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의 식(食) 전쟁 2라운드!
기존 식품관, 맛집 매장으로 리뉴얼…집객에 영향 미치기 시작
식품관 상향평준화…일회성 팝업스토어로 신선함까지 더해
백화점 음식점은 영양가 있는 곳이 아니었다. 백화점 방문 고객들의 주된 목적인 ‘쇼핑’을 하다가 쉬는 곳, 허기를 달래는 곳에 불과한 탓에 집객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백화점에 들어선 음식점이라고는 한식당, 중식당, 파스타 가게가 전부였다. 2010년대 초반까지는.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2012년 갤러리아로 비롯됐다. 압구정 명품관에 선보인 프리미엄 식품관이 들어서자 고객들은 밥 먹으러 백화점을 가기 시작했다. 심지어 ‘고메이494’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파격적이었다. 지금은 일반적이지만 당시에는 식품 매장 구역을 별도 명칭으로 부른다는 생각조차 못 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현대백화점이 판교점에 국내 최대 규모의 식품관을 만들면서 백화점의 식품관은 이전과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됐다. 이제 식음료 매장은 백화점의 가장 중요한 사업부 중 하나다. 맛집 유치 여부는 점포의 흥행을 판가름하는 잣대다.
2012년 갤러리아부터 2015년 현대 판교점까지
2012년 10월 서울 압구정동 명품관 지하 1층에 식품관 ‘고메이494(GOURMET494)’가 들어섰다. 백화점 식의 전쟁의 시작이었다.
‘고메이494’는 마켓과 식음 공간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그로서란트(식료품점 ‘그로서리’와 음식점을 뜻하는 ‘레스토랑’의 합성어)’ 콘셉트를 국내 처음 선보였으며 스타 셰프들 요리를 한 장소에서 맛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갤러리아는 당시 고메이494에 대해 “기존 식품관을 단순히 재배치한 것이 아니라 ‘부티크(개성 있는 전문집단)’ 개념을 접목시킨 ‘푸드 부티크’라고 설명했다.
그간 백화점 식음료 매장은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브랜드만으로 구성됐지만 갤러리아는 업계 최초로 젊은층에서 인기가 있거나 평가가 좋은 중소자영업자 브랜드 19개 업체를 입점시켰다. 면적도 크게 넓혔다.
갤러리아의 고메이494가 흥행하자 롯데·현대·신세계백화점도 맛집 전투에 나섰다. 현대백화점은 2015년 판교점에 축구장 두 배 크기인 국내 최대 규모의 식품관(1만3860㎡, 4192평)을 열었다.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 여주인공 캐리 브래드쇼가 즐겨 먹던 뉴욕의 컵케이크 전문점 매그놀리아의 국내 1호점을 운영하면서 식품관의 ‘오픈런’까지 만들어냈다.
현대백화점은 대구 유명 빵집 ‘삼송빵집’, 65년 전통의 국밥집 ‘부민옥’, 인천 차이나타운 맛집 ‘신승반점’ 등 지역 유명 맛집도 적극적으로 유치했다. 지금도 130여 개의 국내외 맛집과 식음료(F&B) 매장이 입점해 있다. 그 결과 지난해 판교점 방문객은 2600만 명에 달한다. 같은 기간 현대백화점 15개 전 점포의 평균 방문객(1000만 명)을 2.5배 웃도는 수준이다.
더 심화된 경쟁…백화점 최대 화두는 ‘맛집’
갤러리아와 현대백화점이 ‘백화점 맛집’으로 자리 잡자 신세계도 반격에 나섰다. 신세계는 지난 2월 15일 강남점 지하 1층에 국내외 디저트를 총망라한 국내 최대 규모의 디저트 전문관 ‘스위트 파크’를 선보였다. 신세계가 강남점 식품관을 리뉴얼한 것은 2009년 이후 15년 만이다.
스위트 파크는 해외에서만 맛볼 수 있던 유명 디저트부터 전통 한과와 노포 빵집 등 ‘K-디저트’까지 한데 모은 곳으로 5300㎡(약 1600평) 공간에 43개 브랜드가 있다. 글로벌 제과·제빵 명인들의 프리미엄 브랜드의 ‘한국 1호점’이 강남점에 들어갔다.
벨기에의 명품 초콜릿 ‘피에르 마르콜리니’가 대표적이다. 2015년 벨기에 왕실 쇼콜라티에로 지정된 피에르 마르콜리니는 전 세계를 돌며 가공되지 않은 카카오 콩을 공수하고 섬세한 수작업을 통해 초콜릿과 마카롱 등을 완성하는 브랜드로 명성이 높다. 이외에도 △프랑스 파리의 줄 서는 빵집 ‘밀레앙’ △일본 베이크 사가 신세계와 손잡고 만든 플래그십 매장 ‘베이크 더 샵’ 등도 입점했다.
스위트 파크는 오픈 직후부터 반응이 뜨겁다. 커뮤니티, 유튜브 등에서는 스위트 파크 인증글까지 올라오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7월 압구정본점 지하 1층 식품관을 전면 리뉴얼해 신개념 프리미엄 다이닝홀 ‘가스트로 테이블’을 선보였다. 최정상급 미식 콘텐츠, 고급 레스토랑급 서비스, 차별화된 공간 디자인을 통해 국내 식문화를 선도하는 ‘미식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한다는 계획이다.
인상에 강하게 남는 노란색 브랜드 컬러와 네이밍을 통해 모든 브랜드와 콘텐츠를 ‘가스트로 테이블’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프리미엄화했다. 다른 백화점에서는 만나볼 수 없는 유명 셰프 맛집과 디저트 브랜드로 식품MD 라인업을 재구성한 결과 오픈 첫 6개월 매출과 고객 수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3.8%, 30.2% 증가했다.
특히 압구정본점에 첫 매장을 오픈한 대표 레스토랑으로 △인기 한우 오마카세 ‘이속우화’의 철판요리 전문점 ‘우화함’ △2023 미슐랭 가이드 선정 ‘산다이’ 문승주 셰프의 일식 브랜드 ‘마키 산다이’ △정호영 셰프의 샤부샤부·스키야키 전문점 ‘샤브카덴’ 등 8개가 있다.
롯데백화점 역시 본점과 잠실점을 중심으로 대형 디저트 콘텐츠를 선보였다. 지난해 3월 말 잠실 롯데월드몰 5층과 6층, 2개 층에 걸쳐 약 340평 규모로 오픈한 ‘노티드 월드’는 오픈 후 월평균 12만 명의 고객들이 방문하며 핫플레이스가 됐다. 지난해 8월 초 월드몰 1층에 오픈한 ‘런던 베이글 뮤지엄’ 역시 매일 오픈런이 이어지고 있다. ‘노티드 월드’와 ‘런던 베이글 뮤지엄’이 오픈한 이후 같은 층(각 5~6층 및 1층)의 전체 매출이 전년 동기간 대비 30% 이상 증가하기도 했다.
롯데백화점은 수도권에서도 식품관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인천점에 약 3500평 규모의 프리미엄 식품관 ‘푸드에비뉴’를 오픈힌 것이 대표적이다. 푸드에비뉴의 핵심 공간은 프리미엄 식료품점인 ‘레피세리’로 ‘프리미엄 오더 메이드’ 제품뿐만 아니라 요리의 부담을 덜어줄 ‘프리미엄 간편 서비스’도 선보이고 있다. 와인 전문관인 ‘엘비노’에서는 전 세계 2000여 종의 와인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갤러리아도 고메이494 식품관을 2022년 다시 리뉴얼하고 ‘델리서리’라는 새로운 공간을 선보였다. ‘델리서리’란 유명 식당(Deli)과 그로서리(Grocery)가 고메이494만의 방식으로 결합한 공간이다.
식품관의 상향 평준화…최신 트렌드는 ‘팝업’
갤러리아의 고메이494 오픈 이후 12년이 지난 현재 백화점 업계 식품관의 ‘상향 평준화’가 이뤄졌고 복합쇼핑몰 푸드코트와도 차별화가 어려워졌다. 유명 브랜드의 경우 이미지와 희소성을 이유로 백화점 입점을 꺼리는 탓에 새로운 매장 발굴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백화점의 맛집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오히려 브랜드들이 백화점 입점을 꺼리게 됐다”며 “강남 쪽 일부 점포들은 그나마 유치가 수월하지만 다른 위치의 점포들은 점점 더 유치에 애를 먹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런 과정에서 등장한 문화가 식품관 ‘팝업 스토어’다. 짧게는 3~4일에서 길게는 몇 달에 걸친 단기 전략으로 식품계의 ‘한정판’을 선보이는 전략이다.
이 전략을 가장 잘 활용하는 곳은 현대백화점이다. 여의도 더현대 서울은 빠르게 변화하는 식품 트렌드에 맞춰 다양한 인기·신규 F&B 브랜드들을 팝업 형태로 선보이고 있다. 더현대 서울은 지난해 8월 오픈한 테디뵈르 하우스를 비롯해 용산 프레첼 맛집 ‘브래디포스트’(7월), 한남동 명품 약과 ‘골든 피스’(10월) 등 핫한 디저트 브랜드를 백화점 최초로 유치해 왔다.
특히 미슐랭 출신 파티시에의 크루아상 전문점으로 유명한 베이커리 카페 ‘테디뵈르 하우스’의 백화점 1호 매장은 이국적인 인테리어와 정통 프렌치 스타일 메뉴로, MZ세대 사이에서 인기 디저트 맛집으로 꼽힌다.
신세계백화점 역시 강남점 스위트 파크에 별도의 팝업스토어 존을 마련했다. 꾸준히 새롭고 다양한 디저트를 소개하기 위한 결정이다. 스위트 파크 오픈과 동시에 부산을 대표하는 오픈런 빵집 ‘초량온당’과 전북 부안의 찐빵 전문점 ‘슬지제빵소’ 등이 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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