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석 사단에서 완전히 독립한 이진주 PD의 전위적인 선택('연애남매')

김교석 칼럼니스트 2024. 3. 4.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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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남매’는 연애예능이 맞는 걸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이혼이 연애예능의 대표 소재가 되고 '나는 솔로' 16기가 도파민 융단폭격을 가하기 전까지, 이별한 커플이 함께 새로운 사랑에 도전한다는 '환승연애'의 설정은 설렘과 예쁜 연애를 추구하던 연애예능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준 일대 전환점이었다.

그런데 바로 놀라운 반전을 만났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도파민 파티를 예상했건만, 나영석 사단의 '꽃보다'시리즈, '윤식당'시리즈 등에서 좋은 사람이 함께하는 바이브를 동화 같은 이야기로 엮는 데 탁월한 감각을 보인 이진주 PD팀이 만든 그림과 '서사'는 막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의 한때를 함께한 청춘들의 엇갈리는 감정과 선택은 연애담을 넘어서 자기 성찰의 나이테를 담은 성장 드라마였다. 설정은 자극 그 자체였지만, 특히 '환승연애2'는 예능 '서사'의 작법을 한 단계 발전시키면서 연애예능의 개념을 한 차원 넓힌 기념비적인 콘텐츠로 평가받고 사랑받았다.

그런 이진주 PD를 비롯한 이들 제작진이 이직해서 새롭게 시작한 JTBC '연애남매'도 설정이 공개되자 적잖은 파장을 낳았다. '쉽지 않다. 같이하기'라는 한 출연자의 말처럼 밈이 된 '현실남매'를 연애예능에 접목했다는 것이 신박하긴 하지만, 무관심이 보편화된 혈육의 연애사라는 문화적 인식 자체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1화부터 '연애남매'는 '환승연애' 때와 마찬가지로 반전으로 시작한다. 인터넷 밈으로 희화화되는 남매 관계를 연애예능에 접목한 일종의 도파민 파티가 아니라 연애예능이란 극한의 조건 속에서 가족이란 울타리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동화다.

그래서인지 낯선 청춘남녀가 모인 설렘과 긴장도 존재하고, 누가 남매인지 모르는 데서 오는 오해와 착각의 늪에 빠트리는 장치들이 신선하긴 하지만, 가족의 따스함을 보여주는 데 보다 많은 노력을 한다. 예상과 달리 남매 추리는 큰 재미요소가 아닌 듯하다. 1회에서 벌써 두 남매가 공개됐다. 부모님이 마련한 음식을 함께 나눠먹고, 부모님과의 공개적인 전화 통화를 하는 것을 넘어서 부모님의 인터뷰까지 등장한다. 한국버전 '보이후드'랄까. 출연자들의 어린 시절 가족사진과 홈비디오 카메라 영상 등을 활용해 출연자들의 성장 과정을 보여준다. 한 가족의 히스토리를 통해 그가 어떤 사람인지 굉장히 공들여 보여주고 있다. 별도 장치인 '남매의 방'에 모인 남매들도 티격태격하지 않는다. 오히려 낯선 공간에서 기댈 곳이 있다는 애틋함과 안도, 그리고 응원의 정서가 가득하다.

가족의 소중함을 연애예능에 담다니, 한 번도 생각지도 못한 담대한 도전이긴 하다. 연애라는 지극히 개인화된 관계와 감정을 가족이란 관계와 시선으로 확대했으니 말이다. 시트콤과 같을 거라는 제작진의 사전 인터뷰를 보고는 혈육이 눈앞에서 플러팅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현실남매 밈을 확장해 색다른 그림을 보여줄 것으로 예상했지만, 힘들고 지치고 쓰러져도 언제나 돌아갈 수 있고, 보듬어주는 가족의 사랑을 가져올지는 상상도 못했다.

사랑받고 자란 사람들이라 그런지 출연자들도 최근 연애예능의 경향과 달리 인플루언서 느낌이 덜하고 비교적 순수해 보인다. 처절하게 경쟁하고 쟁취하는 극현실주의('나는솔로')와도, 판타지와 설렘을 자극하는 일반적인 연애예능('하트시그널','솔로지옥')의 경로와도 다른, 기존에 없던 새로운 길임은 확실하다.

그런데, 아무리 새롭고, 관점이 신선하고 파격적이어도, '연애남매'는 제목 그대로 연애예능이다. 실제로도 가족 서사와 관련된 부분을 덜어내면 자신들이 '환승연애'를 통해 정립한 연애예능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합숙하는 공간의 구조와 느낌, 제한된 정보와 비밀, 한 집에서 지내는 청춘남녀의 시트콤 같은 모습, 여러 장치를 통해 엇갈리는 오해와 감정의 실타래, 무엇보다 출연 목적까지 연애예능의 기본 공식 안에 있다.

즉, 연애예능의 틀을 그대로 가져가면서 가족이란 새로운 렌즈를 씌우고 색다른 접근을 했다. 그런데 초반부터 전면에 꽤 공고하게 둘러진 가족이란 든든한 울타리가 연애예능에서 어떻게 작동할지 미지수다. 가족 다큐멘터리가 시청자들의 연애 세포 자극에 어떤 도움을 줄지, 가족으로 서사, 관점, 정서를 확장한 부분이 연애예능에 어떤 새로운 방정식으로 작용할지 솔직히 모르겠다.

설렘, 연애감정에 가족의 정을 담아 따뜻한 위로를 더한 것 자체는 새로운 시도이긴 하지만 한 가정의 히스토리와 성장 서사가 예를 들자면 장기연애 서사나, 이혼이나 경각심처럼 연애 감정을 더욱 풍부하게 하거나 몰입을 더욱 깊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지는 의문이다. 왜냐면 '연애남매'는 '현실 남매'라는 익숙한 밈을 가족의 사랑이란 접근으로 비트는 데서 새로움이 있다. 그런데 남매가 서로 외면하고 티격태격할 수 있는 바탕에 깊고 끈끈한 가족의 정이 깔려 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니라 너무나 당연해서 하지 않는 이야기에 가깝기 때문이다.

출연자들의 관계망에 있어서도 남매들이 등장하니 경우의 수가 일단 줄어든다. 지켜보는 눈이 있으니 어쩔 수 없는 감정과 행동에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를 가족이란 애틋함과 사랑으로 풀어버리는 것은 남매가 연애예능에 출연하면 어떤 예상치도 못한 일이 벌어질까에 대한 기대와는 가장 거리가 먼 정리다.

쉽게 말해서, 첫 회의 당황스러움은 이런 거다. 소개팅 첫 만남 자리인데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하고 심지어 만남을 잘 갖고 있냐고 부모님의 확인 안부 전화가 오면 일반적으론 부담스럽기 마련이다. 아닌가? 개인과 개인이 만나 연애 감정과 설렘을 발산하는 첫 만남에서 가정사는 그다지 좋은 토픽은 아니다. 사람의 생각이 모두 다르긴 하지만 적어도 연애예능에 기대한 정서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다음이 궁금해진다. 새로운 접근으로 연애예능의 시대를 열었던 경험이 있는 만큼, 연애예능의 정서를 확장하거나 개념을 뒤흔들 만한 또 한 번의 대박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이제 1화가 끝났다. 여전히 큰 기대를 품으면서도 가족 사랑을 연애예능에 접목한 '연애남매'의 출발과 접근이 아직은 전위적으로 다가온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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