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병 딸 돌보는 아빠도 희귀병…“딱 10년만, 기적처럼 살자”

심우삼 기자 2024. 3. 4.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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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나눔꽃 캠페인
민정이가 2월23일 오후 침대에서 쉬는 중에 머리맡 휴대전화에서 흘러나오는 엄마, 아빠의 목소리를 들으며 웃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지난 2월23일 인천 남동구의 한 아파트에서 만난 민정(가명·6)이가 인기척이 느껴지자 “색색” 숨소리를 냈다. 얼핏 보면 자는 것처럼 보이지만, 민정이는 깨어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따금 얼굴을 찡긋거리고, 반쯤 감긴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목도 왔다 갔다 했다. 난치성 뇌전증과 뇌병변 장애로 보지도,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못하지만 민정이는 계속해서 “나 여기 있어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빠 유정훈(42)씨는 혼잣말로 “그래 민정아, 아빠 여기 있어”라며 민정이의 얼굴을 한참 동안 쓰다듬었다.

민정이는 칠삭둥이로 태어났다. 670g의 초미숙아였던 탓에 인큐베이터 신세를 져야 했지만, 그때만 해도 뇌도 몸도 모두 정상이었다고 한다. 첫째 아이를 5개월 만에 잃고 난 뒤 시험관 시술(체외수정)을 통해 생긴 아이라, 유씨 부부에게 민정이는 더 각별한 존재였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인큐베이터 안에서 민정이의 위가 갑작스럽게 파열되는 사고가 발생났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바이러스에 감염돼 민정이의 복부가 팽창하면서 위가 터져버렸다는 게 병원 쪽 설명이었다. 이때 발생한 뇌출혈로 민정이는 1급 뇌병변 장애를 얻고 시력도 잃게 됐다. 뒤이어 설상가상으로 희귀 난치병인 레녹스 가스토 증후군까지 발병했다. 레녹스 가스토 증후군은 뇌병변 장애 중에서도 증상이 가장 심한 형태로 꼽힌다.

뇌병변 장애로 움직이지 못하는 민정이는 스스로 가래를 뱉거나, 코를 풀 수도 없어 하루에 3∼7차례 석션(흡입기)으로 가래와 이물질을 제거해야만 한다. 호흡기가 민감해 집 안에만 공기청정기를 5대나 두고 있다. 행여나 이불의 먼지가 문제가 될까 이불 빨래도 매일매일 한다. 그러다 보니 방문에는 매일같이 건조 중인 이불 빨래들이 걸려있다.

밥도 편히 먹지 못한다. 스스로 씹는 것이 불가능해 뱃속에 삽입된 위루관을 통해 하루 5∼6번 유동식을 먹는데, 며칠에 한번씩 불규칙한 경련과 구토가 반복돼 탈수 증상이 빈번히 일어난다. 1년 전 위루관 수술을 하기 전까지는 코로 유동식을 섭취했는데, 그때는 밥을 먹으면 10분 만에 구토를 하는 일이 하루에도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민정이는 구토 증상이 심해 얼마 전 식도의 98%를 묶는 수술까지 받았다.

무엇보다 가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증상은 뇌전증으로 인한 발작이다. 민정이는 레녹스 가스토 증후군을 앓고 있어서 발작의 정도가 심하다. 예고 없이 다리, 손가락, 얼굴 순서로 강하게 들썩이며 발작이 온다. 심할 땐 혀까지 말리게 되는데, 자칫하다간 호흡 곤란으로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근육이 굳어 온몸도 비틀어진다. 발작 강도는 머리를 세게 강타당한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런 발작이 한달에 한번꼴로 찾아오는데, 언제 올지 알 수 없어 가족들은 항상 전전긍긍한다.

민정이 아빠가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민정이는 인생의 절반에 해당하는 3년을 인큐베이터에 있었다. 가족들로선,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힘든 시기였다. 사고가 발생한 병원에서 민정이의 치료를 거부했을 땐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수천만원의 달하는 병원비를 감당할 여력도 없었다. ‘치료비가 없으면 나가야지, 버티면 뭐하겠느냐’, 병원 한쪽에서 우연히 듣게 된 전공의의 말은 지금도 가슴에 멍울로 남아 있다. “그때는 사채라도 당겨서 애기는 살린다고, 돈을 구해보겠다고 하는데도 병원에서 치료를 포기하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민정이를 퇴원시키던 날, 기적적으로 서울의 한 병원에서 민정이를 돕겠다고 나서준 일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유씨 부부는 곧바로 병원을 옮겼고, 그때부터 병원 앞 환자방에 살며 7개월 동안 민정이를 돌봤다. 하루 두번 밖에 면회가 되지 않아 종일 돌봄이 가능한 것도 아니었는데, 2시간 거리의 집을 왔다 갔다 하기엔 십여차례의 크고 작은 수술을 버티는 딸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병원 앞에서 조금이라도 멀어지면, 민정이가 사라질 것만 같았다.

유씨 부부에게 민정이는 기적 그 자체다. 의료진은 민정이가 살아도 손 하나 까딱 못할 거라고 했지만, 민정이는 제자리에서 팽이처럼 핑그르르 돌 수 있다. 짧은 거리긴 하지만 돌면서 앞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엄마를 보면 ‘아바바바바’ 옹알이까지 터져 나온다. 엄마는 민정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다. 유씨는 “우리가 노력한 만큼 이 아이도 노력한다. 우리가 애를 포기하면 애가 죽으니, 우리는 이 아이를 놓을 수 없다”고 울먹였다.

유씨는 민정이보다 자신이 먼저 죽을까 봐 겁이 난다. 유씨는 3년 전 갑작스럽게 발병한 난치성 희귀병 모야모야병으로 몸의 절반이 마비됐고, 지난해 당뇨 합병증 중 하나인 당뇨망막병증으로 왼쪽 눈의 시력을 거의 잃은 상태다. 민정이를 살리려 하루 두세시간만 자며 닥치는 대로 일한 끝에 가까스로 여기까지 왔건만, 최근에는 심근경색(심장마비)까지 재발해 쓰러지기까지 했다. 유씨는 “민정이에 대한 한 때문에 죽지 못해 살아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빚도 크나큰 부담이다. 지금까지 민정이에게 들어간 수술 및 치료 비용만 수억원이 넘는다. 남은 건 빚뿐이고, 이로 인한 이자비용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다. 유씨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한 후부터는 아내(43) 혼자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데, 아내도 얼마 전 뇌졸중을 진단받고 수술을 받아 몸이 좋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데 목돈이 들어가는 병원비는 여전하다. 민정이는 지난해에만 수술을 세 차례 했다. 상한 치아를 치료하고, 척추뼈 제거 및 위루관 삽입수술을 한번에 진행했는데, 여기에만 900만원이 넘는 돈을 썼다. “민정이 수술 때문에 집도 팔고 주식도 팔고 다 팔았어요. 사채도 당겨 써봤고 지인들한테 돈도 빌려 써보고 다 했죠. 그 빚이 나중에 민정이한테 갈까 봐, 그것만큼은 해결하고 죽어야죠.” 유씨는 말했다.

전공의 집단행동도 걱정거리다. 유씨와 민정이는 한달에 15번 서울의 병원에 가 검사와 재활치료 등을 받고 있는데, 전공의들의 무더기 사직으로 모든 진료가 중단된 상태다. 특히 유씨의 경우 지난 2월20일 당뇨병성망막증으로 인한 시력 저하를 늦추기 위한 수술이 예정돼 있었는데, 일정이 기약 없이 밀리고 있다. 유씨는 “병원에서는 6개월 뒤에 수술일정을 다시 잡자고 하는데, 지금도 혈당수치가 안 좋아서 증상이 악화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은 민정이가 표정을 찡그렸다. 눈이 보이지 않는 민정이는 청각이 예민하다. 특히 성인 남성의 목소리를 유독 무서워한다. 민정이를 진료한 의사들이 대부분 남성이다 보니, ‘낯선 남자 목소리가 들려오면 아프다’는 식의 트라우마가 자리 잡은 것이다.

하지만 민정이는 금세 안정을 되찾았다. 민정이 머리맡에 놓인 스마트폰 덕분이다. 스마트폰에서 재생되고 있는 동영상에선, 민정이의 재간을 보며 웃는 엄마 아빠의 소리가 반복되며 흘러나온다. 엄마 아빠가 곁에 없으면 불안함을 느끼는 민정이지만, 행복해하는 이들의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민정이도, 유씨 부부도 서로가 서로에게 행복을 주는 관계인 것만 큼은 틀림이 없다.

병원에서 말하는 민정이의 기대수명은 11살. 앞으로 5년밖에 남지 않았지만, 유씨는 기적을 믿는다. 기적처럼 태어나 기적처럼 살아남은 민정이가, 또다시 기적을 보여주길. “딱 10년만 이렇게 살자”는 유씨의 혼잣말에, 민정이는 알아들었다는 듯 씩 웃었다.

캠페인에 참여하시려면

민정(가명)이네 가족에게 도움을 주시려는 분은 계좌로 후원금을 보내주시면 됩니다. (IBK기업은행 148-013356-01-136, 예금주: 대한적십자사) 또 다른 방식의 지원을 원하시는 분은 대한적십자사(1577-8179)로 문의해주십시오. 모금에 참여한 뒤 대한적십자사로 연락하시면 기부금 영수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모금 목표액은 2000만원입니다. 후원금은 민정이의 의료비와 생계비로 사용될 예정입니다. 2000만원 이상 모금될 경우, 민정이처럼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위기가정에 지원될 예정입니다. 대한적십자사는 민정이가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살피며 후원금을 투명하고 성실하게 전달하겠습니다.

보도 이후

한겨레와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가 함께한 ‘나눔꽃 캠페인’을 통해 선천성 단장증후군을 앓고 있는 7살 재윤이의 사연(한겨레 2024년 2월1일치 14면)이 소개된 뒤 총 2831만135원(2월29일 기준)의 정성이 모였습니다. 희망브리지는 “재윤이를 위해 소중한 마음을 보내주신 일시계좌 후원자 530분, ARS 후원자 372분께 깊이 감사드린다”며 “소중한 후원금과 함께 온 ‘재윤이가 행복해지길’, ‘재윤이 힘내’, ‘꼭 이겨내자’ 등의 응원메시지는 재윤이와 재윤이 가정에 큰 위로가 됐다”고 밝혔습니다. 보내주신 후원금은 재윤이네와 재윤이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환아 가정에 의료비와 생계비, 교육지원비로 지원될 예정입니다.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신 모든 후원자분들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심우삼 기자 wu3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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