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21] 샤갈의 마을
한때 마르크 샤갈(Marc Chagall·1887~1985)의 ‘눈 내리는 마을’이라는 제목의 그림이 진짜 있는 줄 알았다. 2000년대 초까지 서울을 비롯한 전국 방방곡곡에서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이라는 카페가 성업했기 때문이다. 실내에는 여지없이 흰 염소와 초록색 얼굴의 남자가 마주 보는 샤갈의 그림이 벽 하나를 온통 차지하고 있었다. 염소의 머릿속에는 염소 젖을 짜는 여인이 있고, 농부의 뒤를 따라가면 자그마한 집들 앞에 선 여인이 중력을 잃은 듯 거꾸로 떠 있다. 빨간색과 그 위에 밀가루를 뿌린 듯 핑크색이 어우러진 공간이 몽환적이기는 하지만 아무리 들여다봐도 눈이 내리지는 않는다. 이 그림은 ‘나와 마을’이다.
샤갈은 지금의 벨라루스, 당시 제정 러시아의 작은 유태인 마을에서 태어났다. 화가가 되고 싶었으나, 예술을 접할 환경도 아니었을 뿐 아니라, 당시 러시아에서 유태인이 입학할 수 있는 미술학교는 없었다. 다채로운 색깔이 폭발하듯 터져 나와 중력도 없고 원근법도 없는 자유로운 공간을 장악한 샤갈의 화풍은 고향을 떠나 파리로 이주한 다음에 완성됐다. 당시 파리는 피카소의 입체주의가 지배하고 있었지만, 그 위에 무엇을 더해도 허용되는 곳이었다. 샤갈은 자유롭게 분할된 화면 속에 두고 온 고향 마을을 담았다.
샤갈의 ‘나와 마을’에서 눈을 떠올린 건 시인 김춘수다. 그는 ‘샤갈의 마을에는 3월에 눈이 온다’고 했다. 솜털 같은 흰 이파리가 올망졸망 매달린 나뭇가지를 한 손에 든 초록 얼굴의 남자는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라고 불렀다. 3월은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다. 잠시 매서운 꽃샘추위가 찾아와 혹 눈발이 날리더라도 이미 움튼 봄기운을 물리치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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