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없는 혁신 피로감 [뉴스룸에서]

박현철 기자 2024. 3. 4.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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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박현철 | 서비스총괄

지난해 11월 발간된 ‘2023 한국의 언론인: 제16회 언론인 의식조사’엔 ‘디지털 대응 및 혁신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냐?’는 질문이 있습니다. 조사에 참여한 언론인들 38.3%가 그렇다(매우 그렇다+대체로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별로 그렇지 않다+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한 이는 27.6%였습니다. 2021년 조사에서도 피로감을 느끼는 이들이 38.2%였습니다. 만성피로입니다.

한겨레를 비롯한 국내 언론은 지금 이 순간에도 디지털 혁신을 부르짖습니다. 여전히 디지털 혁신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많다는 뜻입니다. 혁신을 제대로 하지도 못했는데 왜 혁신 피로감을 느끼고 있을까요?

최지향 이화여대 교수는 ‘신문과 방송’ 2월호 ‘혁신, 필요와 피로 사이’에서 그 원인을 2018년 옥스퍼드대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발표를 인용해 ‘첨단 기술 활용에 대한 과도한 집착’에서 찾습니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무조건 이를 활용해 저널리즘 생산물을 만들고 배포하기에만 급급한, 기술에 대한 집착”이 혁신 피로를 불러온다는 겁니다.

최 교수를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현장 사정을 참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2010년대 초반부터 이른바 디지털 부서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겪어온 일들이 그의 진단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입니다.

201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진 에스엔에스(SNS)의 시대였습니다. 페이스북 페이지에 뉴스를 올려놓으면 수십만명, 수백만명에게 도달되는 일이 드물지 않았습니다. 곧 포털의 시대가 끝날 것 같았습니다. 페이스북은 기사보다 이미지를, 이미지보다 영상을 더 많은 이들에게 전달해주었습니다. 에스엔에스팀이 생겨났고, ‘어떻게든 뉴스를 영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페이스북이 언론사들의 뉴스 도달률을 인위적으로 떨어뜨렸습니다. 범람하는 뉴스에 이용자들이 거부감을 느껴 페이스북을 떠나기 시작했고, 이들을 붙잡기 위해 언론사들을 사실상 내쫓은 겁니다. 에스엔에스를 운영하던 팀은 해체됐습니다. ‘경쟁 회사랑 비교하면 우린 별로 투자한 것도 없지 않냐’며 서로를 위로했습니다.

에스엔에스 시대가 저물어갈 때쯤 ‘버티컬’ 바람이 불었습니다. 언론사 내부에 동물이나 환경, 여성 등 특정 주제를 다루거나 성별, 나이 같은 이용자들의 특성에 초점을 맞추면서 동시에 매체를 지향하는 조직들이 생겨났습니다. 버티컬에 참여한 구성원들은 색다른 경험을 하긴 했습니다. 매체를 지향했기에 콘텐츠를 생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속가능성’까지 고민해야 했습니다. 돈을 버는 고민과 경험을 했다는 뜻입니다. 상품을 기획하거나 오프라인 행사를 열기도 했습니다. 거기까지였습니다. 전문성도 부족했고 무엇보다 지속가능하지 않아도 큰일 나지 않았습니다.

버티컬 열기가 사그라들 때쯤 뉴스레터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엔 생성형 인공지능(AI) 바람이 매섭습니다.

새로운 시도를 하고 좌절하고 단념하는 10년 동안 무엇인가 빠졌습니다. 빠진 게 한두개가 아니겠으나 두 가지만 꼽자면, △장기적인 전략 △콘텐츠 자체의 혁신 고민이 빠져 있습니다. 이 두 가지가 없다 보니 디지털 혁신은 늘 ‘디지털 부서’만의 몫이었습니다. 그러니 디지털 부서에서 경험과 깨달음을 얻더라도 그건 개인의 경험과 개인의 깨달음일 뿐입니다. 성공한 적도 없을뿐더러, 실패를 통해서라도 배워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습니다. ‘또 디지털이야? 피곤하네’라는 말만 서로 주고받으면서 시간은 흐르고 있습니다.

전략 수립은 리더의 몫일 텐데요, 미국 기자들을 상대로 한 최근의 한 연구 결과(Effective Leadership in Journalism)를 보도한 뉴스를 보았습니다. 리더십이 빈곤한(poor) 상사를 만나면 이를 언론사의 전문성 부족으로 받아들이고 회사를 떠날 마음을 품게 된다고 합니다. 연구를 이끈 미국 사우스플로리다대학교 그레고리 페로 교수는 “나쁜 직장을 그만두는 게 아니라, 나쁜 상사를 그만두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언론사만 그런 건 아닐 겁니다.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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