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칼럼]머스크의 558억 달러 성과급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2024. 3. 4.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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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30일 미국 델라웨어주 법원은 총 200페이지 판결문을 통해 테슬라 이사회가 일론 머스크에게 558억 달러 규모의 성과급 지급을 결의함으로써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를 위반했다고 판시했다.

테슬라 이사회는 2018년 1월 21일 머스크에게 사상 최대인 558억 달러 가치의 스톡옵션을 부여하는 만장일치 결의를 채택한 바 있다. 이 결의는 회사의 성과와 기업가치 관련 목표가 달성된 데 대해 사전에 책정되어 있던 패키지에 의한 보상이었다. 이사회는 이해관계가 없는 주주들의 승인을 조건으로 성과급을 결의했다.

의결권자문사들은 반대를 권고했지만 73% 주주가 주주총회에서 성과급을 승인했다. 그러자 리처드 토네타라는 주주가 주주대표 소송을 제기했다. 토네타는 소 제기 당시 9주(200달러 가치)를 보유한 주주다.

김화진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

법원은 6인의 이사가 지배주주인 머스크와의 관계에서 '완전한 공정성'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회사에 머스크의 성과급 지불을 취소할 것을 명령했다.

법원은 주주들이 충분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성과급을 승인한 것으로 보았다. 특히 일부 사외이사들이 머스크와 개인적·사업적 친분이 있는 등 독립성과 객관성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총 자료는 그 사실을 주주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해당 이사들은 머스크 덕분에 상당한 자산을 축적한 인사들이다. 또 주총 자료는 머스크를 위한 성과급 패키지가 채택된 과정도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즉 패키지가 머스크의 영향력 아래 작성된 것이라는 사실을 주주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법원은 성과급 패키지가 회사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작성된 것으로 보면서 회사와 머스크 간에 공정한 협상이 있었다는 증거가 없을 뿐 아니라 이사회가 머스크에 대한 거액의 성과보상이 과연 회사에 꼭 필요한 것이었는지를 숙고한 흔적도 없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세 가지를 강조했다.

첫째, 머스크는 테슬라의 21.9% 주주였다. 그 정도 지분을 보유한 대주주는 별도의 성과보상이라는 인센티브가 없어도 기업가치 향상을 위해 노력할 인센티브가 이미 있는 것이다. 둘째, 머스크가 성과급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는 이유로 회사를 떠날 가능성은 사실상 없었다. 이사회는 성과보상의 조건으로 머스크가 회사를 위해 어느 정도 추가로 기여해야 할지를 정하지도 않았다. 성과보상을 받는 데 필요한 목표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달성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셋째, 이사회는 성과보상이 머스크가 화성 식민지 개척을 포함해 인류의 미래를 위해 공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하지만 그러한 목적은 테슬라의 사업과는 무관하다.

머스크에 대한 거액의 성과보상을 결정하면서 테슬라 이사회는 의사록, 의안 분석, PT 자료, 관련 이메일 등 근거 서류를 거의 남기지 않았던 것으로 소송과정에서 드러났다. 사외이사들은 머스크를 위한 성과보상 패키지가 결의된 이사회를 잘 기억하지도 못했다고 한다. 또 사상 최대인 거액의 성과보상 패키지를 결정하면서 테슬라 이사회는 머스크가 여러 가지 사업을 한다는 사실을 고려해 테슬라의 경영에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좋은 실적을 낼 것을 요구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흔적이 없었다.

558억 달러는 우리 돈으로 74조 원이 넘는 거액이다. 미국에서도 비교되는 사례가 없다. 그럼에도 회사 이사회와 주주총회가 이를 승인했고 그 과정이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는 점이 놀라울 뿐이다. 더 놀라운 것은 월스트리트저널에 법치주의를 내세워 이 판결을 비판하는 칼럼과 그를 반박하는 칼럼이 게재되어서 공방을 벌였다는 점이다.

판결 비판론은 사법부가 머스크와 도널드 트럼프 둘 다에게 정치적 이유로 불이익을 주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평범한 회사법 원칙을 적용한 판결을 정치적 동기를 억측해 비판하는 것은 잘못이다. 머스크가 기업가로서 사회적 발언을 자주 하고 ESG에 비판적이기는 하지만 이 판결에 왜 갑자기 트럼프가 소환되는가.

세계 각국 정치의 극단적 진영 대립, ESG와 DEI 확산, 그리고 '워크'(woke) 논란 등이 기업과 상법을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통로가 될까 염려된다. 머스크 같은 특이한 경영자가 자꾸 빌미를 제공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상법과 회사법은 독일의 나치 시대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을 정도로 정치색이 옅은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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