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상병 수사 축소 의혹 핵심 이종섭 전 장관, 호주대사로 임명
지난해 7월 폭우로 실종된 주민을 수색하다가 순직한 해병대 채 상병 사건과 관련,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인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이 주(駐)호주 한국대사로 임명됐다.
4일 외교부는 공관장 인사 보도자료를 통해 이종섭 전 장관을 주호주 대사로, 김판규 전 해군참모차장을 주나이지리아 대사로 임명한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은 이명박 정부인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대통령실 외교안보수석실에서 근무했으며 문재인 정부 때인 2017년에는 합동참모차장을 역임했다.
이 전 장관의 호주대사 임명을 두고 미중 간 전략 경쟁이 강화되는 가운데, '오커스(AUKUS, 미국·영국·호주 안보협의체)'의 일원인 호주와 국방 및 방산 협력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이 전 장관이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와 관련해 박정훈 당시 해병대 수사단장의 수사 이첩을 막으려고 했던 핵심 인물 중 한 명이라는 점, 이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된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호주대사 임명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이 전 장관은 지난해 7월 30일 채 상병 사건과 관련,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비롯해 8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이첩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결과 보고서'를 결재했다. 하지만 그는 다음날인 7월 31일 언론 발표 1시간 여를 앞두고 돌연 이를 취소했고, 이후 보고서를 수사기관인 경찰에 이첩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박정훈 당시 해병대 수사단장은 군사법원법 제2조와 '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는 군인 등의 범죄에 대한 수사절차 등에 관한 규정' 및 '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는 군인 등의 범죄에 대한 수사절차 등에 관한 훈령' 등 세부규정에 따라 8월 2일 '채 상병 순직 사건' 조사 결과를 경북 경찰청에 이첩했다. 이에 국방부는 당일 이를 회수하는 등 긴박하게 움직였다.
이 전 장관은 수사 결과를 결재하고 이를 다시 회수하는 등 당시 일선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지난 2월 1일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박정훈 대령(전 수사단장)의 항명 및 상관 명예 훼손 혐의에 대한 2차 공판에 출석한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은 이 전 장관이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면 이첩을 막을 이유가 없지 않냐는 박 대령 측 변호인단의 질문에 "장관님 지시가 없었다면 정상적으로 이첩했을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박 전 단장 측은 이 전 장관의 이같은 행동 변화에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돼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8월 28일 박 전 단장은 군 검찰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김계환 사령관으로부터 "(7월 31일) 오전 대통령실에서 VIP(대통령) 주재 회의간 1사단 수사 결과에 대한 언급이 있었고 VIP가 격노하면서 장관과 통화한 후 이렇게(조사 결과 이첩 보류)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김계환 사령관은 2월 1일 2차 공판에서 윤 대통령이 조사 결과 보고를 받고 격노한 것이 사실이냐는 판사의 질문에 "그런 사실 없다"라고 답했다.
이와 관련 지난해 9월 5일 더불어민주당 해병대원 사망사고 진상규명 태스크포스(TF)는 이종섭 전 장관과 대통령실 주요 관계자를 직권남용 및 공용서류무효죄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또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역시 지난해 10월 24일 이 전 장관을 비롯해 윤석열 대통령, 조태용 국가안보실장,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임종득 전 국가안보실 2차장 등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국방부를 통한 수사 축소·외압 지시) 혐의로 고발했다.
이처럼 채 상병 사건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는 등 사건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공수처에 두 차례 고발된 핵심 인물인 이 전 장관을 호주대사로 임명하는 것을 두고 정부가 이 전 장관에게 공식적인 차원에서 도피처를 마련해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또 상대국에게 외교적으로 부적절한 행위로 비춰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다만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는 아직 진행되지 않은 상태다. 공수처는 지난 1월 17일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해병대사령부의 해병대 사령관 및 부사령관 집무실 등을 압수수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16∼17일에는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 사무실과 자택, 박진희 전 국방부 군사보좌관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외교부는 이날 이 전 장관의 공수처 고발에 대해 "언급할 사항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어 이 전 장관의 대사 발탁 배경에 대해 "국방장관을 역임한 이 대사는 한국전 참전국으로서, 우리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고, 외교.국방 2+2 장관회의체를 운영하며, 국방.방산 분야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심화, 확대중인 호주와의 양자관계를 총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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