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총 내려놓는 '황제' 진종오 "내 인생 최고의 한발은 런던 올림픽 10.8점"

안영준 기자 2024. 3. 4.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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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문일답] 27년 현역 마감…받은 사랑 돌려드릴 것
金 4개 등 올림픽서만 6개 메달…한국 최다 메달
'한국 사격 레전드' 진종오가 4일 오후 서울 성동구 브리온컴퍼니에서 열린 은퇴식에서 기념 케이크와 꽃다발을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4.3.4/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서울=뉴스1) 안영준 기자 = '권총 황제' 진종오가 은퇴식에서 "내 인생 최고의 한발은 런던 올림픽에서 쏜 10.8점"이라고 회상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진종오는 4일 서울 성수동 브리온컴퍼니 본사에서 은퇴식을 갖고 선수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진종오는 올림픽 무대에서만 6개의 메달(금메달 4개, 은메달 2개)을 수확한 사격 영웅이다. 2004 아테네 대회부터 2016 리우 대회까지 4연속 시상대에 올랐으며, 김수녕(양궁)과 함께 한국 선수의 올림픽 최다 금메달(4개) 및 메달(6개) 타이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서울시청 사격팀 플레잉코치로 활약했던 진종오는 이날 공식 은퇴식을 끝으로 권총을 내려놓았다.

27년이라는 긴 시간에서 알 수 있듯 현역 시절 철저한 자기관리를 했던 진종오는 "매해 12월31일이 되면 항상 새해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이루고 싶은 것을 위해 사람들과의 만남을 차단할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땐 지독하게 외롭웠다"고 말했다.

아울러 진종오는 대학시절부터 선수 생활 동안 빼곡하게 메모했던 노트의 일부도 이날 공개했다. 진종오는 "경기가 안 풀렸을 때 컨디션, 자세, 경기장 분위기, 내가 받은 느낌 등을 주로 적었다. 나만의 노하우가 담긴 귀한 책"이라면서 "후배들에게 보여줘서 한국 사격이 더 좋은 성적을 내는 데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격 대표팀 진종오가 6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데오도루 올림픽 슈팅 센터에서 열린 리우올림픽 남자 10미터 공기권총 결선에서 관중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2016.8.7/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아울러 진종오는 4회 연속 메달을 수확한 뒤 5번째로 참가한 도쿄 올림픽에서는 처음으로 무관에 그쳤는데, 당시 사실상 선수로서의 마지막이었음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그는 "도쿄 올림픽을 치르면서 '아, 내가 더는 자리를 차지해선 안 되겠다' 싶었다. 다만 이걸 밖에 공개하면 '시한부'가 돼 너무 부담이 커질 것 같아, 겉으로만 파리 올림픽까지 도전하겠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격이 너무 좋아 욕심을 부렸던 것 같다. 이미 집중력이나 체력이 힘들었는데, 도쿄 올림픽을 무슨 정신으로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돌이켜보면 더 일찍 그만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고 속마음도 꺼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격발을 했을 진종오는 선수 커리어를 통틀어 최고의 한발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2012 런던 올림픽 당시 세계 신기록도 갖고 있었고 세계 랭킹 1위였다. '내가 세계 정상임을 확인시켜주자'는 거만할 정도의 자신감을 갖고 경기에 임했다. 성적도 따라줘서 뿌듯했다. 그래서 선수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당시 공기권총 10m에서 쐈던 10.8점이 내 인생 최고의 한발"이라고 말했다.

'한국 사격 레전드' 진종오가 4일 오후 서울 성동구 브리온컴퍼니에서 열린 은퇴식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2024.3.4/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다음은 진종오와의 일문일답.

-언제 처음 은퇴를 결심했나? ▶고백하자면 2020 도쿄 올림픽을 하면서 결심했다. '아, 내가 더는 자리를 차지해선 안 되겠다. 내려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전부터 대학원 석사과정 등을 하면서 선수 이후의 커리어를 대비하기는 했지만, 선수를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그 때다.

-도쿄 올림픽 당시에는 파리 올림픽도 도전하겠다고 밝혔는데? ▶도쿄 올림픽을 치르는 도중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공개해버리면 스스로 갖는 부담이 너무 클 것 같았다. 그래서 외부에 말은 못했지만 혼자서는 마음을 내려놨었다.

-철저한 자기관리의 비결은? ▶항상 12월31일이 되면 새해 목표를 세웠다. 다음 해에는 어떤 부분을 자중하고, 어떤 부분을 더 노력해야할지 구체적으로, 일기처럼 적었다. 하고 싶었던 것을 참는 게 특히 힘들었다. 사람들과의 만남 등도 차단하다보니 그런 점에서 지독하게 외로웠다.

-캐비넷 토크에서 공개한 노트의 의미는? ▶경기가 안 풀렸을 때 컨디션, 자세, 경기장 분위기, 내가 받은 느낌 등을 주로 적었다. 나만의 노하우가 담긴 귀한 자료다. 노트 맨 앞에는 '노력에 대해 칭찬하자, 안 될 때에는 변화를 주는 것도 방법'이라고 적었다. 행운을 바라면서 네잎클로버도 붙여놓았다. 앞으로 후배들에게 보여줘서 한국 사격이 더 좋은 성적을 내는 데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

'한국 사격 레전드' 진종오가 4일 오후 서울 성동구 브리온컴퍼니에서 열린 은퇴식에서 선수생활 동안 적은 메모장을 공개하고 있다. 2024.3.4/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은퇴 이후에도 노트를 계속 채울 생각인지? 그렇다면 맨 앞에는 어떤 문구를? ▶요즘은 너무 바빠서 주요 일정 등만 적는다. 노트 맨 앞에는 '청렴결백'하게 살자는 글을 적고 싶다. 남에게 절대 피해주지 말고, 받은 사랑을 돌려주면서 살자는 게 '제2의 인생' 모토다.

-사격선수로서 최악의 한발, 최고의 한발은? ▶최악의 한발은 기억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2016 리우 올림픽에서 6.6점을 쐈던 때를 꼽는데, 연습 때도 나오지 않던 기록이 올림픽에서 나왔으니 굳이 따지자면 최악의 한발이 맞기는 하다.

최고의 한발은 2012 런던 올림픽 공기권총 10m에서 쐈던 마지막 발이다. 당시 10.8점을 쐈는데, 쏘는 순간 '이건 무조건 정중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런던 올림픽 당시 세계 신기록도 갖고 있었고 세계 랭킹 1위였다. '내가 세계 정상임을 확인시켜주자'는 거만할 정도의 자신감을 갖고 경기에 임했다. 성적도 따라줘서 뿌듯했다. 그래서 선수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고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파리 올림픽에 나서는 후배들에게 응원과 조언을 한다면? ▶선수들 스스로가 본인의 컨디션이나 바이오리듬을 철저하게 체크했으면 좋겠다. 옆에서 아무리 챙겨줘도 결국 자신이 해내야 한다. 스스로가 자신의 상태를 잘 알고 꼼꼼하게 체크해야 한다. 나처럼 메모를 자주 하는 것도 추천한다.

-선수 커리어를 끝내며 마지막 한 마디를 전한다면. ▶27년 동안 사격 선수로 활동하면서 성공도 했고 실패도 했지만 정말 행복했다.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았는데 이제는 그 사랑을 돌려드릴 수 있도록 다시 태어나겠다. 지금까지 사격선수 진종오를 응원해주셔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한국 사격 레전드' 진종오가 4일 오후 서울 성동구 브리온컴퍼니에서 열린 은퇴식에서 눈물을 닦고 있다. 2024.3.4/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tr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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