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와 용기 사이[2030세상/배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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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도배를 하면 늘 마감 시한에 쫓기는 데다 현장 여건이나 다른 공정의 영향 때문에 애초의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아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친다.
한 현장에 들어가면 평균 2, 3개월 정도 도배를 하는데, '이 현장이 마무리되면 다음 현장에 들어가기 전에 조금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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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어느 때부터인가 소위 말하는 ‘번아웃(burnout)’이 온 것 같았다. 다음 새 현장에 들어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마무리 지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재미있게 해오던 도배 일이 언제부터인가 스트레스가 되었고 한번 아픈 몸은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다. 고민 끝에 5년 넘게 쉬지 않고 달려온 나에게 휴식을 주기로 결정했다. 단순히 며칠 정도의 휴가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쉬어 가기로 말이다. 하지만 결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우선 나는 생계형 도배사이다. 도배를 하며 얻는 수입으로 스스로를 먹여 살리고 있다. 당장 도배를 쉬면 돈을 벌 수 없다. 한동안은 모아놓은 돈으로 버텨볼 수 있겠지만 그 이후에는 분명 다시 일을 시작해야만 한다. 도배 말고는 할 줄 아는 다른 일도 없다. 그래서 그동안은 내가 잘하는 일인 도배를 통해 돈을 버는 것을 포기하고 쉼을 선택하는 것이 늘 어려웠고, 조금 더 버티면서 돈을 버는 선택을 해왔다.
도배하며 만난 사람들도 나를 망설이게 했다. 함께 호흡하며 벽지를 붙이는 동료들이 있고 내게 일을 주는 소장님들이 있다. 그리고 내가 팀원으로 불러 모아 기술을 알려주고 같이 고생하며 성장해가고 있는 후배들이 있다. 도배를 잠시 쉬어간다고 해서 이 사람들과 영원히 이별하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매일 당연하게 만나던 사람들을 당분간 만나기 어렵다고 생각하니 현장을 떠나기 싫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도배가 좋다. 계속해서 몸을 써야 하는 힘들고 지치는 일이고 건설 현장이라는 일터 역시 많은 위험 요소와 어려움이 있지만, 나는 여전히 벽지를 붙이는 이 일이 재미있다. 건설 현장의 아파트 가구 안에 차려놓은 우리 팀만의 도배 창고에 출근해 믹스커피를 마시며 팀원들과 잠깐 아침 인사 겸 수다를 떨고, 피곤한 몸을 일으켜 함께 일하고 또 그렇게 열심히 일한 것에 보람을 느끼기도 하는 당연하고 익숙한 일상이 이제 한동안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텅 비어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잠깐 멈추려 한다. 내가 해야만 하는 일, 좋아하는 일, 소중하게 생각하는 일, 오랫동안 당연하게 해오던 일상을 잠깐 멈추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도배를 처음 시작하던 때보다 훨씬 더 많이 고민했고 마음은 수도 없이 갈팡질팡했다. 기술자로 인정을 받고 한창 팀원을 늘려 나가면서 팀장으로 책임감을 갖고 성장해가고 있던 시기에 쉼을 가진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성장을 포기하고 뒤처지는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더 늦기 전에, 더 지치기 전에 스스로에게 쉬어갈 기회를 주는 것은 내게 큰 용기이기도 하다. 어느덧 나라는 사람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던 ‘도배’ 일을 잠시 내려놓는다는 것, 그 선택은 포기와 용기 어느 사이에 있다.
배윤슬 도배사·‘청년 도배사 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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