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ANCIAL TIMES 제휴사 칼럼] 정치인은 과감해야 한다

2024. 3. 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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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정치·행정의 중심지 다우닝가 10번지. 게티이미지뱅크

영국인들이 정치에 신물을 느끼고 있다. 영국 정부와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 신뢰도를 알아본 최근 여론조사 결과다. 이번 결과만으로도 참담하지만, 정치 신뢰도가 낮을수록 정치인의 자질과 역량이 낮아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더 문제다. 정치 리더들이 과감하면서도 꼭 필요한 정책을 선택할 수 있는 역량 말이다.

영국 국민들 정치에 신뢰 상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021년 당시 정부를 신뢰하는 영국 국민은 전체 인구 중 39%에 불과했다. 이는 미국의 31%와 이탈리아의 35%에는 근접하지만 신뢰도 84%의 스위스, 77%의 핀란드, 69%의 스웨덴과 61%의 독일에 훨씬 못 미치는 수치다. 정치 신뢰도에 관한 또 다른 설문조사 결과는 더욱 암담하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이 발표한 '세계 가치관 조사'에서 자국의 정치 시스템에 "매우 만족"이라고 응답한 영국인 비율은 17%에 불과한 반면, "불만족" 비율은 무려 32%였다. 캐나다와 독일, 호주가 오히려 나은 수준이었다.

정치인 능력에 민주주의 명운 달려

이 같은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족은 국가를 좀먹을 수밖에 없다. 정치인이 경멸의 대상까지는 아니겠으나, 신뢰를 받지 못하면서 고되고 열악한 봉급을 받는 업에 인생을 바칠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민주주의의 명운은 품격 있고 유능하며 존경을 받는 정치인에 달려 있다.

브렉시트·코로나 여파 경제 휘청

민주주의 불만족은 사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16년 동안 영국이 겪은 건 무려 대규모 금융위기와 긴축 재정, 브렉시트에 대한 논란의 국민투표와 그에 따른 사회 혼란, 여전히 미이행 상태인 브렉시트 완수 공약, 코로나19 대유행, 한 회기 내 3번의 총리 교체, 분열된 여당, 생활비 위기, 그리고 급진 좌파 노선에 따른 노동당 위기 등이었다.

그중 가장 최악은 지난해 12월 영국 민간 싱크탱크 레졸루션재단과 경제성과센터가 발표한 보고서 '스태그네이션 끝내기(Ending Stagnation)' 내용이었다. 이 보고서는 "금융위기 이후 12년간 영국의 연간 노동 생산성 성장률은 0.4%로, 25개 OECD 선진국의 (평균) 절반에 불과했다…(중략)…실질 임금은 1970년부터 2007년까지 10년간 연평균 33% 증가했지만 2010년대 들어 제로(0)에 수렴했다. 2023년 중반 기준으로 임금은 금융위기 당시 수준으로 회귀했다"며 끔찍한 경제적 결과를 드러냈다.

무능한 정책 악순환 끊을 개혁 절실

국가 정책은 이어지고 있으나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차기 정부는 이 같은 참혹한 고리를 끊기 위해 생산성 정체를 극복하고, 지역 불균형을 좁히고, 부동산 가격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조정하여 결국 정치 신뢰도를 제고해야 한다. 무분별한 전략과 체계적 사고가 부재한 오늘날의 집권 여당은 결국 보수 정당이 정권을 잡을 수 없으며, 잡아서도 안 된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러나 보수당은 향후 총선에서 패색이 짙어지면 차기 정부의 손발을 묶어 실패하게 할 공산이 있다. 총선을 앞두고 보수당은 실효성이 의문스러운 감세 정책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에 따라 노동당은 감세와 공공지출 축소 정책을 유지하라는 압박에 직면할 수 있고, 이는 노동당 정권의 무력화로 이어질 것이다. 반대로 노동당이 감세에서 증세를 택한다면 보수당은 '세금을 더 물리고 공공지출을 확대하는 노동당의 무책임한 정책'이 시작되었다며 비난할 것이다.

영국 경제학자이자 전 세계은행 부총재인 니컬러스 스턴의 주장과 같이, 그럼에도 영국은 정부 및 민간 투자를 확대하고, 국방비를 증액해야 한다. 감세할 여력이 없다. 또한 지출과 조세의 지방 분권, 세금 단순화와 세제 개혁, 개발 계획 관리의 자유, 혁신 지원 및 에너지 전환 가속화를 신속하게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한 방법으로 앤디 홀데인 영란은행 수석 경제학자는 재무부 해체까지 거론했다. 영국의 방향성은 '더 작은 국가'가 아니라, '더 적극적이고 응집한 국가이자 논란의 여지를 무릅쓴, 과감한 개혁의 주체'여야 한다. 평소와 같은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지금은 급진적 변화가 절실히 필요한 시기다.

장기적 안목서 급진적 정책 나와야

한편 노동당은 총선 패배를 우려하여 최대한 현 정부 정책을 모방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전략은 노동당이 총선에서 승기를 잡을 확률은 높이겠지만, 결국 과감한 변화에 나설 의무를 저버리는 행위다. 방어적 태세만 고집한다면 또 다른 침체와 실패를 가져올 것이며, 반대로 급진적 태세로 전환한다면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대중의 냉소는 피할 수 없다. 최악의 경우 급진적 개혁보다 '정치적 가식(political posturing)'을 유지하는 데 급급해 장기 정체와 민심 하락을 초래할 수 있다.

이는 곧 실패다. 정치인은 때로는 과감해져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때가 아닐까.

※이 글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실린 마틴 울프 칼럼 'Dissatisfaction with democracy is corrosive'를 매일경제신문이 번역한 것입니다.

[마틴 울프 FT 수석 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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