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회복력’의 근원

김재태 편집위원 2024. 3. 4.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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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남쪽의 따뜻한 나라에 다녀왔다.

그 나라는 아직껏 추위에 갇힌 한국과 달리 사시사철 더운 나라답게 첫걸음에서부터 후끈한 더위로 방문객을 맞았다.

그는 영상에서 "한국은 역동적인 문화를 지닌 놀라운 나라이자 기술, 교육, TV와 영화, 음악과 스포츠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고 운을 뗀 후 "하지만 반대로 불안, 우울증, 알코올 중독, 자살의 비율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높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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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김재태 편집위원)

잠시 남쪽의 따뜻한 나라에 다녀왔다. 그 나라는 아직껏 추위에 갇힌 한국과 달리 사시사철 더운 나라답게 첫걸음에서부터 후끈한 더위로 방문객을 맞았다. 따뜻한 느낌은 날씨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온화한 웃음을 띤 채 상냥했고, 여유로웠다. 비록 행색은 남루했으나 얼굴 표정만큼은 전혀 남루하지 않았다. 길거리에는 아이들이 넘쳤고, 그 아이들은 어디서든 깔깔깔 해맑은 웃음을 보여주었다. 젊은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상관하지 않겠다는 듯 길가에 끼리끼리 모여 앉아 음식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었다. 모든 것이 평온했고, 한가로워 보였다. 적도 인근에 길게 열도를 이루며 자리 잡은 이 나라는 아직은 가난한 편이지만, 유엔 자문기구인 지속가능해법네트워크(SDSN)가 발표한 '2022년 세계행복보고서'의 '삶의 균형과 조화' 항목에서는 한국보다 높은 순위에 올라있다.

귀국하던 날, 인천공항에는 보슬보슬 비가 뿌려 낮인데도 시야가 어둑했다. 기분 탓인지 그 날씨 위에 한국의 현실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됐고, 마음이 불쑥 답답해졌다. 이런 답답함이 혼자만의 개인적 감정으로 끝나면 좋았으련만 실제는 그렇지 않은 듯하다. 베스트셀러 《신경 끄기의 기술》을 쓴 작가이자 유명 유튜브 크리에이터인 미국인 마크 맨슨이 지난 1월 자신의 유튜브에 올려 화제를 모은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를 여행했다'라는 영상도 하나의 예다. 그는 영상에서 "한국은 역동적인 문화를 지닌 놀라운 나라이자 기술, 교육, TV와 영화, 음악과 스포츠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고 운을 뗀 후 "하지만 반대로 불안, 우울증, 알코올 중독, 자살의 비율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높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 사회는 모두 경쟁이 심해서 완벽주의자가 많다. 100점을 얻지 못하면 실패한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그게 우울증과 정말 연관이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물론 그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부분적으로 공감되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가 언급한 자살률만 보아도 우리나라의 수치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최고 수준을 기록 중이다. 그처럼 높은 자살률이 급속 성장 과정에서 압박과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 구조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그의 분석 또한 타당한 면이 있다. 아이들은 태어나서부터 고강도의 경쟁 시스템에 흡입되고 어른이 되어서도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타인을 이겨야 자신이 성공할 수 있다는 왜곡된 인식도 그 같은 구조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정치라고 다르지 않다. 상대방보다 내가 더 나아져야 이길 수 있다는 생각 대신에 상대를 짓밟아 쓰러트려야 내가 이길 수 있다는 빗나간 승리욕이 현실을 지배한다. 나의 장점을 키워서 돋보이려 하기보다 상대의 단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부각함으로써 나의 존재감을 살리려고 발버둥친다. 이번 총선에 나선 출마자들 중에도 그처럼 부끄러운 정치 기술에 길들여진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 기술이 대세가 되면 정치는 그 자체로 국민적 우울증의 원인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우울한 나라'라는 반갑지 않은 별칭까지 얻은 대한민국이지만 낙담할 필요 는 없다. 마크 맨슨이 같은 영상에서 한국의 강점으로 꼽은 '회복력'이 그 근거가 될 수 있다. 경쟁의 속박이 사회 각 분야에서 좀 더 느슨해지고, 정치가 진짜 정치다워 지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이어지면 우리의 우울함 또한 틀림없이 자연 치유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아직 희망은 있다.

김재태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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