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규제 손 뻗자 "이곳 뜨자" 짐 싼 회사들…홍콩 경제 무너졌다
[편집자주] 빠르게 중국화 하는 홍콩의 모습은 자유가 사라진 시장경제가 한순간에 몰락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글로벌 경제가 블록으로 재편되는 가운데 산업과 금융 양측면에서 국제적 영향력을 유지해야 할 한국에도 시사하는 점이 크다. '아시아의 용' 홍콩은 왜 '아시아의 금융허브 유적지'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게 됐을까. 홍콩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중국 언론 차이신은 홍콩의 세수에 토지 판매·임대수익을 더한 총 국가재정 보유액이 올 3월 기준 7050억홍콩달러(약 120조원)으로 2020년 3월 1조1000억홍콩달러(약 188조원) 대비 36% 증발했다고 최근 보도했다. 지난해 같은 시점에 비해서도 16%나 줄어든 규모다. 자유도시이자 문화와 경제의 도시, 아시아의 금융허브가 이제는 '가난한 홍콩'이 된 믿기 어려운 현실이다.
◇가난한 홍콩…부동산 못 팔자 세제 개편 카드까지
'금융 허브'라는 홍콩의 타이틀은 낮은 세율과 간단한 과세 구조 덕분에 붙여졌다. 홍콩의 조세구조는 소득세(이윤세)와 급여세, 인지세 세 항목이 전체 세수의 약 90%를 차지할 정도로 단출하다. 그나마도 특례가 많다. 2억4000만홍콩달러(약 410억원) 이상을 홍콩에 직접투자하면 소득세가 아예 면제되는 제도가 대표적이다. 법인세 최고 세율은 10%대 중반에 불과하다.
그래도 홍콩의 재정은 윤택했다. 기업들은 홍콩에 터를 잡고 홍콩 증시에 상륙하기 위해 줄을 섰다. 이들이 홍콩 정부로부터 토지를 비싼 값에 매입·임대하면서 홍콩의 곳간은 늘 그득 들어찼다. 중국 정부 규제의 그림자가 홍콩을 덮치기 이전 얘기다.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이 발효되고 외국인 처벌이 시작되면서 홍콩은 자유와 가장 거리가 먼 도시가 됐다. 글로벌 기업들이 탈출하고 증시라는 엔진도 꺼져간다.
재정의 근간인 부동산은 말 그대로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홍콩 부동산 가격은 지난 1월까지 9개월 연속 하락했다. 수요가 끊기자 홍콩개발국은 올 1분기 토지 판매를 하지 않기로 했다. 홍콩 부동산 판매가 중단된 건 13년 만에 처음이다. 현지서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건 부동산 대출잔액이 평가액을 넘어선 사건이다. 부동산 규제 완화 등 대책이 뒤늦게 나오고 있지만 부실 도화선엔 이미 불이 붙었다.
홍콩의 국회 격인 입법회의 라이퉁궈 의원은 최근 현지언론에 "사치품에 대해 초사치세를 부과하는 것은 물론 소비세나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등 과세기반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폴 찬 장관이 "추가 과세는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지만 결국 세제개편은 현실이 됐다. 홍콩은 지난 28일 소득세 최고세율을 기존 15%에서 16%로 1%포인트 인상했다. 무려 20년 만의 소득세 인상이다.
세금을 늘려 재정문제를 해결하는 건 일면 간단해 보이지만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특히 자유를 바탕으로 돌아가는 홍콩의 경제엔 더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홍콩의 영광을 조금씩 뺏어가고 있는 싱가포르는 오히려 더 퍼줄 준비를 마쳤다. 올해 예산 중 총 13억 싱가포르달러를 기업 지원에 책정했는데 상황에 따라 법인세를 무려 50% 환급하기로 했다.
◇탈출 또 탈출…"홍콩에 남은 건 노인과 본토인뿐"
통제와 이에 따른 손실 다음은 탈출이다. 지난 2021년 기준 홍콩의 해외 금융인력 취업비자 수는 2019년 대비 무려 50%나 줄었다. 홍콩에 터를 잡고 살던 연구인력과 교육인력 등 고급인력들도 연이어 홍콩을 등지고 있다. 2022~23학년도 홍콩 내 8대 공립대에서 학교를 떠난 교수 등 연구인력 수는 380명으로 20년 만에 가장 높은 이직률(7.6%)을 기록했다.
전문직을 포함한 홍콩 토박이들의 이탈도 줄을 잇는다. 지난해 9~11월 홍콩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가 홍콩 주민 7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주민의 38%가 "기회가 주어진다면 홍콩을 떠나겠다"고 답했다. 2022년 9월 실시한 조사에선 같은 질문에 29%가 같은 답을 했었다. 실제 홍콩 인구는 2019년 748만여명에서 2020년 747만여명으로 줄었고, 2022년엔 733만여명까지 줄었다.
지난해부터는 인구가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는데, 이는 중국 정부의 본토인 이주 정책 탓이다. 홍콩 토박이와 외국인이 빠져나간 자리를 본토인이 채운다. 남은 토박이들은 대부분 고령자다. 2022년 말 기준 65세 이상 홍콩인은 약 8만8000여명으로 5년 전 7만9100명에 비해 11% 늘었다. 경제활동 인구는 빠져나가고 빈자리는 고령자들과 본토 출신 중국인들이 메우고 있다는 의미다.
한 글로벌 IB 관계자는 "머지 않은 시점에 홍콩엔 본토인과 노인들만 남을 거라는 자조 섞인 얘기가 있다"며 "중국 정부가 홍콩에 대해 다시 전향적인 자치를 인정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만큼 홍콩 상황이 개선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보다 극단적인 전망도 있다. 예일대 스티븐 로치(Stephen Roach) 교수는 지난 1월 FT(파이낸셜타임스)에 게재한 '문제적' 칼럼에서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중국 경제의 부진, 미중 갈등 등 세 가지 요인에 힘입어 홍콩의 경제는 몰락하고 있다"며 "인정하기 싫지만 홍콩은 이제 끝났다(Hong Kong is now over)"고 지적했다. 이 칼럼은 이후 중화권 언론에서 반박 칼럼이 이어지는 등 논란의 불을 붙였다.
이는 아시아 대표 금융 중심지이자 미국 뉴욕·영국 런던과 함께 '세계 3대 금융허브'로 통했던 홍콩의 위상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 조롱 섞인 얘기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역사적 인플레이션(화폐가치 하락에 따른 물가상승)이 이어지는 상황에도 세계 주요 증시가 사상 최고가 행진을 하는데, 홍콩 증시는 침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4년 연속 하락한 증시…60년 만에 처음
홍콩 증시는 세계 주요 증시 지수 중 최악이다. 특히 홍콩을 대표하는 항셍지수는 지난 2020년부터 2023년까지 4년 연속 하락했다. 이는 1964년 7월 항셍지수가 첫 산출된 이후 가장 긴 약세장이다. 3년 연속(2000~2002년 ) 하락한 적은 있지만 4년 연속 떨어진 건 60년 만에 처음이다.
2018년 1월 3만3000을 뚫으며 역사상 최고점을 기록했던 항셍지수는 6년 만인 올 1월 1만4000대로 주저앉았다. 지난해에만 지수가 14% 빠졌다. 미국 나스닥과 S&P500이 20~40%대 상승률을 기록했고 일본 닛케이225(28%), 대만 자취안(27%), 한국 코스피(18%), 인도 센섹스(18%) 등 아시아 증시 역시 일제히 오른 것과 비교하면 홍콩 증시가 얼마나 부진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올 들어서도 미국·일본·대만 등 주식시장에서 전 고점을 뚫고 또 뚫는 초강세 '불장' 국면이 펼쳐지고 있지만 홍콩에는 냉기가 여전하다. 항셍지수는 지난달 각종 부양책 영향으로 소폭 상승 반전하며 1만6000선을 밟았지만 1~2월 누적 수익률(-3%)을 따져보면 여전히 마이너스다.
◇인도에 밀리고, 대만에 치였다
홍콩 증권거래소는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는 인도에 추월당했다. 세계거래소연맹(WFE)이 집계한 세계 증권거래소 시가총액 순위에서 홍콩은 7위(2022년 12월 기준)에서 8위(2024년 1월)로 밀렸다. 종전 8위였던 인도는 올 들어 6위로 올라섰다.
지난해 11월 말 홍콩 항셍지수가 대만 자취안지수에 추월당한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자취안지수가 항셍지수보다 높아진 건 31년 만에 처음으로 올 들어 그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시가총액·거래량 등 기준으론 여전히 홍콩이 큰 시장이지만, 지수 역전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금융 전문가들은 본다.
증권사들의 줄폐업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홍콩에선 2022년 49개 증권사가 폐업한 데 이어 지난해에도 30여곳이 문을 닫았다. 시장이 활기를 잃으면서 거래량이 급감하자 거래수수료로 수익을 내던 중소형 증권사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JP모건체이스·UBS그룹 등 대형 투자은행(IB)의 아시아 IB 조직 구조조정에선 주로 홍콩 직원들이 대상이 됐다.
홍콩의 한 중소증권사 CEO는 "증권업계에 30년 가까이 몸 담았는데 최근 1~2년처럼 많은 증권사들이 문을 닫고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었던 적은 없었다"며 "문제는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100년 쌓은 '금융허브' 공든 탑, 왜 흔들렸나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아시아 금융센터 역할을 해왔던 홍콩의 금융산업은 1997년 중국에 반환된 이후에도 계속 성장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확실한 지위를 구축한 홍콩을 활용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를 표방했기 때문이다. 해외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는 중국 기업들이 줄을 서면서 홍콩은 단숨에 세계 1위 IPO 시장으로 등극했다. 이는 금융이 홍콩 국내총생산(GDP)의 2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경제 축으로 자리 잡은 배경이다.
하지만 중국의 전폭적인 지원은 홍콩 증시를 멍들게 한 요인이기도 하다. 홍콩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의 70%가 중국 본토기업이어서 중국 경기가 나빠지면 증시 흐름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미·중 패권전쟁과 코로나19 팬데믹, 시진핑 장기집권 등 영향으로 중국이 경기 침체의 늪에 빠지면서 홍콩 증시도 악화됐다.
홍콩의 통화 시스템도 증시 부담 요인이다. 홍콩은 통화(홍콩달러) 가치를 미국달러에 연동(1 미국달러=7.75~7.85 홍콩달러)하는 '페그제(고정환율제)'를 채택하고 있어 금리도 미국을 따라 움직인다. 이 때문에 현재 홍콩의 금리는 2007년 12월 이후 최고치인 5.75%까지 높아졌다. 해외 투자자들이 중국 관련 투자를 줄이는 가운데 홍콩의 긴축적인 통화정책으로 시장 유동성이 더 악화했다. 홍콩의 경우 기업 이익은 중국 본토 경기, 이자율은 미국 정책의 영향을 받는 독특한 시장인데 양쪽의 악재가 겹친 셈이다.
골드만삭스의 한 중국 전문가는 "홍콩 증시 상장사의 절반은 거래량이 제로 수준이고, 글로벌 기업들과 자산가들은 싱가포르로 떠나고 있다"며 "홍콩이 세계 3대 금융허브로 자리잡는 데 100년이 걸렸는데 폐허로 변하는 데는 5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베이징(중국)=우경희 특파원 cheerup@mt.co.kr 송지유 기자 cli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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