의 '아픈 손가락'이 됐다. 2021년 101억원이었던 영업손실은 2022년 332억원으로 3배로 늘어났고, 지난해 적자도 321억원에 달했다. 2021년 당시 CJ제일제당은 천랩을 약 983억원에 인수했다. 250억원은 천종식 대표가 보유한 지분 10% 등 16%가량의 구주를 매입하는 데 사용했고 732억원은 제3자 배정 방식 유상증자를 통해 천랩에 납입했다. 이를 통해 CJ제일제당은 천랩 지분 44%를 확보했다.
CJ제일제당은 천랩을 기반으로 2022년 초 CJ바이오사이언스를 출범했다. 하지만 자금 투입은 이후에도 지속됐다. 인수 1년 반 만인 지난해 5월22일 CJ바이오사이언스는 649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으로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당시 유상증자 소식에 CJ바이오사이언스 주가는 폭락했다. 주가 폭락으로 유상증자 규모는 456억원으로 축소됐다. CJ제일제당은 책임경영 차원에서 배정받은 신주 물량의 120%를 책임지겠다고 밝혔다. 다행히 실권주는 없었지만 CJ제일제당은 220억원을 부담했다.
CJ바이오사이언스는 유상증자 대금으로도 모자랐는지 지난해 12월 CJ제일제당에 서울 강남구에 있는 건물과 토지를 매각했다. 매각대금은 331억원(부가세 별도)이었다. CJ바이오사이언스는 매각 목적을 "투자자산 매각을 통한 선제적 자금 확보로 R&D 집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는 사이 CJ제일제당이 CJ바이오사이언스 인수, 유상증자, 건물 매입 등에 투입한 자금은 1534억원까지 늘어났다. 하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자금이 투입될지는 미지수다.
CJ제일제당은 지난해 7월 중국 자회사 지상쥐 지분 60% 전량을 약 3000억원에 매각했다. 이어 10월에는 브라질 자회사 CJ셀렉타 보유지분 66% 전량을 미국 곡물기업에 4805억원을 받고 처분했다. CJ그룹은 최근 임원인사에서 CJ제일제당 대표를 맡고 있던 최은석 대표를 전격 경질했고, 강신호 CJ대한통운 대표를 부회장으로 승진시켜 후임 대표로 임명했다.
'초코파이'로 유명한 오리온그룹도 항체-약물접합체(ADC) 전문기업 레고켐바이오 인수에 나섰다가 혼쭐이 나고 있다. 오리온은 1월15일 5485억원을 들여 레고켐바이오의 지분 25%를 확보한다고 밝혔다. 인수 주체는 중국 지역 7개 법인의 지주사인 팬오리온코퍼레이션이다. 오리온은 CJ제일제당이 천랩을 인수할 때처럼 구주 매입과 제3자 배정을 병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787억원을 들여 레고켐바이오 창업자 김용주 대표와 박세진 사장으로부터 주당 5만6186원에 936만3283주를 인수하고 4698억원을 들여 제3자 배정 방식 유상증자에 참여해 주당 5만9000원에 796만3283주를 받는다. 대금 납입 예정일은 3월29일이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오리온 주가는 폭락했다. 1월16일 하루에만 주가가 11만7100원에서 9만6600원으로 무려 17.51% 급락했다. 8000억원이 넘는 시가총액이 하루 만에 증발한 것이다. 레고켐바이오는 2022년 매출 334억원, 영업손실 50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도 3분기까지 누적 매출 250억원, 영업손실 556억원을 기록했으며 적자 폭이 확대되고 있다. 증권가에서도 오리온의 레고켐바이오 인수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가 나왔다. 오리온은 부랴부랴 배당 확대 등으로 주주 달래기에 나서고 있다. 오리온은 1월25일 이사회를 열고 2023년 결산배당으로 주당 1250원을 결정했다. 총 배당액은 494억원으로 전년 376억원(주당 950원) 대비 31.4% 증가했다. 오리온의 이번 배당은 2017년 이후 최대다.
태양광 사업을 하는 OCI그룹 역시 지난해 말 지주사 간 지분 교환을 통해 한미약품그룹 인수에 나섰다. 하지만 한미약품그룹 가족 분쟁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한미약품그룹 가족 분쟁은 고(故) 임성기 회장의 부인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과 장녀인 임주현 한미약품 사장이 같은 편이고, 장남인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과 차남인 임종훈 한미약품 사장이 한편인 대립 구도다.
OCI그룹 지주사인 OCI홀딩스는 지난해 말 한미약품그룹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지분 27%를 7703억원에 취득하고 임주현 사장 등 한미사이언스 주요 주주에게 OCI홀딩스 지분 10.4%를 배정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과 임종훈 사장은 자신들 모르게 진행한 계약이라며 저지에 나선 상태다. 임 사장은 1월17일 수원지법에 한미사이언스가 OCI홀딩스를 대상으로 발행하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신주 발행이 무효라는 내용의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했다.
두 형제는 2월8일 그룹 경영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주주제안권을 통해 올해 3월 열리는 한미사이언스 정기 주주총회에서 자신들과 측근을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안건 등도 상정 요청했다. 하지만 한미사이언스가 이에 응하지 않자 법원을 상대로 주주제안 안건을 상정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과 함께 한미사이언스 주주명부 열람 및 등사 허용 신청도 낸 상태다. 결국 이들의 경영권 분쟁은 3월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로 판가름날 것이라는 시선이 우세하다. 한미사이언스 지분율은 송 회장과 임주현 사장이 각각 11.66%, 10.20%, 임종윤 사장과 임종훈 사장이 각각 9.91%, 10.56%다.
"삼성처럼 바이오에서 성공하고는 싶은데…"
미래 산업인 바이오는 그동안 신성장동력 확보를 고심하던 대기업들이 호시탐탐 진출을 노렸던 분야였다. 삼성이나 SK, LG 등 재계 최상위권 기업집단은 이미 오래전부터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바이오 사업을 낙점했고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만 하더라도 2023년 연결 기준 매출 3조7000억원, 영업이익 1조1000억원을 내며 삼성그룹의 주력 계열사로 성장했다. SK그룹 역시 SK바이오사이언스, SK바이오팜, SK팜테코를 중심으로 바이오 사업이 자리를 잡았다. LG그룹의 경우 과거 LG화학(LG생명과학) 시절부터 바이오 사업에 공을 들여왔다.
하지만 바이오는 불확실성이 크고 막대한 투자금이 필요한 대표적인 하이리스크-하이리턴 사업이다. 진입장벽도 높다. 한화그룹조차도 바이오시밀러 및 신약 개발에 도전했으나 결국 철수한 경험이 있다. 바이오는 신규 진출보다 인수합병이 다소나마 안전한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롯데그룹은 2022년 롯데바이오로직스를 설립했고 BMS의 미국 시큐러스 바이오의약품 생산공장을 인수하고 CDMO 사업을 통해 바이오 사업에 본격 진출했다. LG그룹도 지난해 LG화학을 통해 미국 항암신약 기업인 아베오 파마슈티커스를 약 7000억원에 인수했다. GS그룹은 PEF 운용사들과 컨소시엄을 꾸려 2022년 휴젤을 인수했다.
CJ나 오리온, OCI그룹 등이 바이오 기업 인수합병에 나섰던 것도 이런 흐름과 일맥상통한다. 금리가 높아진 이후 자금시장이 경색되면서 바이오 기업이 대거 매물로 나온 상황도 인수합병을 더욱 촉진했다. 다만 이들의 경우 인수합병에 따른 후유증이 당초의 예상치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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