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강제동원 해법 발표 1년…여전히 채워야 할 '물컵의 반'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정부가 '제3자 변제'를 골자로 하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해법을 발표한 지 1년(3월 6일)을 맞이했다. 한일관계는 여전히 순탄하지만, 해법 발표 이후 실질적인 이행은 아직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3월 정부는 2018년 10~11월 대법원 확정판결에서 일본 피고 기업에 승소한 강제동원 피해자 15명에게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재단)들 통해 배상금·지연이자 등을 지급하는 해법을 내놨다. 국내 여론의 악화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위해 관계 개선에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결정이었다.
해법 발표 이후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으론 12년 만에 일본을 찾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한일 정상회담을 가졌다. 같은 해 5월 기시다 총리가 한국을 '답방'했고 한일 정상 간 '셔틀외교'가 재개되며 한일관계는 크게 개선됐다.
기시다 총리는 당시 한일 정상회담 뒤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해 "나도 당시 혹독한 환경 속에서 일하게 된 많은 분들이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한 데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라고 말하며 과거 일본이 보였던 태도에 비해 전향적인 언급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국내 다수 여론이 요구해 온 '일본 측의 분명한 사과 입장 표명'엔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많았다.
박진 전 외교부 장관은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을 발표하며 "물컵에 비유하면 물이 절반 이상 찼다고 생각한다"라며 앞으로 이어질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에 따라 남은 물컵이 더 채워질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물컵의 절반을 채우기 위해 가장 핵심적인 강제동원 사안에 대한 일본의 호응은 해법 발표 1년을 맞이하는 지금도 부족한 상황이다.
일본 정부는 일본 기업의 한국 재단 재원 마련 과정에 자발적 기여를 '막지 않겠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재까지 일본 기업의 참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지난 1월 취임 후 가진 출입기자단과의 첫 간담회에서 "한일관계 개선의 흐름을 타서 일본의 민간기업들도 함께 배를 타는 마음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노력에 동참해 주길 기대한다"라며 일본 기업의 참여를 요청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2018년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1차 소송 당사자 15명 중 재단의 재원으로 배상금을 지급받은 인원은 11명이다. 지급을 거부한 나머지 4명에 대해선 법원에 공탁하는 방법을 추진 중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말부터 일명 '2차 소송'(9건·피해자 기준 52명) 배상 확정판결이 연이어 나왔다. 하지만 재단의 재원이 현재 충분치 않은 상황이라 '2차 소송' 피해자들의 몫을 충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현재까지 재단이 국내외 민간으로부터 확보한 재원은 한일 청구권협정 수혜 기업인 포스코가 출연한 40억 원을 포함해 약 41억 6000만 원이다. 이 중 이미 25억 원이 해법을 수용한 피해자 측에 지급됐다. 또 해법을 거부한 피해자 측 공탁금으로 12억여 원이 지출될 예정임을 감안한다면, 추후 늘어난 배상금 지급 대상을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일본센터장은 "애초에 제3자 변제안은 상대방(일본 측)의 호응이 따라줘야 하는 것인데 일본 정부는 자국 기업이 재단 재원에 자발적으로 기여하는 것에 대해 지금은 큰 관심이 없는 것 같다"라며 "사회적인 공헌, 국제적인 위상 등을 고려한다면 일본도 고식적인 해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으며 우리는 꾸준히 일관된 메시지를 발신하며 일본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재단 재원 마련에 기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는 정책의 일관성을 강조하며 일본이 가지고 있는 '정권 교체에 따른 정책 변화'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려는 노력을 이어가야 한다"라며 "동시에 국내 한일 청구권 수혜 기업 15개 중 현재는 포스코만 기여했는데 다른 기업도 움직여줘야 한다"라며 현실적으로 국내 수혜 기업의 기여 절차가 마무리돼야 향후 일본 기업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마련된다고 분석했다.
n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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