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안보전략연 전문가, 북·일정상회담에 “가능성 상당하다”

김예진 2024. 3. 5.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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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자 문제 해결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일본의 정상회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정부 연구기관 소속 전문가의 분석이 나왔다.

최근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김태주·김종원 연구원은 이슈브리프에서 “일·북 정상회담은 기시다가 납치자 문제를 북한이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방식으로 제기할 수 있다면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진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 역시 일·북 대화를 역내 안정화 요인으로 환영하고, 북한과 외교 접촉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은 일·북 정상회담이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라는 것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지난달 북·일은 회담 의지를 내비치는 공개 발언을 주고받았다. 지난 달 9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북·일정상회담 추진 관련 “구체적으로 여러 활동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물밑 고위급교류가 있음을 시인했고, 엿새 후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담화를 내 “(기시다) 수상이 평양을 방문하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한 바 있다.

보고서는 “이 시점에 일·북 양국이 왜 정상회담 개최에 관심을 보이고 상호 접촉에 나섰는지 분석하고 실제로 성사 가능성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며 3대 요인을 제시했다.

◆“북, 대일관계 통해 분단국 아닌 독자국가 행보”

북한으로서는 △남북관계를 동족이 아닌 타국으로 규정한 대남전략 대전환과 연계해 일본과 새롭게 교류를 시작하는 데 필요한 정치적 이벤트로 활용 △최근 강화된 한·일 양국의 협력 정도를 시험하거나 약화하려는 의도 △마지막으로 북·일관계 개선을 통해 자신들이 처한 외교적 고립을 타개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보고서는 “북한은 이번 일·북 접촉과 정상회담을 통해 한·일 양국의 협력 정도를 파악하고 그 빈틈을 이용해 한·미·일의 대북 정책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고 보여진다”고 밝혔다.

또 “북한의 대남전략 전환은 남북 분단 관계라는 프레임을 지우고 독자적 국가로 행보를 시작하는 것을 의미하며, 일본에게는 새로운 대북정책을 구축할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기시다, 지지율 30%까지 끌어올릴 수도”

일본 기시다 내각으로서는 △추락한 자신의 지지율 제고에 활용 △북한 대남전략 대전환을 북한과의 새로운 관계 정립의 계기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올해 선거에서 재선 시 미국의 대북 압박 혹은 미·북 간의 관계 개선이 가져올 수 있는 변동성에 대비해 외교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확대하려는 의도를 들었다.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은 최근 자민당의 비자금 스캔들 이후 10%대까지 추락했다가 현재 20% 전후인 상태다. 이에 대해 일본 언론은 기시다 지지율이 총리직 수행을 위한 마지노선 밑으로 추락했고 역대 최저 지지율로 퇴진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있다. 동시에 뚜렷한 차기 주자가 없고 오는 4월 미국 국빈 방문 일정 등 굵직한 외교사안들로 인해 9월 자민당 선거시기까지 총리직은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이 기간이 기시다 총리로서는 자신의 지지율을 높이고 차기 자민당 총재에 재도전을 노릴 기회라는 것이다.

보고서는 “기시다는 일본인 납치자 문제에 진전된 조치, 방미에서의 뚜렷한 성과를 통해 리더십을 강화한다면 30%대 까지 지지율은 회복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그런 측면에서 이번 일·북 정상회담은 기시다가 납치자 문제를 북한이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방식으로 제기할 수 있다면 개최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미국 간접지원?”

또한 지난달 15일 김여정 담화 발표 다음 날 미국 국무부 대북 정책 총괄 담당자인 정 박 동아시아태평양담당 부차관보 겸 대북 특별부대표가 북·일 대화 움직임 관련 “모든 종류의 외교와 대화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에 대해 보고서는 “일·북 접촉이 상당한 수준까지 진전됐음을 시사했다”고 봤다. 미국 국방부 사브리나 싱 대변인이 “우리는 역내가 안정되기를 바라며 일·북 대화가 역내 안정으로 이어진다면 우리는 당연히 환영할 것”이라고 한 데 대해서도, 보고서는 “일본이 일·북 정상회담을 통해 역내 안정을 위한 모종의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것으로 회담 성사를 간접 지원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북·일간 입장차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일본인 납치자 문제는 분명 높은 허들이다. 보고서도 “이번 일·북 접촉 성사 여부는 여전히 남아있는 딜레마인 일본인 납치자 문제를 배제하고 과연 일본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에 나설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달려있다”며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는 대부분 해안선을 따라 보수 자민당 텃밭인 농어촌 지역에서 발생했고, 일본 사회는 2002년과 2004년 고이즈미 총리가 방북, 생존한 납치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데리고 귀환한 이래로 납치 문제 해결을 숙원사업 중 하나로 간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납치자 문제에 대한 일본 사회의 해결 열망과 북한의 강한 거부감을 모두 고려해볼 때, 보고서는 “일본이 회담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납치자 문제 해결을 위한 교섭을 처음부터 강하게 고집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전망했다. 이어 “대신 일본은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납치자 문제를 제기하고 회담을 추진하는 등 일·북 관계 개선을 위한 기반을 구축, 지지율을 제고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한 트럼프 재선에 대비하는 측면도 있다고 봤다. 2018년 남·북·미 대화 국면이나 과거 남·북·미·중·일·러의 6자회담 국면 등 한반도를 둘러싼 대화와 협상이 숨가쁘게 돌아갈 때마다 일본은 가장 소외된 국가로 평가되곤 했다.

보고서는 “일본은 지난 트럼프 1기 정부에서 미·북, 남·북 대화의 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된 아픈 경험이 있다”며 “트럼프 재집권 시 미·북 관계가 갈등 국면으로 향한다면 대북 압박 정책의 일환으로 납치자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하고 미국과 함께 대북 인권 담론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 “반대로 미·북 화해 무드가 조성된다면 이번 일·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구축된 일·북 관계 개선을 바탕으로 모종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1기 시절 북·미 대화를 주선한 문재인정부 역할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보고서는 “정상회담은 기시다가 납치자 문제를 북한이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방식으로 제기할 수 있다면 개최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며 “한·일 양국 정부는 일·북 대화 추진 과정에서 긴밀한 소통과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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