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경쟁 상대 품는 나무의 협동 전략
얼핏 보아 평화롭기만 해 보이는 나무도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살 수 있다. 주어진 공간에서 햇빛을 잘 받고, 땅에서 물과 양분을 확보하려면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곁의 나무보다 높이 올라 햇빛을 받아 광합성을 해야 하고 나뭇가지를 펼칠 공간도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승부가 나지 않을 만큼 경쟁이 이어지면 나무는 경쟁의 원리를 내려놓고 ‘협동’을 선택한다. 나무가 보여주는 협동의 결과가 ‘연리(連理)’ 현상이다. 나뭇가지가 서로 붙었다면 연리지, 줄기가 붙었으면 연리목, 땅속의 뿌리가 붙은 경우라면 연리근이라고 부른다.
곁에 있는 나무와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분명히 서로 다른 두 그루의 나무였건만 연리를 이룬 뒤에는 하나의 나무에서 빨아들인 물을 상대 나무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자신이 광합성을 통해 만든 양분까지도 나눠주며 살아간다. 완벽한 협동이고 공생이다.
제주 평대리 비자나무 숲 한가운데 자리 잡고 서 있는 ‘비자나무 연리목’(사진)은 처음에 너무 가까운 자리에서 뿌리를 내렸다. 자리를 옮길 수 없는 두 그루의 비자나무는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했다. 하지만 같은 세력 같은 크기로 자라는 두 나무에게 경쟁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고단한 경쟁에서 지칠 무렵 두 그루의 비자나무는 경쟁보다 협동이 옳은 선택이라고 판단했다. 과감하게 제 몸을 내어주고 상대의 몸을 받아들였다. 줄기의 상당 부분이 완전히 붙었다. 줄기 껍질만이 아니라 안쪽의 내부조직까지 완벽하게 한 몸을 이뤘다.
결국 둘 중 하나가 죽든가 혹은 둘 다 죽어야 끝날 뻔했던 나무의 경쟁은 둘이 하나 되면서 마무리됐다. 두 그루 모두의 승리였다. ‘비자나무 연리목’을 사람들은 ‘사랑나무’라고 부른다. 나무처럼 사랑을 이루고 싶은 사람들의 희망이 담긴 이름이다. 끝내 상대를 쓰러뜨려 생명을 끊어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 세계의 약육강식형 경쟁과는 사뭇 다른 나무의 협동 혹은 공생 전략이 유난스레 돋보이는 계절이다.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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