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을 앞둔 유명인이고 부모라면, 먼저 고려해야 할 지점 [윤지혜의 대중탐구영역]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유명 아나운서를 남편으로 둔 여자가 이혼을 결심한다. 남편이 도덕적인 문제를 저질렀기 때문인데 이를 공개적으로 다루고 싶진 않다. 그들 사이엔 딸이 있고, 여자는 딸이 그런 아빠를 둔 자녀로 손가락질당하게 할 수 없었다. 더 내밀한 이유로는, 딸 또한 결혼 전 남편에 의해 강제로 성관계를 가지면서, 그러니까 성폭력으로 생겨난 아이라는 데 있다. 자신이 그 모든 상처를 그저 묻고 가더라도 딸에게만큼은 절대 알릴 수 없고 알리지 않을 작정이다.
어느 저명한 여자 정치인이 사이비 종교에 빠진 남편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다. 아이가 아픈데도 병원에 데려가질 않는 정도다. 이제는 남편의 왜곡된 종교 생활이 알려지며 정치인으로서 여자의 입지에도 위협이 되고 있다. 하지만 최대한 이혼은 하고 싶지 않다. 아이들이 사람들의 시선에 상처를 받을까 하여, 그리고 친모가 아닌 까닭에 더 이상 아이들을 못 볼까 염려가 되어서다.
오해는 금물, 실제 사례는 아니고 드라마 ‘끝내주는 해결사‘에 등장했던 에피소드들이다. 이 두 가지 에피소드에는 공통점이 있다. 두 여자 모두, 알려진 이들인 까닭에 사람들의 시선과 손가락질에 혹여 아이들의 마음이 다칠까, 노심초사하느라 해야 할 이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 물론 알고 보니 아이들은 이미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자신을 걱정하는 엄마의 진심을 온전히 느끼고 있던 터라, 오히려 엄마가 이혼하길 원할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빚어지는 상황도 생각보다 더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어쩌면 부모의 이혼을 앞둔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가 자신을 얼마나 생각했느냐, 인지도 모른다. 여기에는 그런데도 이혼할 수밖에 없냐는 주요 물음도 포함되어 있겠지만 아마도 대부분의 아이가 부모가 그러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상태에 도달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그보다 헤어짐을 결정하는 데 있어 자신들의 마음이 얼마나 고려가 되었는지, 즉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이전과 동일하게 부모로서 사랑해 줄 수 있는지, 사랑의 크기에 관한 절박한 질문이 들어 있다.
그러니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앞두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너무도 깊이 미안해하고 있고, 상처를 줄 게 분명하여 몇 번이고 망설이며 회복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그렇게 되고 말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생각보다 이혼의 타격을 덜 받을 수 있다. 아니, 덜 받는다기보다 받은 타격을 이겨낼 충분한 힘과 의지를 가진 상태가 된다고 할까. 아이도, 부모가 결혼 생활을 더없이 고통스럽게 느끼고 있음에도 자녀인 자신을 생각해서 참고 살아내는 형국을 그리 원하지 않는다.
문제는 오롯이 부모에게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을 때다. 특히 이혼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문제가 존재할 경우, 한 쪽이 명백한 유책 배우자일 경우 헤어지는 과정에서 부모의 갈등과 언성은 한없이 높아지고, 본의 아니게 그 사이에 놓인 자녀는 점점 움츠러든다. 때때로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부모의 이혼을 지켜봐야 하는 자녀로서의 심정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가혹한 상황에 직면하기도 하며,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유명인을 부모로 두었다면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도마 위에 올려져 마구잡이로 파헤쳐지는 자신의 가족사를 지켜보아야 하니 비극 그 자체다.
이 상처는 아이, 자녀의 인생에 짙은 흔적을 남겨, 제대로 치유되지 않은 경우에는 평생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된다. 그래서 해당 과정에서 너무도 중요한 작업은, 자녀가 아빠와 엄마가 이제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과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별개의 사실로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끔 만드는 일이다. 상황이 그렇게 된 것이지 자녀를 향한 사랑은 변함이 없음을 인지시켜야 상흔이 남더라도 곧 새살을 올릴 수 있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아이는 어떻게, 불안한 상황 속에서도 부모의 사랑을 안정적으로 느낄 수 있을까. 이혼의 과정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보이는 태도가 결정한다. 자신이 상대 배우자에게 받은 상처에 집중하여 격정적인 분노와 슬픔만을 내놓는 게 아니라 아무 잘못 없이 그러한 상황에 내몰린 아이의 심정을 들여다보려 애를 쓰는 눈빛에서, 함께 고통을 겪고 있을 아이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어루만지려 하는 손길에서, 어렵지만 최대한 납득할 수 있도록 처한 상황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려 노력하는 얼굴에서, 자녀는 부모의 사랑을 확신하며 그제야 어쩔 수 없는 선택임을 이해하기 시작할 수 있다.
최근 황정음이 이혼을 결정하고 자신의 SNS에, 유책 배우자로 추정되는 남편에 대한 분노를 우회적으로 표현하며 많은 이들의 시선을 끈 바 있다. 근거 없는 악플들도 상당수 달려 눈살을 찌푸리게 했는데 당사자가 아닌 이상, 내밀한 사정은 알 수 없으니 추측성 이야기나 그에 따른 판단은 지양하는 게 옳을 터. 하지만 이 상황에서 가장 우려가 되는 부분은 따로 있었다. 바로 그녀의 아이들, 누구도 그녀의 아이들에 대해 배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모의 헤어짐을 받아들이는, 자신의 세계가 두 쪽으로 갈라지는 쉽지 않은 과정을 받아들이고 있는 가운데, 누구에게나 공개되는 SNS상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너나없이, 그리고 아무렇게나 떠들어대고 있다. 그리고 누구도 얼굴을 직접 맞대지 않은 이 공간에서는, 진실 또한 제 얼굴을 내보이지 않는다. 말 그대로 진실 공방은 공방으로만 끝나고 남는 건 상처뿐이니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인지할 만한 나이든 아니든, 반드시 어떻게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이런 상황을, 그 어떤 이보다 혹은 유일하게 아이들을 배려하고 있었을 황정음이 미처 예상하지, 고려하지 못했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물론 그럴 의도는 전혀 없었겠다만 스타의 뒷담화하기 좋아하는 이들에게 먹이를 던져준 격이 되고 말았으니까. 해당 사안에 그녀의 아이들이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을 한 번만 더 이를 악물고 떠올려 보았다면 감정만 자극하고 쓸데는 하나도 없는 악플의 마수를 피해 갈 수 있었을 터. 그러나 물은 이미 엎질러졌고 이제 중요한 건 아이들과 얼굴을 맞대고 좀 더 많은, 진심 어린 눈빛을 나누는 일이겠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니스트 news@tvdaily.co.kr, 사진 = 와이원엔터테인먼트SNS, JTBC ‘끝내주는 해결사‘]
황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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