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가 끝내 외면한 1만6천건

문광호 기자 2024. 3. 4.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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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2월28일 국회 앞에서 전세사기 특별법의 국회 통과와 국민의힘의 협조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문재원 기자

1만6306건. 4일 기준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 수다. 지난달 29일 총선 전 마지막 임시국회가 종료되면서 21대 국회 내 이들 법안의 통과 가능성은 매우 낮아졌다. 폐기 가능성이 커진 법안에는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 같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법안부터 고준위 방폐장법 등 미래를 대비해야 할 법안도 포함됐다. 지난해 7월 수해복구 작업 도중 사망한 채 상병 사건 수사 관련 외압 의혹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특검법 논의도 총선 이후로 밀렸다.

총선 전 마지막 기회였던 지난달 29일 본회의에서는 고작 59건의 법안을 처리했다. 논의도 제대로 하지 못한 쟁점법안은 포함되지 않았다. 거대 양당의 관심은 본회의 직전까지 선거구 획정이었다.

“7명 희생으로 부족한가”···입법 사각지대 놓인 사회적 약자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울분을 토했다. 전세사기피해자 전국대책위는 지난달 29일 입장문을 내고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피해자들은 무능하고 무책임한 국회에 엄중히 경고한다. 일곱 명의 희생으로 부족한가”라고 물었다. 지난달 26일은 인천 미추홀구의 한 청년이 전세사기로 목숨을 끊은 지 1년째 되는 날이었다. 지난해 6월 특별법이 제정·공포됐지만 시행 후 8개월 동안 실질적인 지원이 부족하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야당(민주당·녹색정의당)은 정부가 피해자에게 전세보증금의 일부를 먼저 지급하고, 이후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한다는 ‘선구제·후구상’ 방안을 담아 개정안을 발의했다. 지난달 27일에는 야당 단독 의결로 법안을 본회의에 직회부했다.정부와 여당은 다른 사기 피해자들과 형평성을 이유로 반대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3일 기자들과 만나 “정부에서 상당히 반대가 심한 법”이라며 “조금 더 숙의가 필요하다는 게 우리 당 입장”이라고 밝혔다.

법 사각지대에 놓인 위기임산부 지원 법안도 통과가 불발됐다. 위기임산부란 미성년, 배우자의 학대 혹은 사망 등으로 임신·출산·양육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말한다. 지난해 6월 수원 영아 사망 사건에서 출생 미등록 아동 문제가 불거진 이후 보다 촘촘한 지원이 요구됐다. 국회 여성가족위는 지난달 23일 법 지원대상자에 위기임산부를 추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한부모가족지원법 개정안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지만 법사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난방비 지원에서 소외되는 취약층을 위한 도시가스사업법 개정안(대안)도 법사위 계류 중이다. 지난해 겨울 최강 한파가 불어닥치자 정부와 여야는 너나 할 것 없이 취약층을 위한 도시가스요금 감면 정책을 내놓았다. 문제는 당사자가 정책을 몰라 지원받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지난해 난방비 지원 대상인 취약계층 202만가구 중 약 50만 가구가 지원을 받지 못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여야 합의로 지난해 11월30일 지방자치단체장과 도시가스사업자가 정부 지원을 직권 신청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겨울이 다 끝나가는 이날까지 법안은 통과되지 못했다. 법사위 회의록에 따르면 취약층 지원과 무관한 다른 조항에 대한 법무부의 반대로 처리가 미뤄졌다.

탈핵시민행동이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연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특별법 폐기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핵폐기물 모형 인근에 눕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방사성폐기물 포화, 의료 공백 도래하는데···미래 대비 법안도 ‘동면’

미래에 도래할 문제를 대비하기 위한 법안들도 21대 국회에 잠들 상황이다. 원자력발전을 운영하면서 생긴 폐기물을 저장하기 위한 시설 근거법(고준위 방사성폐기물관리 특별법)이 대표적이다. 원자력발전 폐기물은 현재는 명확한 관리 방법이 없어 국내 원전 내부와 주변 저장시설에 약 50만 다발(4만4000여t)가량 쌓아놓고 있다. 2030년이면 원전 내 저장시설이 포화되기 시작한다. 개문발차식으로 신규 원전을 추진하는 윤석열 정부와 여당에서 시급한 입법을 촉구하는 이유다. 민주당은 국민의힘과 고준위 방폐장 수용 용량을 두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공공의대법과 지역의사제법도 이번 임시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여야는 모두 수도권 집중에 따른 의료 질 격차 문제 해소에 공감하면서도 뚜렷한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공공의대법은 지역 공공의대 설립을 통해, 지역의사제는 일부 의대 정원의 지역 의료기관 의무 복무를 통해 이를 보완하자는 취지다. 지난해 12월20일 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지만 의료계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입법 논의가 중단됐다.

코로나19, 의사 파업 사태를 겪으며 논의에 불이 붙은 비대면 진료 제도화 역시 총선 국면에서 논의가 중단됐다. 여야 모두 법안을 발의해놓고 지난해 8월 법안심사소위에 안건으로 상정한 이후 소식이 없다. 최근 급격한 기술 발전을 보이는 인공지능(AI) 산업에 대한 지원 입법도 요원하다. 양향자 개혁신당 의원,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이 각각 발의한 인공지능산업 지원에 관한 법은 모두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총선 후 자동상정 채상병 특검법···결과 따라 통과 여부 결정될 듯

채상병 특검법(해병대 채상병 사망 사건과 수사 외압 의혹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법)도 2월 임시국회 내 통과가 불발된 법안이다. 해병대 예비역들은 지난 1일에도 “순직 장병의 가족들과 생존 장병과 그 가족들은 여전히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수사를 맡았던 박정훈 대령은 항명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며 조속한 특검법 통과를 촉구했다. 국민의힘은 수사 외압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관련 의혹을 받는 임종득 전 국가안보실 2차장, 신범철 국방부 전 차관 등 주요 간부들은 국민의힘에서 총선 공천을 받기도 했다.

다만 채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10월6일 야당 주도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돼 총선 이후 본회의에 자동 상정된다. 총선 결과에 따라 추진에 탄력이 붙을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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