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정신, 이제 나눔과 상생으로 확장해야”
창간 104주년 공동기획
’12대88의 사회를 넘자’
[1] 전태일 재단의 제안

서울 평화시장 재단사였던 전태일 열사는 22세이던 1970년 11월 13일 자기 몸에 불을 붙인 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고 숨졌다. 이후 전태일이란 이름은 한국 사회에서 20세기를 거쳐 21세기 현재까지도 노동운동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청년 전태일의 정신은 대한민국이 초고속·압축 성장을 하면서 소외됐던 노동자들의 권리를 어떻게 지킬지 고민하는 계기가 됐고 여러 사회 안전망을 만드는 성과를 냈다.
전태일재단은 조선일보와 공동 기획을 시작하며, 전태일 정신이 시대 변화에 맞게 확장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청년 전태일을 ‘분신’이나 ‘투사’란 단어와 함께 호명하던 시기는 민주화 이전이었고, 노동조합을 한다는 것만으로 탄압받던 시대였다. 하지만 지금 민주주의는 공기처럼 일상화됐고, 노동조합을 만들어 활동할 권리도 보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태일은 당시 사회에서 가장 형편이 어려운 노동자는 아니었다. 조금만 노력하면 자기 가게를 꾸리는 사장이 될 수 있는 재단사였다. 그러나 전태일은 ‘위’가 아닌 ‘아래’를 봤다. 13~14세 나이에 배곯으며 일하는 시다(견습공)들과 장시간 노동 끝에 피를 토하는 미싱사를 살폈다. 그들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몸부림치다 산화(散華)한 것이다.
전태일재단이 제시하는 오늘의 전태일 정신은 ‘낮은 곳을 향한 실천’ 그리고 ‘나눔과 연대’다. 재단은 구체적으로 생전의 전태일이 보여준 ‘풀빵 나눔 정신’과 ‘모범 업체 정신’을 예로 들었다. 전태일은 자기 버스 요금으로 쓰려던 30원(당시 편도 10원)을 몽땅 털어 배고픈 시다들에게 풀빵을 사서 나눠줬다. 그리고 평화시장에서 쌍문동 판잣집까지 걸어서 퇴근하다 야간 통행금지에 걸려 파출소에 쪼그려 앉아 잠을 청했다.
몸을 불사르기 1년 전에는 ‘태일피복’이라는 업체를 구상했다. 근로기준법을 지키고 근로자들에게 정당한 급여를 주면서도 경영을 하는 게 목표였다. 결국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전태일이 꿈꾼 노사 상생 기업은 오늘날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추구하는 지금의 전 세계적 흐름이기도 하다.
지금의 한국 노동시장 이중 구조에서 대기업 정규직 12%를 제외한 나머지 88% 중 상당수는 열악한 환경과 저임금 속에서도 꿋꿋하게 일자리를 지키며 삶을 가꾸는 노동자들이다. 이들이 대한민국 내수와 국내총생산(GDP)에 기여하고, 각종 일자리를 지키며 대한민국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 이들이 있기에 대기업 역시 해외시장에서 맘껏 경쟁하고 우리 문화도 세계에 확산하고 있다. 전태일재단은 “한국 대기업이 전태일 정신을 언급하며 노사 상생을 선도하고, 수출과 세계 경쟁력에 보탬이 되는 시대를 열어가길 바란다”고 밝혔다.
〈특별취재팀〉
▷팀장=정한국 산업부 차장대우
조유미·김윤주 사회정책부 기자
김민기 스포츠부 기자
한예나 경제부 기자, 양승수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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