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칼럼] 최악의 의료대란, 대화로 해결해야
최악의 의료대란이 가시화되고 있다. 정부가 정해놓은 시한인 2월 29일까지 복귀한 전공의(인턴·레지턴트)는 565명뿐이다. 정부의 의사에 대한 무차별적인 악마화와 강력한 행정·사법적 처리 방침이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치솟던 대통령의 지지율도 5주 만에 상승세를 멈춰버렸다. 정부의 비현실적인 의료개혁에 대한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되고 있다. 어설픈 의료 개혁이 총선에 미칠 파장도 걱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제는 수련의의 마지막 단계에 있는 전임의(펠로우)가 병원을 이탈할 모양이다. 수련병원에서 전임의의 이탈은 쉽게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 분명하다. 빅5 병원의 의사 중에서 전임의의 비중은 16%로 전공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병원에서 담당하는 업무는 전공의의 3배가 넘기 때문이다.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의료대란의 책임이 전공의·의대생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총선을 앞두고 정치공학적 이유로 비현실적인 2000명 증원 카드를 무책임하게 내놓은 보건복지부의 책임이 훨씬 더 무겁다. 의료계가 일방적인 의대 증원을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은 어처구니없는 억지다.
아무 준비도 없이 의대 정원을 한꺼번에 65%나 확대하는 황당한 정책을 밀어붙이는 정부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의학 교육의 질 저하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현재 1만3000명의 전공의와 5600명의 전임의가 일하고 있는 100개의 수련병원으로는 6년 후에 쏟아져 나오는 의대 졸업생을 수용할 수 없다. 적어도 65개의 수련병원을 더 지어야만 한다. 앞으로 국립의대 교수 1000명을 추가로 채용하고, 기초의학 교육에 필요한 인력·시설에 투자하겠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는 '자다가 남의 집 봉창을 두드리는' 엉뚱한 대책이다.
국민 1000명당 의사의 수가 2.6명으로 OECD 평균보다 적은 것은 사실이다. 그 이유를 의사의 집단이기주의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 1990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의사는 3만5000명이었다. 약사의 도움이 없으면 최소한의 의료 체계도 유지할 수 없었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 30년 동안 의사의 수가 14만3000명으로 무려 4배나 늘어났다. 지난 10년 동안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OECD 평균보다 1.41배나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런데 아무 준비도 없이 의대의 입학정원을 한꺼번에 2000명이나 확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의사는 변호사처럼 한꺼번에 늘일 수 없다. 사법고시를 없애듯이 '의사고시'를 없애버릴 수도 없다. 변호사가 늘어났다고 법률 서비스가 개선되고, 수임료가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없다. 엉뚱하게 변호사의 활동 영역만 넓어졌을 뿐이다. 실제로 언론의 '정치평론'은 선무당급 변호사들이 완전히 점령해버렸다.
전문의의 길을 포기해버리겠다는 전공의·의대생에 대한 정부의 위협·겁박의 문제도 심각하다. 전공의·의대생의 개인적인 선택을 정부가 막을 방법은 없다. 국민 건강을 지켜주는 것이 정부의 헌법적 책무이듯이, 전공의가 직업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도 헌법 15조에 명시된 헌법적 권리이기 때문이다. 평안감사도 제가 싫다고 하면 어쩔 수가 없는 법이다.
교육부가 의대 증원 신청을 무기로 휘두르고 있다. 물론 고등교육법 35조에 분명하게 규정된 대입 4년 예고제 위반이다. 학령인구 절벽과 등록금 동결에 의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는 대학의 입장이 난처하다. 섣부른 의대 증원 정책이 이제 대학의 내부 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총장과 의과대학 사이의 갈등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의대의 입학정원이 아무도 손대지 못하는 성역일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한꺼번에 65% 증원이라는 억지 정책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의사들을 악마화시키는 정부의 언행도 볼썽사납다. 의대 증원은 과학자들 '약탈적 카르텔'이라고 몰아붙인 후에 연구개발 예산을 무차별적으로 삭감했던 일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이공계 홀대'다. 지역·필수의료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보건복지부의 의료 행정을 개혁하는 일이 무엇보다 절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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