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행동 손 떼는 글로벌 금융사들 ‘경제 살리기’에 밀린 ‘지구 살리기’[Global Economy]

박세희 기자 2024. 3. 5.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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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P모건·핌코 등 ‘기후행동 100+’ 탈퇴 러시
자산 규모 68조달러 달하는
글로벌 금융사·운용사 모임
온실가스 배출 기업 상대로
기후변화 대응 노력 등 압박
1단계 저감 목표 공개엔 효과
2단계 실행 촉구엔 부담 느껴
‘고객수익 우선 의무’와 배치
‘反ESG’美공화 압박도 작용
게티이미지뱅크

“인류는 지금 기후변화와의 싸움에서 패배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2017년 12월 12일 파리에서 열린 ‘원 플래닛 서밋’(One Planet Summit)에서 이같이 말했다. 파리기후협정 체결 2주년을 기념해 프랑스 정부와 유엔, 세계은행이 공동 주최했던 행사다. 당시 행사에선 기후변화 대응에 관한 협약 사항들이 발표됐다. 핵심은 ‘기후행동 100+’(Climate Action 100+·이하 ‘CA 100+’), 기업의 탄소중립 달성을 촉진하는 글로벌 금융사·자산운용사들의 모임이다. 금융사들이 온실가스 배출기업들을 상대로 탄소배출 감축과 기후변화 대응 노력을 압박하는 것이 골자였다. 자본을 무기 삼아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이끌어 낸다는 것이다. 현재 700개 이상의 투자자가 참여하고 있으며 참여 기관의 총자산 규모는 68조 달러(약 9경344조 원)를 넘는다. 이 ‘CA 100+’가 출범 약 6년 만에 대형 금융사들이 잇따라 탈퇴를 선언하면서 크게 흔들리고 있다.

◇JP모건, SSGA, 핌코…연이은 탈퇴 선언 = 최근 JP모건과 스테이트스트리트 글로벌(SSGA), 핌코(PIMCO)가 CA 100+ 탈퇴를 선언했다. 블랙록(Black Rock)은 본사가 아닌 자회사 블랙록 인터내셔널로 회원 자격을 이전하겠다고 밝혔다. 핌코는 탈퇴를 선언하며 “우린 우리의 CA 100+ 참여가 더 이상 지속 가능성에 대한 핌코의 접근 방식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뉴욕타임스(NYT) 등은 글로벌 금융사들의 잇따른 CA 100+ 탈퇴 러시를 오는 6월부터 시행될 예정인 CA 100+의 ‘2단계 전략’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6년간 CA 100+는 ‘1단계 전략’으로 전 세계에서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166개 기업이 ‘넷 제로’(Net Zero·탄소 순 배출량 제로) 목표 달성과 기후 위기 대응 관련 거버넌스를 도입하고 진행 상황을 공개하도록 촉구해왔다. 이는 실제로 효과를 내기도 했는데 CA 100+가 2022년 낸 보고서에 따르면 166개 기업 중 75%가 넷 제로 정책을 시행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그룹이 출범했을 때 5% 미만이었던 것보다 크게 늘어난 수치다.

문제는 6월부터 시행될 ‘2단계 전략’이 금융사들에 이보다 더욱 적극적인 행동을 압박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산 관리 회사들에 엑손모빌, 월마트 등 회사들이 화석연료를 더 적게 사용할 수 있는 정책을 채택하도록 압력을 가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SSGA가 탈퇴한 계기도 2단계 전략 때문이다. SSGA는 CA 100+ 탈퇴를 발표하며 “2단계 전략에서 기업들에 요구하는 사항이 지나치다. 자사의 독립적인 접근 방식과 맞지 않다”고 밝혔다.

CA 100+가 요구하는 적극적 행동이 금융사들의 ‘수탁 의무’와 배치된다는 점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수탁 의무는 자산 운용을 위임받은 자가 자산을 맡긴 이의 이익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의무를 뜻한다. 블랙록은 탈퇴 결정 배경으로, 기업의 탈탄소화를 위한 CA 100+의 목표와 대다수 고객의 경제적 수익을 우선시하는 수탁 의무 사이의 충돌을 꼽았다. 이와 함께 동시에 달성하기 어려운 기후 위기 대응과 경제 발전의 속성이 ‘케이키즘’(cakeism)을 드러냈다는 분석도 나온다. 케이크를 갖고 있는 동시에 먹을 수 없듯이 성취 불가능한 두 가지를 가리키는 ‘케이키즘’처럼 애초에 기후 위기 대응과 경제 발전은 동시에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ESG 반대해 온 美 공화당의 승리…CA 100+ 전망 ‘흐림’ = 금융사들의 CA 100+ 탈퇴 러시는 미국 공화당의 승리이기도 하다고 NYT는 분석했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에 강하게 반대하는 공화당 내 일부 강경 의원들을 중심으로 ESG 투자와 이에 동참하는 금융사들에 대한 압박이 거세게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CA 100+는 반(反)ESG 캠페인의 대표적인 표적이 됐다. 지난해부터는 CA 100+에 참여하는 금융사들을 상대로 반독점법 위반 여부 조사도 시작됐다. 반독점법 위반 여부 조사를 진행하는 미 하원 법제사법위원회의 위원장은 공화당 내 강경파이자 친(親)트럼프 인사로 꼽히는 짐 조던 하원의원이다. CA 100+를 “기후에 집착하는 기업 카르텔”이라고 비난한 바 있는 조던 의원은 JP모건과 SSGA 등의 탈퇴 발표가 나온 뒤인 지난달 15일 X에 올린 글을 통해 “그들의 CA 100+ 탈퇴 소식은 자유와 미국 경제를 위한 더 큰 승리를 의미한다”며 “더 많은 금융기관들이 이를 따라 담합적인 ESG 조치를 포기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환경과 기후에 관한 문제가 정치화되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블룸버그는 최근 대형 금융사들의 탈퇴로 흔들리는 CA 100+ 상황이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지구온난화가 정치화될 때에는 전문 투자자들도 그들의 일을 적절하게 해내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CA 100+는 최근 금융사들의 탈퇴 결정에도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지난달 26일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한 입장문에서 “CA 100+를 뒷받침하는 기본 원칙은 기후 위험이 곧 재정적 위험이라는 것”이라며 “기후 위기가 장기적인 주주 가치와 경제 전반에 재정적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한 걸음도 물러설 여유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앞으로도 CA 100+의 전망은 밝지 않다. 11월에 치러질 미국 대통령 선거를 비롯해 총 76개국에서 선거가 치러지는 올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등 우파 정치인들이 녹색 정책 철회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유럽에서는 기후행동에 반대하는 우파 정당들이 6월 유럽의회 선거 이후 대표성을 높일 가능성이 크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에 주요 선거들을 거치며 기후변화와의 싸움에 나설 전력도, 명분도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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