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대 88, 쪼개진 노동시장을 바꿔야 한다
창간 104주년 공동기획
’12대88의 사회를 넘자’ [1]
지난 2022년 여름,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옥포조선소에서는 배를 만드는 핵심 작업장인 독(dock) 한 곳이 51일간 점거되는 사건이 있었다. 민노총 소속 조선 하청 업체(협력사) 노조 파업으로 인한 일이었다. 한 노조원은 아예 가로·세로·높이 1m 크기의 좁은 철제 구조물 안에 들어간 뒤 용접해 출구를 막아버린 이른바 ‘옥쇄 파업’을 했다. 대우조선 측은 경제적 피해가 수천억 원이라고 주장했고, 경찰청장이 헬기로 조선소 주변을 둘러보는 등 공권력 투입 직전에 협상이 타결됐다.
이 사건 이후 정부 조사로 밝혀진 사실은 국민들을 한 번 더 놀라게 했다. 조선업 하청 직원들은 연봉이 대기업 원청 근로자의 50~70% 수준이고, 원청이 기피하는 더 위험한 업무를 도맡는 일이 많았다. 전체 임금 근로자 중 12%인 대기업 정규직(260만명)과 중소기업 및 비정규직 근로자 등 나머지(1936만명) 88%로 쪼개진 한국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민낯 중 하나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 후 국내 조선소에서는 원·하청 격차를 줄이려는 실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대기업 조선사와 협력 업체, 정부·지자체 등이 2023년 2월 함께 마련한 상생 협약이 하나둘 가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HD현대중공업은 이번 달부터 협력사 직원들 월급을 별도의 전용 계좌로 입금하는 방식을 도입한다. 이 계좌는 월급 지급같이 사전에 정해진 용도로만 출금할 수 있다. 임금 체불 등을 예방하는 게 목적이다. 협력사들 몫의 성과급도 늘렸다. 호텔 등 휴양 시설을 협력 업체 직원들도 이용할 수 있게 복지도 확대했다. 지난 2월엔 협력사 직원의 기술 수준을 높이기 위한 교육 시설도 문을 열었다. 협력사의 실질 임금을 늘리고, 복지를 확충하고, 생산성을 키우는 ‘3개의 화살’인 셈이다.
현장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조선업의 고질적 문제를 파악하고 고치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반응이 많다. 특히 자동차, 석유화학, 항공 우주 산업, 식품 등 다른 산업에서도 원·하청의 격차를 줄이려는 시도가 이어지면서 조선업계의 첫 실험이 어떤 성과를 낼지 각계가 주목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노동 시장에서는 높은 임금을 받으면서 다양한 복지 등으로 겹겹이 보호받는 대기업 정규직 12%와 낮은 임금에 사회적 안전망도 부족한 나머지 중소기업, 비정규직 88% 간 이중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88%가 낮은 임금과 고용 불안, 불투명한 미래로 고민하는 상황은 고스란히 저출산, 노인 빈곤, 청년들의 취업 포기 등 여러 사회 문제로 이어지는 중이다.
모두가 대기업에서 일할 수 없고 비정규직을 ‘제로(0)’로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다. 다만 지금의 이중구조를 조금씩 개선해 나간다면 현재 어려움을 겪거나 미래를 설계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을 수 있다. 변화를 만드는 것은 강력한 투쟁도, 시장 논리도, 자본가나 정부만의 몫도 아니다. 거제 조선소에서 시작된 변화처럼 주요 이해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 낸 다양한 상생 시도가 사회를 바꿔나가는 계기가 된다. 본지 역시 지난 2011년 ‘자본주의 4.0′ 기획 연재를 통해 시장에 모든 걸 맡기는 신자유주의가 만든 한계를 극복하는 시도를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전태일재단과 함께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넘어서기 위한 상생 방안을 모색한다.
〈특별취재팀〉
▷팀장=정한국 산업부 차장대우
조유미·김윤주 사회정책부 기자
김민기 스포츠부 기자
한예나 경제부 기자, 양승수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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