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존엄한 죽음을 위하여

경기일보 2024. 3. 5.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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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 인천고령사회대응센터 시니어연구팀 부연구위원

지난달 말 백수(白壽)를 일기로 할머니께서 소천하셨다. 고관절 골절로 걸으실 수 없게 된 이후 평소 가시고자 하던 요양원에서 1년 남짓 지내시다가 올 초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으셨다. 급격한 황달과 염증을 치료하고 다시 요양원으로 가셨지만 몇 주 지나지 않아 말기케어가 필요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불필요한 의료적 개입을 피하고 평화롭기를 바라던 할머니의 마지막 몇 주간을 확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할머니께서 집처럼 여기시던 요양원에서는 통증 완화와 같은 의료 처치가 불가능했다. 여러 호스피스에 입원을 문의했지만 대기자가 너무 많았다. 급히 찾아 옮긴 요양병원은 돈이 되지 않는 환자인 할머니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어수선한 입원실 한 구석에 누워 계시는 할머니를 잠깐씩 뵙고 오는 것은 죄스럽고 속이 아리기만 한 일이었다. 그나마 통증이 없고 정신이 명료하셔서 증손주들까지 알아보시는 것을 위안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께서 갑자기 극심한 복통을 호소하셨다. 몇 시간에 한 번씩 진통주사를 놓아 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던 요양병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할머니를 상급의료기관 응급실로 이송했다. 먼저 통증을 가라앉히고 의사는 호스피병동 입원을 ‘허락’했다. 나흘을 일반 입원실에 계시고 나서야 할머니는 호스피스병동으로 옮겨 가셨다. 마침내 존엄한 죽음과 헤어짐을 준비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할머니는 원하시던 바에 따라 모든 종교적 의례를 드리실 수 있었고 조용하고 평화로운 1인실에서 자식들의 손을 잡고 이 세상 소풍을 마치셨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죽음을 향해 걸어간다. 예상치 못한 죽음을 피할 수 있기를 바라고 가족과 함께 평온하게 마지막 시간을 보내길 원한다. 하지만 존엄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돕는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 말기암 환자가 아니고는 호스피스케어의 문을 두드리기도 어렵다. 호스피스 입원 ‘자격’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순서를 기다리다가 죽음에 이르기는 경우가 많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이 무색하다.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삶의 단계이며 지원과 돌봄이 가장 절실한 때다. 살던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기 어려운 세상에서 말기케어는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지켜주는 마지막 보루인 동시에 남겨질 가족에 대한 든든한 지원이 된다. 우리 사회의 말기케어가 어느 수준에 있는지를 길게 논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누구나 존엄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되고 지원과 시설이 확충되기만을 바라고 또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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