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2고! 2게 대체 무슨 일2고? [이진순 칼럼]

한겨레 입력 2024. 3. 4. 07:05 수정 2024. 3. 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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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송에서 숫자 ‘1’을 파란색으로 내보냈다고 난리가 났다. 문화방송 뉴스에서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가 1까지 떨어졌다”면서 ‘1’ 자를 파란색 그래픽으로 내보낸 게 민주당 지지를 유도하는 홍보였다는 주장이다. 국민의힘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제소했다. 뽀빠이의 망령인가?
지난 27일 문화방송(MBC) 뉴스데스크 날씨 정보 보도 화면. 문화방송 제공

이진순|재단법인 와글 이사장

뽀빠이가 간첩이란 소문이 있었다. 변변한 간식거리가 없던 70년대, 전국의 구멍가게를 평정한 인기 상품이 10원짜리 ‘라면땅’이었는데,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게 삼양식품의 ‘뽀빠이 라면땅’이다. 누군가 자랑스레 ‘뽀빠이’를 들고 골목에 나타나면 아이들은 쪼르르 그 곁으로 달려가 “나, 한 입만…” 하면서 오목한 손바닥을 내밀곤 했다.

어느 날 ‘뽀빠이’ 봉지의 그림이 간첩들의 암호문이란 소문이 돌았다. 뽀빠이의 빨간 상의는 북한을, 파란 하의는 남한을 뜻하는데 뽀빠이의 넥타이가 화살표 모양으로 아래를 향하는 건 남한을 빨갛게 물들인단 뜻이라고, 코흘리개 친구가 숨죽이며 알려줬다. 반공이 모든 가치에 우선하던 시절 코미디 같은 얘기다. 그런데 반세기가 지난 지금, 황당한 코미디가 복고 열풍을 타고 돌아왔다.

한 방송에서 숫자 ‘1’을 파란색으로 내보냈다고 난리가 났다. 2월27일 문화방송(MBC) 뉴스에서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가 1까지 떨어졌다”며 ‘1’ 자를 파란색 그래픽으로 내보낸 게 민주당 지지를 유도하는 홍보였다는 주장이다. 국민의힘은 이것이 선거방송심의규정의 공정성과 사실보도 조항을 위반했다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 제소했다. 뽀빠이의 망령인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극도로 민주당에 편향된 방송을 해온 엠비시라지만 이건 선을 넘은 것”이라고 했다. 그가 생각하는 ‘동료 시민’은, 파란색 숫자 1을 보면 “아, 1번을 찍어야겠구나” 끄덕일 정도로 충동적이고 단세포적인가? 과거 뽀빠이 제조사가 빨갱이 괴담 때문에 뽀빠이의 빨간색 윗도리를 흰색으로 바꾼 것처럼, 정부·여당 눈치 보기 급급한 일부 언론사는 앞으로 ‘1’을 써야 할 때마다 대체어를 찾느라 전전긍긍하고 ‘2’ 자를 공평하게 노출하기 위해 고심할지도 모른다. 아2고! 2게 대체 무슨 일2고?

문화방송은 이틀 뒤인 29일 후속 보도를 통해, 파란색을 쓴 건 환경부에서 대기오염도를 표시하는 상징색 구분에 따른 것이고, 서울 곳곳의 미세먼지 수치가 1(㎍/㎥)까지 내려가는 건 이례적인 일이라 강조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 사안을 선거방송심의위원회(선방위)가 조용히 넘길 것 같지는 않다. 선방위는 선거방송의 공정성을 위해 방심위 산하에 선거 전후 6개월간 운영되는 법적 조직이다. 이번 선방위는 지난해 12월 출범 때부터 편파적인 위원 구성으로 논란이 일었다.

티브이(TV)조선 추천으로, 손형기 전 티브이조선 보도본부 시사제작에디터가 선임된 것부터 심상치 않았다. 방송 관련 협회가 아닌 특정 방송사에 심의위원 추천권이 주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문화방송 부사장 출신인 권재홍 위원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행한 ‘노조활동 부당 개입’으로 유죄가 확정되었다가 올해 대통령 설 특사로 복권되었다. 현재 공정언론국민연대 이사장인 권 위원은 시민단체 추천 몫으로, 같은 단체 대표였던 최철호 위원은 국민의힘 추천 몫으로 선방위에 합류했다.

이번 선방위는 제재 건수나 징계 강도 면에서 역대 최다, 최고를 기록한다. 출연자가 ‘김건희 특검’이란 용어에 ‘여사’ 자를 붙이지 않았단 이유로 에스비에스(SBS) ‘편상욱의 뉴스브리핑’에 행정지도 ‘권고’가 떨어졌다. 이후 모든 방송에선 출연자가 ‘김건희 특검’이라고 하면 진행자가 ‘김건희 여사 특검’이라고 황급히 고쳐주는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시비에스(CBS) 라디오도 철퇴를 맞았다. ‘무늬만 보수’인 출연자를 섭외해 균형 있는 패널 구성이 되지 못했다며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법정 제재 최고 수준인 ‘관계자 징계’가, ‘김현정의 뉴스쇼’에 행정지도가 내려졌다. 파란 ‘1’ 자 기상 뉴스도 무사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하늘은 파랗고 동백은 빨갛다. 파란 당, 빨간 당이 있기 전부터 세상엔 형형색색의 자연과 생물이 어우러져 살아왔다. 그 존재의 존엄을 인정하지 않는 ‘자유’는 거짓이고, 비판을 처벌하는 ‘공정’은 폭력이다. 세월호 참사로 아들 동수군을 잃은 정성욱씨가 들려준 이야기는 초현실적이다. 지난해 7월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선체 내부 탐방이 전면 금지되었을 때, 유가족들이 항의를 했단다. “그때 해수부 주무관이 그랬어요. 하늘 색깔이 바뀌었으니, 가만히 있으라고.”(유튜브 ‘언론아싸’ 23회, 2024년 2월21일치)

한국방송(KBS) ‘다큐인사이트’ 팀이 준비한 세월호 10주기 다큐멘터리는 방영 금지되고, 유족과 시민들은 수요일마다 케이비에스 앞에서 촛불을 든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라서, 차마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서. 촛불 앞의 어둠은 아직 아득한 검은색, 10년째 그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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